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의 약속! 성소수자 촛불문화제 - 대통령 후보들은 평등을 약속하라! ① - 나, 트랜스젠더 [스케치]
by 행성인2017. 4. 6.
많은 시민들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을 세상을 위한 변화의 요구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소수자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변화를 원합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합의 대상도, 시기상조의 이슈도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지금 당장 보장되어야 합니다.
5월 장미꽃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운동은 3월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4월 17일 직전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성소수자 주간을 진행합니다. 항상 어디서든 존재했던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외칩시다!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사진촬영: 무냥, 강조새, 마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주간의 첫 행사가 열렸던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트랜스젠더로서, 성소수자로서 우리의 인권이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제도와 변화를 요구하는 문화제 <변화를 요구하는 성소수자들의 외침! - 나, 트랜스젠더>를 개최했습니다.
문화제에 앞서 오후 6시부터는 부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행성인 부스에서는, 각자가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주제로 포스트잇에 메세지를 적고, 포스트잇으로 트랜스젠더 깃발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나답게'살기 위한 메세지로 완성된 트랜스젠더 깃발
오후 7시부터는 본격적인 문화제가 시작됐습니다. 은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다니(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님의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는 발언과 공연으로 두 시간을 가득 채우며 진행됐습니다.
사회를 맡은 은찬(좌), 다니(우) 님
비가 오락가락하며 봄답지 않게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약 80여명의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이날 발언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권리, 노동권, 의료적 차별 및 건강권, 성중립공간 등 트랜스젠더 의제와 관련된 다채로운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놓치기 아쉬운 발언자들의 발언문을 모아 공유합니다.
왼쪽부터 한희, 이승현, 강은하, 이혜민
발언1. 트랜스젠더,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 한희(SOGI법정책연구회)
안녕하세요. SOGI법정책연구회 박한희입니다.
오늘 새벽 박근혜가 구속되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차별과 혐오를 조장해오던 박근혜 정부가 끝나고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기대에 차있습니다. 정치권은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대선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에서, 아니 이를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는 대선에서조차 트랜스젠더는 어떤 존재로 대우받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려고 보면 성별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비행기 예약을 할 때는 물론이고 여권에도 성별은 남자로 기입을 해야 합니다. 제 항공기 티켓에는 이름 뒤에 MR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게 무슨 암호문자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미스터를 나타내는 말이라더군요. 여성의 경우에는 미스를 의미하는 MS라고 적혀 있고요. 그런데 막상 저는 그렇게 남성으로 표시된 여권과 티켓을 들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출국심사 및 입국심사에서 어떠한 질문을 받거나 한 일도 없었습니다. 출입국 심사를 하는 이유가 이 사람이 여권과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표시된 성별과 외견상 성별이 다른 것은 본인확인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죠. 그렇다면 왜 여권과 비행기 티켓에 굳이 법적 성별을 나타내야 할까요?
실제와 맞지 않는 성별표기는 여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선거를 위해 투표소에 가면 선거인명부에 서명을 하고 본인확인을 하죠. 그런데 공직선거법은 선거인명부에 성명, 주소 등과 더불어 성별을 기재해야 한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투표소를 가서 보시면 선거인명부에서 눈에 띄는 가장 가운데에 성별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성별은 법적성별이죠. 투표를 하는데 왜 나의 성별이 무엇인지를 일일이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요?
이러한 이분법적이고 성별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성별표기는 단지 서류상의 한 글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관공서, 병원, 은행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업무에 부담을 느끼고 이를 포기하곤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업무를 보는 경우 법적 성별과 외견상 성별이 다르단 이유로 불필요한 질문이나 자료를 요구받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선거인명부만 해도 성별정체성을 반영 못하는 성별표기로 인해, 설문조사들에서 트랜스젠더의 30% 이상이 투표를 표기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연 트랜스젠더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나아가 이는 국가가, 법제도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체성을 온전하게 존중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분법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은 어떠합니까. 이러한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까?
이처럼 트랜스젠더가 법 앞에서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당연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양성에는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여 시스헤테로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통념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보수개신교계는 성별을 사회적 성, 즉 젠더로 규정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포함되어 반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지자체들은 이에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하여 왔습니다. 이분법적 성별표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는 어떻습니까. 2015년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를 두지 않는 것에 위헌판결을 내리며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도한 19대 국회는 본회의 마지막날에 갑작스럽게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생년월일, 성별표기는 유지된 채 단지 끝의 몇자리만을 변경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차별과 배제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렸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동등한 개인으로서 인정받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트랜스젠더가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변화를 외치는 대선후보들은, 정치권은, 사회는 이러한 원칙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누군가가 배제되고 나중으로 밀려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다양한 성별을 가진 개개인으로서 존중받은 사회를 위해 트랜스젠더들은, 성소수자들은 계속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싸워나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트랜스젠더는 당당하게 투표할 권리를 원한다!
