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이와 여성은 절대 동병상련의 관계만이 아니며, 어떤 면에선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까지 가지고 있다. 어떤 게이의 혀끝에선 천박한 여성혐오가 신랄하게 쏟아져 나오며, 특정 페미니즘은 게이를 ‘여성 혐오의 최종적 화신’으로 본다.

 

 

물론 저들이 주류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 얘기를 꺼낸 것은, 저들이 그저 un-pc한 존재로만 낙인찍혀 담론의 뚜껑자체가 닫힌 건 아닌지 좀 아쉬운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여성혐오적인 게이, 가장 게이혐오적인 페미니즘은 들여다 볼 가치도 없이 폐기 처분 해야 하는 걸까?     

 

1. 게이에게. 너는 ‘왜’ 여성혐오를 하니?


게이의 여성성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갑론을박하던 주제였고,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여성 혐오인가?” “아닌가?” “그냥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나이브한 결론을 내릴까?” 그러다 고민의 프레임 자체를 다시 짜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들은 왜 도 있는데 오빠를 쓰는가? 게이들은 왜 여성성을 전유하고, ‘여성적이며, 여성적으로 보이는?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강제된 이성애 사회에서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여성이고, 여성이여야만 한다. 이성애는 성애의 재현 경제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를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째, 이성애 재현 양식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둘 째, 그것을 패러디 하거나 셋 째, 아예 새로운 재현 양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허나 마지막 방법은 대개 실패한다. 무엇을 새로 만들어내도 그것은  결국 이성애의 모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애는 패권적인 재현이고, 다른 재현 양식을 죄다 잡아먹는다. 게이의 욕망은 설령 도주를 시도할지언정 이성애 재현의 자장 안에 포박 당하고 만다.

 

주지하다시피 불균등한 권력으로 점철된 이성애를 차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이는 여성 억압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주체가 (혼탁하긴 하지만) 나름의(?) 남성이란 께름칙한 상황에서, 이는 더더욱 위험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허나 나는 이 지점이 오히려 연대의 토대를 세울 수 있는 터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약간의 가지만 친다면 말이다.

 

게이의 여성혐오를 “게이‘도’ 남성이라서 어쩔 수 없이 여성혐오를 한다.”라고 분석하는 기존의 설명 방식은 게이의 여성혐오 원인을 남성이란 정체성 아래에 귀속시키며, 이는 게이에게 있는 남성적 요소를 처벌하고 절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허나 이런 대응은 남성 간의 차이를 지우며, 남성의 여성 억압을 자연화할 우려가 있다.(남성은 ‘남성’이라서 여성을 억압한다?) 따라서 나는 게이는 왜 굳이 이성애를 경유하는지, 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지, 결정적으로 왜 그것이 여성혐오로 연결 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애 남성은 자기 안의 여성을 색출해내려 하지만 게이는 그렇지만은 않다. 여성이란 타자로 관통된 주체인 게이는, 타자의 목에 목줄을 차서 노예처럼 삼을 수도 있고, 정반대로 타자 속으로 허물어져가며 타자와 융합할 수도 있다. 이는 게이가 여성과 관계 맺고 있는 다층적인 양식 덕분이며, 이는 여-남 관계가 ‘억압’이라는 단일하고 절대적인 축으로만 이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궁극적으로 이는 남성 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남성이 여성과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2. 페미니즘에게. 사랑을 믿다.


페미니즘은 성을 ‘권력’이란 렌즈로 보는 인식론이자 사랑(대개 이성애)을 정치화 하는데 천착하는 사상이다. 페미니즘은 사랑에 덕지덕지 붙은 환상을 뜯어내버리며 사랑이 얼마나 위선적인 권력 양식에 불과한지 성공적으로 폭로했다. 허나 가끔은 잔인하리만큼 사랑을 바싹 말려버리기도 했다.  

 

앞서서 특정 페미니즘 진영은 게이를 여성 혐오의 화신으로 본다고 했다. 이들은 남성 동성애를 마침내 완벽히 봉합된, 남성 연대의 귀환으로 여긴다. (근대의) 남성 연대는 그 유대가 일정 수위를 넘으려고 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제동이 걸리는 순환적 구조지만, 남성 동성애는 브레이크 없이 계속 가속만 하는 고착적 구조라는 것이다. 

 

처음 저 주장을 접했을 때는 불쾌함과 반발만이 들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금 연대의 토대를 발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결국 페미니즘이 허물어내고 재구성 해내야 할 관계는 두 가지인데, 첫 째가 앞서 말한 여성과 남성의 관계(억압)며 둘째가 남성과 남성의 관계(권력)이다. 한데, 페미니즘이 다양한 남성 간의 관계를 전부 권력으로 환원하고 매몰한다면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페미니즘이 에로스에 침투한 권력들을 제거 하려면, 그 무엇보다 권력이 아닌 것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페미니즘의 필터를 다층화해줄 것이다. 또한 그럴수록 게이들에게도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지던 동성애를 다각도로 점검해봐야 하며, 욕망을 끊임없이 정치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게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욕망을 정치화 하는 페미니즘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성소수자 운동은 때때로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여튼 앞서 논의한 사안을 종합해보면, 게이의 남성 권력과 약자성은 동시에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남성(특권자)으로서 페미니즘을 옆에서 ‘조력’하거나, 소수자(약자)로서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방식은 삐걱거리게 된다. 게이들은 본인의 위치를 다시금 곱씹어봐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고작 두 가지였던 연대의 양식이 다양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나가며


이 글은 어찌 보면 물타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겠다. 면죄부를 주고 도피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겠다. 나의 방점은 절대로 그것이 아니다. 앞서서 말해왔듯이, 나의 의도는 첫 째로 연대의 지점을 여러 곳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둘 째는 위계적인 기존의 연대 방식을 비틀어내는 것이다. 헤테로 여성과 게이 남성이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즉 가해자-피해자, 억압자-피억압자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세된 남성-종속된 여성으로서 기존의 여-남 구도 바깥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헤테로 여성의 헤테로 권력은 결국 남성 권력으로부터 굴절돼 나온 것이며, 게이 남성의 남성 권력은 부분 거세되어있으므로) 단순히 연대의 양만 늘리는 것보다, 다양한 주체를 생산하고 개입케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종 많은 연대들이 동일성(공통의 억압,성질,적 등등)이라는 단일한 기둥에 의존한다. 허나 이런 연대는 타자가 나와 다른 인간이었음이 밝혀지기만 하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 뿐 아니라, 타자는 이제 그 누구보다 제거해야할 가장 큰 숙적으로 변모한다.(메갈리아가 나름 동맹군이라 여기던 게이에게 가장 크게 분노했던 것처럼) 결국 나와 동일한 사람은 세상에 없고, 그렇다면 연대란 불가능한 것이 된다. 나는 연대의 의미가 다양하게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대의 토대를 갈등의 한 복판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갈등의 지점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깊게 연루된 장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갈등을 들출수록 내 안의 타자, 타자 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누군가 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철을 담금질 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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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18 01:19 신고 [Edit/Del] [Reply]
    "나의 권력을 마주하고 타자를 소환하라!"
    매우 좋아요. 공감하고요.
    근데 결론이 너무 말끔합니다. 갈등을 봉합하지 않은 방식의 연대를 찾자고 했지만 글의 메시지는 너무나 중용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그게 훌륭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불화지점을 더 찾아서 더 길게 써주세요.
    스토리텔링 매우 훌륭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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