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13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 보수기독교단체와의 만남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혼제도 배제를 약속했다. 그리고 16'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하 성평등 포럼’) 에 참여했다. 같은 날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민주당사 앞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성평등 포럼에 참여해 피켓팅을 하며 발언권을 얻었다. 하지만 포럼 이후 논쟁은 격해졌다.

 

 

1. ‘나중에

 

문재인 전 대표는 성소수자 인권정책에 대해 두 가지를 언급했다. 차별금지법은 불필요하다는 것과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것. 여야를 막론한 대선주자들이 보이는 태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시민들은 인권을 합의의 도구로 놓고 계산을 끝낸 듯 보이는 차기 대권주자들을 목도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불필요하다는 논리는 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전가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차별을 시정하는 기구이다. 독립기관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시정조치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국가위원회법을 두고 차별금지법의 불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인권 보장을 방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을뿐더러, 혐오세력들이 동성애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며 국가위원회법 폐지를 주장하는 프레임에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성애 법이라 부르는 저들의 논리와 달리,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의 인권과 존엄을 보장하는 국가의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선언이다. 법의 적용도 중요하지만, 제정 과정 속에서 소수자들이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 논의하는 환경 조성 역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차별의 효과를 되새기고 반인권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적용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변화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려면 그동안 본인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떤 고민을 통해 차별금지법이 무용하다고 판단했는지를 해명해야 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어떤 제도를 구상하고 있는지, 설령 차별금지법이 불필요하다면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성소수자 인권 보장제도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했다.

 

동성혼을 이야기하면서도 문 전 대표는 의제를 논의할 수 있는 인권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완곡한 거절을 표했다. 이 역시 시기상조를 판단하기에 앞서 본인이 동성혼을 논할 수 있는 인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노력을 할 것인지 먼저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성소수자 당사자 면전에 일갈했다. 당신을 보장할 인권제도를 만들 생각은 없노라고. 자신이 성소수자를 설득할 수 없듯이, 성소수자 공약에 대해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는 스스로 국민 앞에 자신의 무책임을 표명한 것이다.

 

그가 보인 태도는 최근 대선주자들이 혐오난동에 기존 인권기조를 철회하면서 보이는 어색한 절충의 일부다. 차별선동세력의 여론몰이 덕분에 동성애는 민감한 키워드로 부상했고, 여느 때보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정치인들의 입장을 들을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혐오프레임에서 동성애는 검열과 금지의 언어로만 유통되어 정치인들을 구속한다. 모두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입장을 언급했지만, 인권환경 조성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할 것인지 대답한 이는 거의 없다. 성소수자 인권을 편의적으로 부정해버린 이들은 당신들이 얼마만큼의 책임을 갖고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엄중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인권환경에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당신들은 성소수자 앞에, 사회적 소수자로 불리는 많은 이들에게 그간의 무책임과 반인권적 태도를 사과하게 될 것이다. 정치공학의 표심계산으로 성소수자를 합의의 대상으로 만들어 순번을 매기고 누락시킨 태도들을 절대로 모른 척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2. 초대받지 않은 절박함

 

행사장에서 성소수자들은 문재인 전 대표의 기조연설 내내 피켓팅을 했고, 나중엔 소리를 질렀다. 당신 마음대로 나의 인권을 반으로 잘라내지 말라는 절규였다. 돌아오는 답은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준다는 것과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며 나중에를 연호하는 객석의 집단반응. 성소수자는 문재인 전 대표의 부정적인 입장을 듣는 것으로 모자라 참가자들의 야유 속에 행사주체의 호의도 무시하고 행사를 방해한 폭동으로 찍혔다’.

