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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11월 행성인 여성모임 - 우리가 잘 몰랐던 가까운 이야기, HIV/AIDS 후기

by 행성인 2017. 12. 10.

 

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1월 25일 홍대에 새로 생긴 레즈비언 바에서 <11월 여성모임 - 우리가 잘 몰랐던 가까운 이야기, HIV/AIDS>가 열렸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기획한 것이다. 성소수자를 공격할 때, 가장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인 ‘HIV/AIDS’. 하지만, HIV 바이러스 감염 경로로 볼 때 어쩌면 가장 먼 존재가 레즈비언이라 그런지 레즈비언들은 ‘HIV/AIDS’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 역시도 행성인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마찬가지였고 강의를 듣고 새로운 고민이 쌓이는 것을 느끼며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에서 활동하는 타리님께서 진행해주셨다. HIV/AIDS에 대한 정보부터 세계적인 상황, 한국의 상황 그리고 함께 고민해볼 문제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강연의 시작은 타리님이 만난 미국에서 에이즈 운동을 하는 여성 활동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추측컨데 에이즈 문제를 멀게 느끼는 행성인 여성모임 사람들에게 여성 활동가들이 HIV/AIDS 관련해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는 역사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강연의 끝에서도 여성 성소수자들과 HIV/AIDS 관련한 가장 중심적 고민을 연결함으로서, 우리 안에서 고민해볼 과제로 던져주셨다. 그 부분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라. HIV/AIDS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정말 기초적인 정보부터 잘 알려주신 타리님의 강연을 되도록 세세하게 적어보았으니 아마 HIV/AIDS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풀리게 될 것이다.

 

HIV 와 AIDS는 같지 않다. 물론 HIV/AIDS라고 표기된 것을 자주 접한 사람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HIV는 바이러스 이름이고, 그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인체의 면역력이 저하되어 감염성 질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태가 AIDS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간다, 감기, 수두, 헤르페스처럼 몸에 바이러스가 있는 채 일상 생활을 하다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 여하에 따라 심한 열, 기침이나 수포와 같이 질병으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HIV 바이러스와 AIDS와의 관계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HIV 감염인, AIDS 환자라고 부르는 것이 절적한 표현이다. 이 둘을 합쳐서 이야기할 때, HIV/AIDS 감염인이나 P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PL은 People living with HIV/AIDS의 약자로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질병이 그 사람의 전체 정체성처럼 그 사람을 다 지배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로서 이야기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HIV 바이러스는 어떻게 전파될까? HIV가 전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노출된 바이러스의 양이 감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치료제를 잘 복용하는 사람의 체액이나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유입이 되었을 경우는 활발한 바이러스의 양이 굉장히 적은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 확률이 제로에 수렴하기에 치료제를 먹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HIV가 혈류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의 혈액이 밖으로 나왔는데, 상대방의 혈류 속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3초 안에 사멸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감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받는 질문 중에 ‘감염인을 문 모기가 나를 물면 감염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있다. 모기가 빨아들일 수 있는 혈액의 양이 굉장히 미미하기에 충분한 양을 옮길 수 없어서 감염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의료인들 그리고 병원 내 환자들에게는 전파의 두려움이 있다. 병원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보편적 주의 의무’가 있다. 이것을 지켰을 때 HIV는 충분히 보호가 되는 바이러스다. 보편적으로 감염병 예방을 하기 위해서 장갑, 마스크, 가운을 입고, 소독하고, 같은 도구를 재사용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면 HIV 바이러스는 전파되지 않는다. 그런 것이 통하지 않고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바이러스들도 있다. 예를 들면 메르스 같이 혈액이나 체액이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서 혹은 점액, 타액을 통해서 전파가 되어 격리가 필요한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HIV는 그런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타리님은 설명했다.

 

