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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스케치] 첫 운을 뗀 부산, 제주 퀴어문화축제 - 퀴어아이가!, 퀴어옵서예!

by 행성인 2017. 11. 9.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부산퀴어문화축제(좌)와 제주퀴어문화축제(우) 로고. 각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렸다

올해 국내 퀴어문화축제 지형에는 큰 변동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울 외에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로는 8년 전부터 시작하여 올해 9회를 맞이한 대구 지역이 유일했는데요. 무려 두 지역에서 연이어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됐습니다. 9월 23일, 부산 해운대 구남로 광장에서 제 1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10월 28일에는 제주 신산공원에서 제 1회 제주퀴어문화축제가 많은 기대와 설렘을 안고 열렸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부산퀴어문화축제에는 45곳, 제주퀴어문화축제에는 30곳이 부스 신청을 하고, SNS에서는 부산과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들뜬 분위기가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장소 선정부터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해운대해수욕장과 인접한 구남로 광장에 집회 신고를 내고 축제를 준비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행사에 필요한 무대와 각종 부스를 설치하기 위해 구청의 도로점용 허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해운대구청은 두 차례 신청을 불허합니다. 갖가지 핑계가 있지만 실상은 반대 민원과 성소수자 차별 선동 세력의 눈치를 본 행정조치임이 보였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린 해운대 구남로 광장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상황이 좀 더 어려웠습니다. 애초 축제는 함덕 해변에서 열릴 계획이었습니다. (함덕 해변을 사랑하는 이로서 굉장히 아쉽습니다...) 그러나 함덕마을회 측에서 일방적으로 논의 자체를 취소하고 축제 장소를 내주지 않기로 합니다. 이후 실제 축제가 열린 신산공원에 집회 신고를 내고 시청에 장소 협조 요청을 보내고 허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제주 시청측은 고작 30명의 반대 서명으로 민원조정위원회를 열더니 협조(승낙) 철회를 통보합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신산공원

 

이에 두 곳 기획단/조직위원회는 발빠르게 대처합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지지 기자회견을 여는 동시에 부산 기획단은 법률자문을 받으며 구청과 끝까지 협의를 이어나갑니다. 제주 조직위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접수합니다. 두 곳 기획단/조직위의 노고 끝에 부산은 구청과의 큰 마찰 없이 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고, 제주는 법원이 제주 조직위 측의 손을 들어주며 법적 문제없이 축제를 열 수 있었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 개최 과정 관련 기사 보기 - "홍준표 토크콘서트는 허용했지만, 퀴어축제는 곤란"

제주퀴어문화축제 개최 과정 관련 기사 보기 - 반대 많았던 제주 '첫' 퀴어문화축제, 이렇게 열렸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그렇게 개최된 부산과 제주 퀴어문화축제. 개최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들로 지역 언론에서 연이어 보도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덕인지, 두 곳 모두 서울과 대구의 1회 때를 생각해봤을 때, 1회치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주최측 추산, 부산에는 2천여명이, 제주에는 1천여명이 운집하며 성황리에 축제가 열렸는데요. 뜨거웠던 현장의 분위기, 글보다는 사진으로 함께 보실까요?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해운대 바로 옆에서 진행됐습니다. 바닷가에 온만큼 바다에 안 가볼 수는 없겠죠? 행성인 회원들이 잠시 짬을 내 바닷가로 가 "ACT NOW" 문구와 함께 행성인 깃발을 펼쳐보았습니다.

 

 

 

해운대 구남로 광장에는 무지개깃발을 두른 깜찍한 곰이 등장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부산과 제주 모두에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함께 했는데요. 퀴어문화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모모임 전매특허 프리허그! 부산과 제주에서도 많은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많은 이들의 울음을 자아냈다는 후문입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 하늘님이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제주에서는 지역 특색에 맞게 제주 사투리로 피켓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에서든 에이즈 혐오를 멈추라는 구호도 빼먹을 수는 없겠죠!

 

"제주에도 성소수자 하영 있쑤게!! 숨어살지마랑 나와그네 행복하게 살게마씀" (제주에도 성소수자 많이 있다!! 숨어살지않고 나와서 행복하게 살겠다.)

"어멍아방, 나와그네 성소수자들 아기들 기펴고 살게하게마씀" (엄마아빠, 나와서 성소수자 자녀들 기펴고 살게 하자.) 

 

퀴어문화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퍼레이드도 물론 있었습니다. 부산퀴어퍼레이드는 해운대 구남로 광장에서 출발하여 해운대 해변로를 따라 동백역까지 이동 후 해운대로를 지나 다시 해운대 구남로 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제주퀴어퍼레이드는 신산공원을 출발하여 제주 동부 경찰서를 거쳐 제주 시청을 지나서 잠시 걷다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부산퀴어퍼레이드 때 든 갖가지 피켓 부산퀴어퍼레이드에서 휘날린 깃발들
제주퀴어퍼레이드에서 펼쳐진 대형 무지개현수막 제주퀴어퍼레이드에서 펼쳐진 성소수자 부모모임 현수막
부산퀴어퍼레이드 제주퀴어퍼레이드

 

 

일취월장(日就月將) 

 

지역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은 이중의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성소수자 관련 행사, 모임 등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보수적이거나 좁은 지역 문화로 인해 지역에서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열거나 모임을 꾸리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산과 제주에서의 퀴어문화축제는 그 의미가 큽니다. 장소 선정부터 순탄치 않았고, 축제 현장에서도 서울과 대구 때처럼 차별선동세력이 출몰하며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기획단, 조직위 그리고 참가자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연대와 자긍심으로 무사히, 그리고 성황리에 축제를 준비하고 즐겼습니다. 이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성소수자들의 지역 활동은 그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전주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서울, 대구뿐만아니라 부산, 제주에 이어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치고 자긍심을 드러내며 전국이 무지개빛으로 물들기를 바랍니다.    

 

제1회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