국가는 다양한 성별을 인정해라!
발언2. 트랜스젠더 노동권 - 강은하(한국여성노동자회)
사회의 품격이 결정될 중대한 시기입니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행사에서 발언을 하게 되어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트랜스젠더 여성 시민으로서 무척 기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하는 강은하입니다.
잠시 제가 일하는 단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 땅의 모든 딸들, 일하는 여성들에게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여성노동운동단체입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위기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심각한 위기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경제개발에 피땀과 눈물을 바쳤음에도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린 사람들. 1997년 IMF사태 때 우선적으로 해고된 사람들. 그리고 바로 지금, 고용한파에 힘겨워하는 청년들 중에서도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 여전한 유리천장에 부딪치며 분투하는 사람들. 누구입니까? 여성입니다.
하물며 일터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가는 성소수자 여성의 처지는 어떻겠습니까? 특히 성별정정이 되지 않아서 신분증명을 하기가 난감한 트랜스젠더의 처지는 또 어떨까요? 트랜스젠더는 직업 선택의 범위가 사실상 제한될 가능성, 직장 내 차별에 노출될 위험성을 떠안고 살아갑니다. 성별정정이 된다고 해서 차별로부터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성별적합수술을 받고, 성별정정을 하느라 대학에 조금 오래 있었습니다. 법원으로부터 성별정정 허가 통지를 받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끝났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릅니다. ‘구직 과정이나 취업 후에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분의 이야기, 취업 문턱에서부터 자신을 숨겨야 했던 다른 성소수자의 이야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분의 이야기를 매일 또 종일 떠올렸습니다. 남중·남고를 나온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왜 여자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에는 여, 자가 붙는데, 남자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에는 남, 자가 붙지 않는 걸까?’ 하지만 씁쓸하게도, 정작 이력서를 쓰려니, 제가 졸업한 중·고등학교 이름 앞에 ‘남’자가 붙지 않은 게 새삼 다행스럽더군요.
결국엔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고 끝내자’ 라는 심산으로, 면접에서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원하던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이력서에 네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밝히는 것은 불리하다, 적지 말아라’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발밑이 푹, 하고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것에 명분이 서는 시민사회로 진로를 잡았기 때문에 면접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습니다. 빚 없이 4년제 대학에 다닐 조건이 되었기에 삶의 일정 기간을 유예하며 트랜지션을 안전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트랜지션에 필요했던 모든 것은 가족과 저의 짐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 시민인 저를 위해 사회가 부담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트랜스젠더인 저에게 이 사회는 야생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건 조금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거리를 꽉 채운 촛불은 긴 싸움 끝에 자격 없는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끌어내렸고, 우리사회는 이제 ‘장미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촛불의 물결 속에 우리 여성이, 성소수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기에 사회의 운명이 한 차례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 권리를 지금은 놓고 가야겠다’라는, ‘차별금지법은 나중에 제정하면 된다’라는 주장들을 저는 더더욱 인정할 수 없습니다.
혐오폭력으로부터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혐오범죄 통계법과 혐오범죄 방지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법제화해야 합니다. 갈 길이 정말 멉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시작의 시작’입니다. 세계를 전율케 한 ‘촛불혁명’의 결말이 ‘사회적 소수자 배제’여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제 목소리가 꼭 들리기를 바라며, 대선 후보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고, 고려대 대학원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에서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이혜민입니다. 오늘 저는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트랜스젠더가 비트랜스젠더에 비해서 더 많이 아프다고 얘기합니다. HIV 감염율도 높을 뿐 아니라 우울증, 자살시도의 비율도 높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가 왜 더 아픈지,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다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낙인 찍히고, 배제 당합니다. 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트랜스젠더 열 다섯명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특히 의료이용할 때 겪은 다양한 어려움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믿고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습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다짜고짜 반말로 “나는 이거 잘 모르니까 니가 알아서 와라”는 의사도 있었구요. 더 심한 경우는 “우리는 그런 거 안 한다”며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료진 중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의학교육과정에서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수소문 끝에 그나마 괜찮은 병원에 가더라도 의료비를 마련하는 것은쉽지 않습니다. 호르몬이나 성전환 수술이 건강보험으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호르몬을 맞을 비용, 수술을 받을 비용을 모으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법적으로 성별이 바뀌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구직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를 의료보험으로 보장하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118개국 중 45개국에서 호르몬 또는 성전환 수술 중 한가지 이상을 국가에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건강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45개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할 때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서 불임을 강제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성별정정할 때 불임을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결정해 국가의 제도상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법적 성별시 불임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고자 하는 트랜스젠더는 어떠한 제약 없이 호르몬 투여를,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는 병원도, 전문적인 지식과 감수성을 갖춘 의료진도 부족할 뿐 아니라 수술비용도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턱없이 비쌉니다.
