길벗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첫 서울 퀴어문화축제. 사실 지난 6월에 대구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오긴 했지만, 같은 퀴어문화축제의 이름을 띄면서도 서울에서의 그것은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마 어릴 적부터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담아 왔었던 동경의 자리였고, 어느새 그곳에 내가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스무 살에 축제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 차마 갈 수 없었다. 심지어 그 현장 바로 옆을 지난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스스로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거부하고 부정해왔던 내게, 그 축제는 애증의 존재였다. 가서 함께 하고 싶지만 낯설고 두려운. ‘나를 받아주고 환영해줄 만한 사람 어느 누가 있을까’ 그 안에서도 난 이방인일 것만 같은 그런 복잡미묘함? 그곳에 나의 자리는 없어보였다. 여하튼. 이후 스스로와의 갈등의 간극을 줄여내며 수년을 보냈고, 드디어 지난 2017년 7월 15일,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축제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광장에 입장하기 전 들었던 예수팔이들의 격앙된 목소리에, 나는 왠지 모를 멜랑꼴리함에 잠시 사로잡혔다. 여태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게 바로 종교였기 때문이었을까. 교회를 예수로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에 내 얼굴이 투영되었다. 그들이 나를 혐오하듯 과거의 나 또한 이성을 좋아하지 못하고 동성을 좋아하는 스스로를 악(惡)으로 여겼으니까.
반동성애주의 의식이 갖는 존재론적 악의는 시청광장 옆, 대한문 앞 ‘동성애축제 반대 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일부 보수 개신교 집합체는 성소수자를 상대로 성전(聖戰)을 치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예수를 향한 신앙이라는 미명 아래 드러나는 우리를 향한 차별과 혐오, 폭력, 그것들로 얼룩진 그들의 구원관, 동성애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마주할 때면 실로 답답하다. 마치 지구 끝까지 쫓아와 귀찮게 쏘아대는 벌떼들처럼 퀴어문화축제마다 부리나케 따라나서는 그들이 이젠 무섭기까지 하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대하며 지옥에 갈 거라고 진심을 다해 외치는 한편 사랑과 인권 그리고 탈동성애를 함께 말하는 그들의 무감한 서슬을 직면할 때마다 내 안의 여럿들이 요동친다. 지옥에나 가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탈’동성애하라고? 사랑과 인권이라는 말로 둔갑한 그들의 무지가 어떻게 칼날이 되는가를 그날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한편, 묻고 싶었다. 내가 온전한 나로서 당신과 이 세상에서 공존할 수는 없는 건지. 어쩌면 멍청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휘두르는 태극기에 우리의 존재는 이미 없었으니까.
그날 그들은 퀴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함께 하고 있긴 했었다. 동성애반대‘축제’와 ‘부스’를 꾸린 것. 역대 처음이란다. 소식을 미리 듣고 알고 있었지마는 실제로 보고는 좀 놀랬다. 꽤나 구조적이고 체계를 갖추고자 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명분 세워 그들도 그저 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전대미문의 해괴한 일이다. 내년 퀴어문화축제엔 어떻게 대응(?)할까 과연 궁금하다.
기획단분들의 인사를 받으며 입장한 퀴어문화축제의 현장. 탁 트인 광장을 둘러싼 곱게 차려진 부스들과 다채로운 사람들, 그리고 큼지막한 무대. 뒤이어 눈길이 간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슬로건에 더욱 힘이 느껴졌다. 내가 딛고 있었던 그 현장은 금방 비가 내릴 듯한 우중충한 하늘과는 대비되었다. 정말 환했다.
입구에서부터 행성인 부스로 가는 데만 열군데 정도의 부스를 만났다. 부스마다 나누어주는 물건들을 일일이 받다보니 행성인에 도달하기까지 두 손 가득이었다. 사람들이 많아 부스 안팎은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군형법상추행죄 폐지를 위한 서명과 학교성교육표준안 폐지를 위한 서명을 받고, 다른 한쪽은 후원모금을 독려하며 현장 후원자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비단 행성인만 붐비는 게 아니었다. 다른 부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북적였고 오고 감이 끊이지 않았다. 궁금한 나머지 나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페미니즘·인권 공동체와 대학동아리, 소모임, 정당, 종교계, 국가기관, 대사관, 기업 등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다양한 단체만큼이나 선물(?)들도 즐비했다. 부스 별로 차려놓은 스티커, 뱃지, 책자 등 가지각색의 굿즈들과 단체 소개, 사회적 이슈 등 다양한 이야기들과 문제들을 공유하는 유인물들.
사람들의 오고 감과 선물의 주고 받음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곧 한국사회로부터의 차별과 배제에 대한 저항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연대의 뜻을 나누는 행동 그 자체였다. 올 한해 있었던 일들이 우리를 더욱 자극했던 탓일까. 유일하게 우리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날, 그간 쌓여왔던 응어리들을 토해낼 수 있는 그 하루에 주최 측 추산 8만 5천 명이라는 역대 최다 인원이 이 저항과 연대의 행동에 함께 했다. 성소수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이등시민이 아닌 동등한 국민으로서 살길 원한다는 아픈 희망의 목소리가 세상 널리 울려 퍼지도록. 그런 의미에서 뒤이어 있었던 퍼레이드 행진은 이 염원을 생동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함이 아닐까. 바로 우리가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싸우는, 진정 성전(聖傳)의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이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 주인공이었던 그 자리, 현장에 있던 참가자들, 비록 참여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 한 비참가자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그 시간. 이 향연이 어디서든 매일같이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달콤함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욕심이 생긴다. 너희는 나중이라고, 당신의 자리는 없다고 우기는 사회의 아둔함과 냉소가 그 시공간에서만큼은 무력했던 것처럼 결국 더욱 많은 이들이 축제에서처럼 흔한 일상에서도 주인공이고자 나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흔한 일상의 퍼런 서슬을 마주해 사투를 벌이기란 정말 쉽지 않겠지만. 조금 두렵고 무서워도 견딜만하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주인공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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