 

문득 2014년 서울시인권헌장 공청회가 떠올랐다. ‘동성애 아웃을 외치는 수백 명의 외침 한가운데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외쳤던 풍경은 3년이 지난 지금 나중에로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물론 두 행사는 많은 차이가 있다. 초기 서울시인권헌장 공청회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를 보여주려던 행사였다면, 후자의 공간은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가 바로 전날 보수기독교 단체를 만나 성소수자 관련 인권제도는 없을 것이라 약속하고 포럼을 열어 페미니즘과 성평등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공청회에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보수기독교세력들이 관객으로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집단으로 혐오구호를 외쳤다면, 성평등 포럼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체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의 의지까지 내려놓은 정치인을 찾아가 행사에 개입하고, 참가자들의 야유를 뒤집어썼다. 혐오세력의 압력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머리를 조아렸고 서울시가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을 폐기했다면, 지금의 문재인 전 대표는 성소수자 인권과 무관한 자신의 결백함을 혐오세력 앞에 스스로 찾아가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자체를 부정했다. 박원순 시장은 성소수자들에게 사과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아직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못박는다. 수치심 없는 정치의 시대에 대선주자들은 혐오세력의 강력한 민원공격에 눈치를 보며 입장 바꾸기에 급급하고, 정책에서 배제되는 당사자들 면전에 반인권적 선언을 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

 

두 상황의 상이한 배경과 결과를 인권에 대한 정치인들의 입장차이로 볼 수 있겠지만, 3년 동안 성소수자를 향한 프레임은 완연하게 달라졌다. 혐오세력은 보수정권의 비호 아래 조직화되었고, 혐오의 집단외침 속에 인권은 검열키워드가 되었다. 2012년 대선 당시 공약했던 차별금지법을 뒤엎은 야당 대권주자는 최근 부상한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붙여 자신의 정책을 선전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이는 낙태법이 민감한 사안이라 언급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차별금지법은 불필요하며, 동성혼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 자리까지 만들어 열었지만, 자칭 그의 페미니즘 우산으로부터 배제되는 여성/퀴어들은 어떤 예고도 없이 자신의 언어를 도둑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3년 전과 지금의 갭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절박하게 외쳐야만 귓등으로나마 듣는 척 하는 풍토는 달라지지 않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성소수자들의 절박함 또한 그대로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여론의 함성은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위축시킨다.

 

하지만 나중에라는 구호는 동성애 아웃과 달리 복잡한 결로 다가온다. 물론 저들의 외침은 행사 진행을 방해하지 말고 순서를 지키자는 형식의 완성을 위한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보수기독교단체에 가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한 상황에 나중에를 연호하는 참가자들의 외침을 질서를 지키라는 구호로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성소수자는 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받지 못한 집단이다. 이는 성평등을 약속하는 정책포럼에 여전히 성소수자를 배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존의 성별이분법 이성애 중심의 양성평등정책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유력 대선주자가 성소수자의 인권배제를 약속한 상황에서 발언권을 줬으니 행사의 질서를 지키라는 요구는 권력의 오만이다. 더구나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기존 차별금지법 공약을 뒤집고 나와 페미니스트 운운하는데 그에 대한 소수자들의 배신감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무시당한 당사자가 개입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3. 앵벌이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에서는 격전이 일었다. 행사장에서 성소수자의 개입을 두고 누리꾼들은 진행을 망친 이들에게 발언권까지 줬는데 이런 비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인면수심이라는 공격을 쏟아냈다. 문재인 전 대표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비판역시 쇄도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차기 대권주자를 모함해서 앵벌이 하는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논쟁의 정당성을 떠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비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문재인 후보를 향한 비판을 공격으로 치부하고 조리돌림하는 것은 대권후보 지지자로서 품위가 결여된 행위이다.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의 목소리를 등지고 밀실정치를 하면서 자기를 향한 비판을 원천봉쇄했던 데 있었음을 기억하자. 지금 상황에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호는 그가 지금 있는 자리, 그가 원하는 자리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자라면 오히려 그를 향한 비판을 방어하기보다 그의 잘못된 정치활동을 직언해야 했다. 문재인 후보의 자리가 갖는 책임의 무게를 인지한다면 오히려 비판의 언어들, 경계에 매달린 언어들에 귀 기울이고, 문 전 대표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이 이들을 외부 비판에 불안으로 점철케 하는가. 아니, 어째서 불안에 대한 태도가 위축과 방어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지자들의 태도는 5년 전 자신의 인권공약을 뒤집어버린 문 전 대표의 변화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혐오가 세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혐오는 표심으로 계산된다. 자신의 인권활동 경력이 있을지라도 선출직에 올라야 한다면 혐오와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 모른다. 혐오 대상은 없는 취급 하면서 지지하지 않아도 차별은 반대한다는 어정쩡한 젠틀맨의 거짓 관용을 합리적인 절충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당신의 인권을 양보하라는 것이 나름의 계산이고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를 기회비용으로 삼고 혐오와 절충하는 당신들의 행동이야말로 앵벌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성소수자단체가 문재인 전 대표를 공격해서 앵벌이 한다는 공격은 기존 차별선동세력들이 동성애자를 세금도둑으로 몰아갔던 것과도 교차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사회에 대한 기생과 약탈, 오염으로 재현되었던 역사를 재차 소환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도록 선동하는 권력과 제도를 비판해서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을 앵벌이라고 부른다면, 좋다. 우리는 계속해서 당신들이 배제한 인권에 대한 요구들을 끝까지 모아내겠다.