HIV 바이러스는 예방조치(콘돔) 없는 성관계 (0.01%~0.1%), 수혈 같이 오염된 혈액에 노출 되었을 때(90~100%), 임신 또는 분만에 의한 수직 감염(25~30%), 오염된 주사기의 공동사용 (0.5~1%) 등의 경로로 감염 된다. 그렇기에 HIV 바이러스에 노출 전 예방하기 위해서는 콘돔을 끼고 섹스를 하는 것, 수혈 시 오염된 혈액을 주입 받지 않는 것, 그리고 주사기 공동사용을 하지 않는 것 등이 있다. HIV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도 있다. 감염인이 먹는 에이즈 치료제가 있는데, 사전 피임약을 먹듯 그것을 며칠 또는 한달 간 꾸준히 먹을 때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HIV/AIDS 검사는 보건소나 아이샵에 가면 익명으로 검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에이즈가 발병된 이후에 치료를 시작했고 아프기 시작한 후 치료를 하다 보니 회복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검사의 문턱이 낮아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치료제를 먹기 시작하여 당뇨와 같이 꾸준히 관리만 하면 기대 수명에 큰 차이가 없는 만성 질환이 되었다. 치료제는 몸 속의 바이러스를 아예 없애주지는 않지만, 그 바이러스의 활동성을 거의 제로에 수렴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 그 경우,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서 체액이나 혈액이 밖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전파시킬 능력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의학적인 보고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만성질환 중에서도 기대 수명에 차이가 없는 거의 유일한 질병이라고 의사들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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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서는 HIV/AIDS에 대해서 왜 이렇게 편견과 혐오가 강한 것일까?  80년대 에이즈 패닉에 대해서 연구한 박차민정님의 글에 따르면, LGBT 단어와 동성애자 양성애자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다. 그런데 한국에서 첫 HIV/AIDS 감염인이 나온 것인 80년대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라는 정체성 이전에 HIV/AIDS 질병과 패닉이 한국에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어떤 집단의 문제라고 딱 문제 삼았다기 보다 비규범적인 섹스를 하는 사람들의 질병으로 알려졌다. 여성 경우 성매매 하는 사람, 남성의 경우 남성과 섹스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이런 비정상적인 섹스를 하는 경우 에이즈가 퍼져나간다고 알려진 것이다. 감염 경로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부끼리 섹스 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경우에 에이즈 위험이 있는 것 같은 공포가 사회적 패닉으로 퍼졌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80년대의 에이즈는 가정 밖을 벗어난 모든 문란한 성 전체를 표현한 단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혐오 때문에 HIV/AIDS 감염인은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첫번째는 의료차별이다. 60% 정도의 많은 감염인이 다른 질병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혈액 검사 중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안다고 한다. 즉 감염인이 사회와 맞닿는 최초의 접촉면이 병원인데 ‘당신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 못한다 나가시라.’ 라는 경험을 하는 곳이다. 질병에 대한 정보를 주어도 모자랄 판에 거부당하는 첫번째 장소가 바로 병원인 것이다. 물론 어떤 병원에서는 보건소에 가면 치료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에이즈 예방 협회에 가면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그냥 큰 병원에 가보라고 돌려보내는 곳이 여전히 많다. 또한 간단한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식판은 모두 파란색인데 본인만 빨간색인 경우나 그 식판을 본인만 비닐에 밀봉해서 넣으라고 요구 받는 경우도 있다. 매년 12월 1일 에이즈의 날이 되면 HIV/AIDS 감염인과 악수 포옹이나 함께 식사를 해도 괜찮다는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병원에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표식 등을 하고 맹장 수술을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전파 매개 행위 금지조항’ 이 있다. HIV/AIDS 감염인이 성관계를 콘돔 없이, 상대방에게 고지하지 않고 한 경우, 전파 매개 금지 조항에 의해서 처벌 받는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감염이 되었는지의 여부나 약을 잘 먹고 있는지의 여부는 재판에서 중요하지 않다. HIV/AIDS 외에도 다른 혈액 매개성 질환-B형 간염, C형 간염-의 경우도 혈액 제제를 통해 전파될 수 있고 성관계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HIV/AIDS만 형사처별을 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HIV/AIDS 낙인 만을 강화시켜 이 병을 특별하게 만들어 감염자를 숨게 만들고, 예방을 더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UN 에이즈에서는 전 세계에 똑같은 지표로 HIV/AIDS 낙인 지표 조사를 한다. 감염인들이 스스로 조사원으로 훈련 받고 동료 감염인들을 조사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은 내재적 낙인에 대한 지표가 굉장히 높게 나온다고 한다. 모두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관계가 파괴될 것 같다는 낙인 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이다. 이는 일상적으로 HIV/AIDS에 대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HIV/AIDS 감염 경로 역학조사 시 설문 조사를 한다. 동성간 성접촉이냐 이성간 성접촉이냐 체크하게 하는데, 보통은 이성간 성 접촉이 동성간 성접촉보다 높게 나온다. 이 경우, 많은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위 깨시민들은 ‘봐라 이성애자가 더 많지 않냐, 이건 동성애자의 병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런 태도는 HIV/AIDS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정체성에 따라 생기는 병이 아니라 어떻게 전파되는 병이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바르게 아는 것이다.  게이들이 HIV/AIDS에 취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취약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옷을 얇게 입고 다니면 감기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처럼, 모든 게이가 취약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이들의 HIV/AIDS의 취약성은 HIV 바이러스 감염경로를 생각해보면, 충분한 양의 바이러스가 상처를 통해 혈류에 들어가야 하니 성관계 시 상처 여부가 중요하다. 젤이나 콘돔을 사용하면 상처가 날 가능성이 사라지는데, 젤 콘돔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 그리고 그 상태로 다양한 사람과 하는 항문 성교라고 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후 예방약인 프렙에 대한 정부 지원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프렙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안정적인 파트너가 없고 콘돔 없는 성관계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정부가 정말로 에이즈 예방할 의도가 있다면 그 사람이 쉽게 이 약에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그런 성관계를 안전하게 하도록 프렙 처방을 쉽게 하도록 할 것인지가 논쟁화 되며 HIV/AIDS를 실질적으로 예방하도록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는 개인의 성생활에 대해 국가가 정한 규범적 범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와 체계가 문란함이라는 표현으로 개인의 성적 권리를 침범, 통제하려 하고 그것에 벗어날 경우 차별과 낙인을 찍어왔던 것에 여성들과 여성 성소수자들도 많은 억압을 받아왔다. HIV/AIDS 낙인을 없애기 위한 여성, 여성 성소수자들의 연대는 결국 우리를 억압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강연이 마무리 되었다. 천둥 번개가 치는 와중에서도 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스무명 남짓 되는 여성 성소수자들이 바로 그 운동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