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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에세이] 혐오를 반대합니다 하지만

by 행성인 2023. 6. 9.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5월 웹진을 발행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계정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보니 규제가 들어온 것이었다. 웹진에 수록된 원고 중 필자가 쓴 '[문화 읽기] 쾌락의 열병, 커뮤니티라는 그을음을 따라 - 퀴어 미술 산보하기(2023년 5월)'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막을 살펴보자.

 

 

대체 전시리뷰가 얼마나 문란하길래 청소년 유해정보로 지목되는가 싶지만, 아무리 찾아도 어느 부분이 유해하다는지 찾기 어려웠다.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서? BDSM이 들어가서? 적어도 성교육에서 충분하게 말할 수 있는 수위를 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중하게 물어봤다. 보통은 형식적으로 답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좀 더 성의를 담아 보내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lgbtaction@gmail.com 카카오계정으로 티스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용자입니다.

해당 페이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차례씩 웹진으로 발행하고 있는데요,

방금 '청소년 유해 (청소년 유해 정보)'를 사유로 로그인 제한 7일 조치를 받았습니다.
혹시 이유가 '[문화 읽기] 쾌락의 열병, 커뮤니티라는 그을음을 따라 - 퀴어 미술 산보하기(2023년 5월)' 때문일까요?

전체 페이지에서 해당 원고만 '권한이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로 나오면서 목록에 뜨지 않아 문의드립니다.

해당 원고는 동시대 성소수자/퀴어 예술을 조망하면서 당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상황들을 분석하는 글입니다. 민감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지만, 그만큼 취약한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 환경을 심도있게 살피면서 공동체의 역할을 주장하는 내용의 원고이기도 합니다.

한데 이를 '청소년 유해 정보'로 분류한 근거가 있을까요? 어떤 단어나 문장이, 또는 이미지가 그 근거가 되었는지 여쭤봅니다. 구체적인 근거를 알려주시면 저자와 상의하여 수정여부를 논의해보겠습니다.

혹여 다른 이유로 로그인 접근을 규제한 것이라면 그 이유를 알려주시길 요청드립니다.

그럼 빠른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예상과 다르게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규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개 서비스 영역에 부적절한 콘텐츠(남성 전라 측/후면 이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걸 염두에 둔 게 아닌지라 이미지를 엄선해서 작은 사이즈로 편집까지 했건만.

 

다른 규제의 경우들은 어떤지 찾아봤다. 수술과 다이어트 전후 몸의 변화를 기록한 이미지나, 누드 조각상과 그림까지도 검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 동료들의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블로그가 제한당하고 폐쇄당한 경험이 적지 않았다. 아마 티스토리의 직원들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 같지는 않고 AI가 무작위로 걸러낸다고 하는 통상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접근이 제한된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 사이 뉴스가 하나 떴다. '네이버·카카오, '성소수자(LGBTQ) 혐오' 표현 제재 나서'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인즉 네이버가 '게시물 운영 정책'을 개정해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지난 4월 '온라인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것을 따른 결과라고 한다. 카카오는 이미 4월부터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고 운영정책을 개정해서 시행중이라고 한다. 당연히 카카오 산하에 있는 티스토리 역시 해당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을 것이고, 유저들은 혐오표현을 막는 우산 아래 플랫폼을 이용해왔을 것이다. 

 

공적으로 혐오 반대를 표시한 일은 의미있는 한걸음이 분명하다. 한데 성소수자에게 성적 실천을 빼놓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성적 지향을 이야기하고, 성별정체성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사람이 만나는 문화와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그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HIV/AIDS에 대한 성적 낙인을 이야기해야만 하고, 음지화되었던 성적 실천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벗은 몸이고, 노골적인 묘사라서 규제한다는 것은 퀴어 당사자들에게 보호가 될까, 검열이 될까. 포털의 혐오 제지 정책에 진일보했다고 박수만 쳐주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여기서 어떤 혐의를 가질 수 있다. 포털이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혐오를 반대한다고 표명하는 중에도, 그것이 당신의 존재와 표현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면? 비슷한 맥락에서 2020년 5월 코로나 확진자가 이태원 지역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돌고 게이커뮤니티가 들썩인 사건 당시, 많은 언론인들이 게이들의 성 문화와 만남의 행태를 비난했다. 여기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개중에는 행성인에서 진행하는 트랜스 추모 모임에 참여하여 이들을 추모하는 메세지를 남겼던 기자도 있었다.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성소수자 중에도 섹스 문화와 성적 만남의 방식들을 비난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음을 안다. 혐오를 규제하는 선택과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별개로 접근할 수 있는가? 사회는 차별과 혐오에 비판적이면서도 시민의 자기 표현과 성적 권리에 대한 허들은 여전히 높여두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혐오표현을 제재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과 게시물에 기준을 두고 규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성소수자 인권과 표현 규제의 문제는 접근이 다른 분야라는 주장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확실한 건 더이상 성소수자운동이 혐오 반대 메세지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혐오에 반대한다는 공적인 입장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취약한 몸들이 만나고 관계 맺는 문화들을 지지하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토론들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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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를 기반으로 웹진을 운영하는 행성인 미디어TF는 사측의 규정을 따라 이미지를 수정했다. 규제대상이 되었던 게시물은 초반 삼십여 장의 전시 이미지가 첨부되었지만, 수정 이후에는 조금 심심한 외양의 글이 되었다. 원고 내용은 자구 정도만 수정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6월 9일, 카카오는 행성인 웹진 로그인 제한이 해제되었음을 메일로 공지했다. 더불어 다소 살벌한 경고문구를 받았다. 한번 더 경고를 받으면 아이디 사용이 영구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냥 인권일반의 문제가 아니고 행성인 웹진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