 

 

0. 추신_ 불화함에도 연대

 

하지만 위의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숙고하는 지점은 이후의 연대가 기존과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다.

 

포럼 현장에는 여성단체도 있었고 문재인후보 지지자도 있었(을 것이). 물론 둘이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장에는 성소수자들의 피켓팅을 지지하는 참가자와 발언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도 많았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에 연대를 표시하며 피켓팅에 참가한 다른 여성 활동가는 야유의 현장에서 나중에를 외치는 여성단체 동료의 눈을 마주쳤다고 한다. 상대 역시 당황했고, 구호와 몸짓이 잦아들었다고 전한다. 온라인에서도 그간 연대활동을 하면서 관계를 쌓아온 노조 활동가들의 발언들이 당황과 실망을 준다는 멘션을 본다.

 

성소수자 가운데 야당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을 비롯한 몇몇 당사자들은 준비된 행사에 개입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성소수자를 배제한 태도는 구부능선을 넘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양보할 수 있다는 당사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참담하다. 성소수자 동료에게 대의를 위해 우리의 존엄과 인권을 내놓아야 하는데 대한 부당함을 논박하는 것은 그간의 토론과 다른 언어와 태도를 요구한다. 싸움의 결이 명확해졌다고 판단하지만, 동료와의 관계는 생각만큼 온전치 않았음을 깨우친다.

 

인권활동가 출신의 야당 대선후보는 시민사회의 연대운동 안에 보다 첨예한 관계들을 예고한다. 우리는 연대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물어야할 것이다. 연대는 단순히 우리가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동의하는 관계일 수 없다. 연대의 관계 속에서 불화를 목도하면서, 그간 암묵적인 합의는 합의가 아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기존 관계들 안에 함의된 친밀함과 동질감을 비판적으로 보는 데 익숙해져야할 것이다. 더러는 불화와 충돌에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논쟁과 불신의 계기들이 찾아온다. ‘우리라는 관계는 근본부터 의심될 것이기에, 연대의 균열 위에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연대와 투쟁은 확연히 구분되거나 대척에 놓인 관계가 아님을 배운다. 당신은 나의 동료이지만 투쟁의 상대이기도 하다. 나를 호소하고 당신과의 거리를 재단하는 작업은 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우리의 세계는 저마다 다르기에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언제라도 단절과 분리에 노출된다. 관계의 균열을 살피는 작업은 차별선동세력을 향한 분노와는 다른 감정을 촉발시킨다. 단호한 태도와 달리 동료와의 논쟁은 더 많은 배려와 집중을 필요로 한다. 언어는 더욱 날카로워지겠지만, 날카로운 언어가 동료에게 상처 내지 않도록 배려를 견지하며 신뢰를 확인해야할지도 모른다. 논쟁에 지치지 않기 위해, 논쟁 속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지혜를 필요로 하는가.

 

연대는 고통을 동반한다. 불화와 불신, 실망과 쟁투의 과정만큼이나 우리는 연결고리를 찾고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 놓인 균열을 연결할 수 있는 매듭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균열 속에서도 연결이 가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고통의 과정이 대선후보들의 입장변화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것은 헛된 바람일까. 변화의 한복판에 혓바늘처럼 고민이 돌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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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3 03:30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ㅇㅇ
    2017.04.30 01:12 신고 [Edit/Del] [Reply]
    웅님 인권은 항상 지금이 중요하고 우선순위는 없고 인권을 챙길수록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믿음 아래에 물어봅니다
    지금은 웅님의 2014년 게이 언어에 대한 기사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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