이렇게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트랜스젠더의 삶의 기회가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건강에 대해서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도 거의 전무합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필요한데,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대규모 설문조사라고 할 수 있는 인구 센서스나 복지패널에서 성적 지향은 물론이고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체 트랜스젠더 인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인데요.
이러한 대규모 설문조사에서 성별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인구집단 수준에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건강불평등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건강을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이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좀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설문조사에 그 질문이 포함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은 올해 6월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해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트랜스젠더를 아프게 하고, 적절한 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다층적이고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의 건강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주체들이 연대해야 하는데요, 저는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의 일원으로, 연구자로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왼쪽부터 별, 우야, 라라
발언4. 학교 내 차별, 성교육 표준안 - 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 인권팀 '나이반')
안녕하세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청소년인권팀에서 활동하는 별이라고합니다.
정부는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균등한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이는 쉽게 무시당합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원하는 성별표현의 자유도 박탈당합니다. 여학생, 남학생의 교복의 구분이 매우 뚜렷합니다. 교복을 입을 때도 내가 느끼는 나의 젠더보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3이냐, 2,4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회에서 제멋대로 정한 지정성별대로 입고, 행동하기를 강요당합니다. 또한 모두가 여자 혹은 남자이기를 강요하며 성별이분법을 공고히하고 그 안에서 논바이너리는 삭제됩니다.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도 OMR카드에 성별표시란이 있습니다. 거기엔 1번 남, 2번 여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자혹은 남자가 아닌데, 내 손으로 남자 혹은 여자라고 마킹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공교육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지우며 스스로 자신이 트랜스젠더가 아님을 선언하게끔 합니다. 이렇게 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없는 존재 취급합니다.
또한 교육부에서 6억원을 들여 성교육 표준안에는 남자는 누드에약하고 여자는 무드에약하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다는 등 말도안되는 성차별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은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란 교육부가 성교육을 체계화하겠다면서 2015년 3월 각 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가이드라인'입니다. 교육부는 유엔의 협약에 따라 제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의 권고에서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극우단체와 일부 보수기독교계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있습니다. 학교 내에 엄연히 존재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차별과 폭력으로 밀어 넣는 위험한 결정입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들이 평등한 교육을 받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연대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구호함께 외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교육표준안 폐지하라!
감사합니다.
발언 5. 젠더차별 없는 성중립공간을! - 우야(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
안녕하세요. 저는 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야입니다. 꼬막은 물에 온도에 따라 성별이 변합니다. 저는 꼬막처럼 물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변하는건 아니지만 여성도 남성도 될 수 있는 바이젠더이자, 여성, 남성에게 모두 매력을 느끼는 바이섹슈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성평등화장실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여자화장실, 남자화장실 사이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었고, 지금도 고민중입니다. 특히 레즈비언 부치라고 정체화 했을 때, 그리고 지금 남성 성별표현을 하고 다닐 때 어렵습니다. 지정성별 여성이기에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저를 보고 놀라던 사람들, 자기가 잘못들어왔다고 생각해서 표지판을 다시 보고 들어온다거나 여기는 여자 화장실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래 "저도 여자예요."하면 "미안해요."라고 하고. 그런데 말이죠. 혼난 적도 있어요. 왜 그렇게 남자같이 하고 다녀서 자기를 헷갈리게 하냐고.
그 이후로 성평등 화장실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화장실, 남자화장실 중간에 "당신은 두 곳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 없습니까?"라는 문구를 보고 누군가는 공감을 하거나 누군가는 고민을 하거나 누군가는 왜 이런 문구를 붙였지? 하고 생각했으면 하고요.
성평등 화장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을 때, 강남역 인근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로 모두와 공유하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안전한 화장실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남녀 공용 화장실 전수사를 하고 현재 있는 공용화장실을 남/녀 화장실로 분리 하고, 신설 건물에서 층별로 분리 설치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매우 안일한 대책이라고 봅니다.
재작년 버지니아 주의 한 트랜스젠더 고등학생이 생물학적 성에 따른 화장실만 쓸수 있게 한 학교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뒤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지난해 성전환 학생들이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성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과 라커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었지만 지난 22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날 법무부와 교육부 명의로 전국 학교에 보낸 서한에서 "법적 혼란"을 이유로 성전환 학생의 화장실 이용에 대한 정부 지침을 폐기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노스캐롤라이나 주 의회는 이날 성소수자 차별 화장실법인 이른바 'HB2'(House Bill 2) 폐지 안건을 통과시켰으며, 이 직후 민주당 소속 로이 쿠퍼 주지사는 폐지안에 서명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州)의 '성(性)소수자 차별 화장실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죠.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대통령도 너무 힘들었는데, 미국 대통령까지 제 삶을 이리도 힘들게 만들줄은 몰랐습니다.
