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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큐에 알아보는 '헌법 개정' A to Z

by 행성인 2018. 3. 1.

마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법학부 학생이던 시절 가장 재미 없는 수업 중 하나를 뽑으라면 ‘헌법’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기상천외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포진한 민법이나 형법과 달리 헌법은 정말 와닿지가 않았다. 조문을 읽어도 마찬가지. 그 때는 법을 비판적으로 읽지는 않았던 때라 헌법의 조문들은 누가 들어도 좋은 당연한 말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허황된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단적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 2항을 살펴보자. 높으신 분들이 허리를 굽신 숙이는 선거철을 제외하고 이 조항을 피부로 느끼는 때가 있는가? 하지만 ‘워너원 팬 사인회 초대권을 훔쳐서라도 갖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절도죄’의 그림자는 코 앞에서 아른거린다.


이는 비단 나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올해 6월 한국은 지방선거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언론은 주요 후보들의 지지율을 쫓으며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만 해도 고향에 사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면 시장 선거에 관한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하지만 때가 되면 돌아오는 지방 선거와 달리 어쩌면 이번 생애 마지막으로 겪게 될지 모를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다들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새다. 바로 헌법 개정, 즉 개헌이다. 이미 이번 정부 출범 이전부터 개헌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져 왔다. 대선 당시 후보들도 그리는 상은 다르지만 모두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고 대부분 이를 공약에도 반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안을 제출해서라도 오는 6월에 개헌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법의 성격과 선거에 집중된 이목 탓인지 개헌을 둘러싼 여론은 사건의 무게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헌법은 무엇이고, 이를 개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법대는 나왔지만 ‘법알못’인 나의 눈높이에서 조금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Q. 헌법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막상 잘 몰랐음이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이는 헌법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에게 헌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중요한 법’, ‘높은 법’ 혹은 ‘제일 센 법’이나 ‘최고 규범’이라고 답이 돌아오곤 한다. 나 역시도 이 이상으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구글의 도움이다.


헌법은 대부분 이 정도로 규정된다. ‘국가의 기본 법칙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정하고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의 규범’. 하지만 이렇게 보아도 헌법이 얼마나 중요한 법인지 실감까지는 나지 않는다. 일단 ‘기본’, ‘원칙’, ‘최고’와 같은 단어들만 머리에 담고 넘어가자.


Q. 헌법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일단 한국의 법체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단어겠지만 한국의 법은 성문법 형식을 띄고 있다.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일정한 제정 과정을 거쳐 법전에 글로 남겨진 법이 성문법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개념이 불문법이다. 예를 들면 문서로 남겨지지 않았지만 반복되어온 관행에 따라 판단하는 관습법과 같은 판결이 반복되는 것을 통해 하나의 규칙을 형성하는 판례법이 있다. 물론 성문법 국가에 불문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성문법과 불문법, 둘 중 하나라고 딱 규정하기 애매한 것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성문법 국가에서 법적 판단의 원칙이 되는 것은 글로 남겨진 성문법이고 불문법은 이를 보완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이게 헌법과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성문법은 상위법과 하위법이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음이 중요하다. 법이 점차 광범위하고 복잡한 영역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부분들은 하위 규범이 다루도록 만든 것이다. 일례로 한국은 ‘헌법-법률-명령-규칙-조례’로 이어지는 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위법은 상위법에 반하여 제정될 수 없으며, 이는 반대로 상위법은 하위법 제정의 근거를 제공함을 의미한다. 헌법을 설명하는 ‘최고’, ‘기본’, ‘원칙’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하위 규범도 최고 법인 헌법을 거스를 수 없고, 헌법의 규정은 한 법규의 가장 강력한 존재 기반이 된다.


Q. 성소수자에게 이번 개헌이 가지는 의미는?


거칠게 말하자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도 있다.


올해 성소수자 인권포럼의 ‘레인보우 헌법과 변화, 함께 그려보기’ 세션에서는 무지개행동이 만든 개헌안에 관한 의견이 공개되었다. 구체적으로 짚으며 예를 들고자 한다. 가령 의견에 따라 평등 조항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이유로한 차별 금지 조항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강력한 기반이 됨과 동시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성소수자를 명확하게 보호할 수 있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또한 아동의 권리에 ‘급박하고 객관적인 신체위험이 없음에도 충분한 정보제공을 받지 아니하거나 자신의 동의 없이 신체를 돌이킬 수 없이 변형하는 시술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이 추가된다면 어떨까? 인터섹스 아동을 대상으로 의료진이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수술을 하는 의료남용행위를 막는 하위 법률은 이 조항 하나로도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혼인할 권리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가지고 각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이들이 성립되고 유지된다고 규정한다면? 최고 규범이 이렇게 규정을 해두었는데 사법부가 하위 법률인 민법을 해석하며 동성의 혼인을 불인정할 수 있을까?


헌법이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막고 혐오로부터 보호할 것을 규정한다면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과 사법부의 법률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성소수자 인권의 발전이 아주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Q. 헌법 개정 절차가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요?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헌법은 한 나라의 최고 규범으로 다른 법들이 따라야  할 원칙을 세우며 국가의 기본 뼈대를 구성한다. 한 마디로 나라와 법체계의 근간이다. 달라진 헌법 한 글자에 따라 당장 여러 법들이 사라지거나 혹은 없었으나 필요해진 법들이 생길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헌법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다면 사회가 불필요한 혼란을 겪는 것은 물론 법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 신중하게 개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개헌 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간단하게 나누자면 발의, 공고, 국회 의결, 국민 투표의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발의.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는 것이다. 참석이 아닌 무려 재적 의원이다. 다른 방법은 조금 더 쉽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친 후 개헌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헌법 개정안 합의가 불발될 경우 선택하겠다고 말한 방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헌법 개정안은 20일간의 공고를 거친 뒤 표결로 넘어간다. 의결은 60일 안에 마쳐야 하며 재적 의원 2/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개정안의 공고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도 다시금 협상을 하고 합의를 하는게 불가능 하다. 한 마디로 모 아니면 도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도 끝이 아니다. 국민투표가 남았다. 선거권자 절반이 참석하여 그 중 절반이 찬성해야 한다.


Q.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개헌 정말로 될까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국회 구성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은 가능하다. 여당이 개헌에 우호적인 당과 연대해도 재적 의원 2/3 이상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답은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성공인데 지금 한국당의 태도를 봐선 이 또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찬반이 첨예한 부분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부터 먼저 개정에 나서는 ‘순차적 개헌’을 신년 기자 회견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험난한 표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정치에서 예측불가능한 일은 늘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국민 투표를 앞두고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를 일이다.


Q. 그런데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개헌, 우리는 왜 목소리를 내야 하나요?


개헌이 불투명한 것은 당장 올해 6월의 이야기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시대가 흐르면 세상은 변하고 그러면 법 또한 거기에 맞춰서 개정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늦게 움직인다는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만큼 지금의 헌법이 여러 의미에서 효용을 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시간의 문제일 뿐 멀지 않은 시간 안에 헌법은 확실히 바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헌법은 나라를 구성하는 원칙과 체계가 변경되는 일, 문자 그대로 ‘나라가 바뀌는 일’이다. 이는 개헌에 엮이지 않은 사회적 집단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노동·지역·환경·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가지 제안과 주장이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안 그래도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인 우리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 국회나 정부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때문에 모두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우리만 조용하다면 성소수자들은 아예 없는 존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래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비롯한 우리의 요구가 실현 가능한 순간에 어이 없이 좌절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정치적 결단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혹시 아는가. 성소수자들의 이런 주장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받아 들인다는 말이 언젠가는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