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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2017 행성인 반성폭력 교육 후기

by 행성인 2018. 1. 14.

차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조정위원장)


 

 

청록색 리본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의미한다고 한다.

 

후기를 통하여 2년 간 행성인에서의 위치 변화를 겪음과 동시에 반성폭력 교육을 진행하며 느낀 짧은 소회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2017년부터 조정위원회[각주:1] 활동을 하고 있는 차차라고 합니다. 5년 전부터 행성인 후원회원이 되어 아주 간간이 행사나 소모임, 집회 현장에 참여했던 숨은 회원이었는데요, 교육을 맡은 계기는 2016년 구 조정위원분들이 행성인 내 성폭력 사건이 있다며 당시 제가 활동하고 있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가해자교육과 반성폭력 교육을 의뢰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사건은 조정위원회에 정식으로 회부된 첫 사례였고, 조정위의 권고 내용과 사건 개요와 단체의 입장이 홈페이지에 공개되었으나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언론보도로 인하여 공개가 중단된 바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해 10월 경 회원행사 형태의 반성폭력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조직문화 점검을 위한 간단한 워크숍, 사례를 통한 성폭력 구성과 의미, 성폭력과 관련한 제도, 성소수자와 성폭력, 당사자와 주변인으로서의 책임과 윤리 등을 모두 다루고 싶어 욕심을 내 시간이 부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운영위원회, 팀/소모임 활동 회원 외에도 성폭력 사건 해결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오시는 등 다양한 행성인 회원들의 참여로 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가해자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인연으로 저는 2017년도부터 조정위원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하반기에 운영위원회 및 조정위원 대상 반성폭력 교육, 활동 회원 대상 반성폭력 교육을 두 차례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외부 교육자에서 조정위원으로 제 위치가 바뀌고 계속 조정위원회의 결정문에 따른 권고 사안의 이행을 점검하면서, 많은 질문들이 생겼고 성찰해야 할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반성폭력 교육 강연을 제안 받았을 때에는 2016년도와 같은 형식의 교육보다는 계기가 된 사건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과 같은 인권 침해사건이 접수되면 행성인처럼 규약이 있는 공동체 내에서는 처벌, 가해자교육이 결정되고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절차’가 과연 ‘변화’를 담보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권고 사안을 그저 ‘따른다’기 보다는 결국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재고해보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준비할 당시 권고 내용 가운데 문제제기를 한 청구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책무감이나 부끄러움 등 마음의 무게에 짓눌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발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조직/공동체 문화의 변화를 촉구한, 피해 경험을 제기해줬던 청구인의 메시지와 목소리는 더더욱 다시 환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다시 결정문과 조사 내용을 읽으며 청구인의 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저는 2017년 교육에서는 2016년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정위 결정문 일부를 복기 했습니다. 피해를 말한 청구인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메시지를 읽어내는 작업을 통하여 단체에서 어떤 것을 놓치며 사건 해결을 가지고 갔는지 중간 점검을 하면서 행성인 내부의 문화와 각자의 위치와 경험을 성찰하고 이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과 경험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흔히 단체에서 규약에 따라 사건 해결을 밟게 되었을 때, 처벌과 교육이라는 절차가 진행되면 이 기능을 하는 구성원 외의 단체 회원들에게는 단순 사건 개요와 처분 결과에 대한 공개, 기본적이고 형식적인 반성폭력 교육 밖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성원들의 성폭력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발화의 장이 열리기 어렵기에, 이번 교육의 장에서 더욱 해당 성폭력 사건을 통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된 교육 과정에서 사건 내용과 해결 과정을 공유한 회원들은 청구인에 대한 공감과 지지 의사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비슷한 경험을 호소하며 당시 탈퇴와 침묵이라는 선택지 속에서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이는 다시 주변 사람으로서, 어떻게 책임감을 가지고 듣고, 사건에 개입하고, 행동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단체 내부 구성원 간의 차이를 지각하는 감수성의 필요성도 이야기되었습니다. 활동을 하다보면 공동의제나 차별받는 동일한 위치를 강조하게 되기에 때로는 나이, 활동경력, 관계망, 지위, 성별 등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위계에 둔감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개된 성폭력 사건 또한 이러한 위계로 발생했기에 이를 행성인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각하면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질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교육 과정에서 실제 내부 사례를 가지고 공론장 만들기를 시도한 것은 제가 행성인 회원에서 반성폭력 교육자, 가해자 교육자, 조정위원을 거치면서 사건과 활동가 및 회원과 접점이 생겼던 특수한 위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주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위원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어떤 의무나 절차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는 않았는지, 앞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질문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1차적인 가해 사건과 이를 오랜 기간 이야기하지 못했던 청구인의 최초 문제제기의 의미를 제대로 다시 듣는 것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고요.
 
2016년과 달리 작년 교육을 앞두고 사전에 설문도 진행했는데요. 교육참여 회원들은 해결 절차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등의 개념에 대한 질문부터, SNS 상 사건 공개의 흐름들과 개입 방향, 성소수자 성폭력 개념의 구성, 성폭력 사건이 왜 후순위로 밀리는지, 주변인의 역할과 책임, 자신이 속한 타 단체 내 사건 판단과 처분에 대한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운영위와 조정위 운영에 대한 의견, 타 성소수자 단체 내에서 가시화된 성폭력 사건이 있는지, 피해자 역량강화를 위한 방법 등 단회기 교육에서 다루기에는 아쉬운 다양한 지점의 고민들을 참여하는 회원들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질문들이 더욱 심화되고 이야기될 수 있는 장이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다양하게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습니다.
 
교육 후기를 쓰고 있으면서 계속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이 글이 어떻게 읽힐지,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을지 걱정도 되지만 이것이 지금의 제 한계이고 용기낼 수 있는 범위인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간 조정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혼란에 빠지고,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1년만 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니 이런 경험이 단체에 계속 축적되고 공유되는 데에 더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행성인 내에서 반성폭력 교육이 열린 계기에 주목하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도 안정적으로 잘 이뤄지기를, 문제를 제기한 청구인과 유연하게 소통해나가기를, 2016년도 성폭력사건에 따른 권고 내용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계속 이어지기를, 사건 해결의 정답과 절차에 얽매이기 보다 실수의 경험도 축적하면서 상호간의 신뢰를 더욱 구축하는 과정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제가 열심히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전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몇 중의 장벽과 긴 시간의 뒤척임 끝에 행성인의 조직문화에 문제를 제기해주었던 청구인 분께 뒤늦었지만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1. 단체 및 그 구성원과 관련해 징계사유가 발생하거나, 분쟁이 생겼을 때 진상 조사, 조정, 징계할 권한을 가진 기구로, 3인 이상으로 구성하며 조정위원장과 조정위원은 운영위원장이 추천하고 총회에서 인준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