어쨋든 성평등 화장실 캠페인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공중화장실을 들어가지 못하고, 누군가는 공중화장실을 들어갈 때 마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성별로 살 수 없음에 절망하기도 하겠다고요.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장애인 화장실을 들어갈 때 마다 "아 나는 장애인이구나, 나는 장애인이니까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하고요.
누구나 평등한, 안전한,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꼬막에서 성평등 화장실 표지판을 만들면서 바지, 치마, 휠체어 등을 없애고 성별, 장애에 관계없이 '온전한 나'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분법적 지정성별 역할을 고착화 하는 공간이 아닌, 어떤 성별이든, 장애가 있든 없든, 특정성별에게만 육아노동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누구나 평등한, 안전한, 온전한 화장실로 부터 모두 함께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발언 6.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로서 요구한다 - 라라(성소수자 부모모임)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라라입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4년 전 처음 아이와 정체성을 이야기나눌 때 MTF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들에서 딸로 받아들이고, 호르몬과 수술을 위한 마음의 준비도 했었습니다. 그동안 홀로 겪었을 아이의 고통이 전해졌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호칭을 딸과 언니로 바꿔서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아이는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현재는 본인이 여성화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젠더퀴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 이전에는 한 번도 트랜스젠더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었고, 트랜스젠더분들을 만난적도 없었습니다. 활동을 통해 트랜스젠더분들을 만나면서 MTF, FTM,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등의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자기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위화감은 빠르면 만 2세 아동부터 발생하며 사춘기를 맞이해 2차 성징이 발달하면서 더욱 심해진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자기 신체 혐오감도 심해집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자살시도율은 50%가 넘습니다. 80%이상이 우울감과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기 시절의 적절한 억제 치료 및 호르몬 치료가 위화감을 느끼는 초기부터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초.중.고 교육제도 안에서 젠더의 다양성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있어 큰 고통은 소외감이라고 합니다. 트랜스잰더는 외모나 성격등 여러요인으로 학교를 일찍 그만두는 사례가 많으며, 커밍아웃 이후 집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탈 가정하는 사례가 많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찾아가는 종교의 교리들도 그들을 죄인이라고 규정하므로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되며, 심리상담이나 병원을 가도 전환치료를 권유받게 되는 등 사회의 어느곳 하나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통계가 나와 있지도 않지만 2015년 미국에선 트렌스젠더 살해 비율이 역대 최고치였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종교로부터, 또병 원에서, 직장에서 날마다 곳곳에서 겪는 시선폭력과 혐오와 차별은 거의 모든 트랜스젠더가 겪고 있는 고통입니다.
세계 트랜스젠더 보건의료 전문가협회는 성별비순응을 정신병리로 간주하는 경향에서 탈피하자고 촉구하였으며, 성별비순응은 성별이분법문화의 규범에 따른 차이이지 병리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부모모임 회원인 MTF친구는 트랜스젠더가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왜 뉴스에서 다뤄주지 않느냐고 자주 항의하곤 했습니다. 가족들이, 직장동료가 자기를 '정신병'으로 인지하기에 답답한 마음의 호소일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바꿔야만 합니다. 그들을 소외시키고 힘들게 하는 혐오와 차별과 낙인을 멈추어야 합니다.
최근에 한 회원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서 바뀔 모습에 대비해 집에서 독립하고 디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서 입니다. 외국의 인권 선진국들은 트랜지션에 따르는 의료비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부러운 제도입니다.
힘든 트랜지션 수술과정이 마쳐지면 호적정정이라는 또 하나의 법적 성별찾기 과정이 남습니다. 원래부터 남녀구분이 없는 주민등록법이 부여된다면 이 과정에서 쏟게 되는 모든 재화와 용역들은 절약될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성구분없는 주민등록법이 시행되며 현재 우리나라도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이와같은 주민등록법안이 논의 중에 있지만 보수기독단체의 반대운동에 제정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사람의 지지자만 곁에 있어도 살만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트랜스젠더 인권의 지지자가 되어 주십시오. 인권에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바꾸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날 참가자들은 위와 같은 피켓을 들고 "트랜스젠더 차별 없는 노동을!", "수술 없이도 성별정정할 권리를!", "트랜스젠더가 눈치 보지 않고 투표할 권리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발언의 이어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Heezy Yang
아네싸
차세빈
차세빈
마지막으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이 날의 문화제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 2차 문화제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의 주관으로 진행됩니다. 2차 문화제에도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