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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회원 캠페인] ‘퀴어가학교다닌썰푼다’(퀴학썰) 에세이 모음_ 7월 편

by 행성인 2023. 7. 26.

행성인 아카데미 1조

 

 

퀴학썰, 사연보내주세요

아카데미 1조에서 만든 행성인 휘장 이미지 (디자인: 이안)

 

 

'퀴어가학교다닌썰푼다'(이하 '퀴학썰')은 2023년 봄 행성인 아카데미에서 만난 일군의 회원들이 기획한 온라인 캠페인입니다. 

퀴학썰은 한국에서 나거나 자란 대다수 성원들이라면 경험했을 제도권 교육 속에서 퀴어로 살아낸 이야기를 모으고 나눕니다. 

 

초중고의 동일한 절차를 밟았지만 경험한 지역과 시기가 다르고, 맺고 끊었던 관계와 감정도 다를 것입니다. 이미 어디에나 있었던 학교 안팎의 청소년 퀴어의 이야기를 모으는 자리를 통해 그동안 무엇이 변화했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부엇이 더 바뀌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기획: 감자, 슈미, 오동지, 웅, 이안, 제니, 평과 
디자인: 이안

보내는 곳: https://bit.ly/퀴학썰


* 학교 다니고 학교를 나온 경험, 학교 다니는 동안 겪었던 안팎의 이야기들을 이미지와 함께 보내주시면 편집을 거쳐 인스타그램 계정(@_qhss.2023)에 게시합니다. 
* 게시한 사연은 계정이 살아있는 동안 쭉 전시할 예정입니다. 
* 게시한 사연은 행성인 웹진이나 인스타그램 외 SNS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추후 오프라인 전시나 출판 등 외부적으로 활용할 경우, 저자의 동의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합니다. 
* 게시한 사연의 출처를 밝힌 인용은 가능하지만, 기타 상업적 활용과 도용은 금지합니다.

*비고: 재학중인 분들도 쓸 수 있습니다!!



 

 

에세이 (~7. 28현재 업로드한 사연)

 

ep.1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여자는 무조건 치마 교복을 입어야 했어요. 발목 양말도 금지된 시기였죠 🥺 바지 교복을 입으려면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바지 교복을 입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끝끝내 바지 교복을 쟁취한 친구가 몇 있었어요.

행성인에서 활동하면서 누군가에겐 치마 교복이 굉장히 석연치 않은 존재였겠다는 인식이 들었어요.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거나, 젠더이분법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는 등 여러가지 상황이 있잖아요.

저와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해요.

 

 

ep.2

학교가 끝나면 바로 독서실을 갔다. 공부하러 갔지만 공부하기 싫어 간 곳도 독서실이었다.


독서실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독서실은 좋은 알리바이였다.


독서실에 가방을 던져두고 피씨방에 가서 채팅을 하고 데이트 상대를 찾았다. 스마트폰도 데이팅어플도 없던 시절이다. 하두리채팅이 뜨고 있었다.


하루는 피씨방 알바가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보다 4-5살 정도 많다는 그는 내가 이반 사이트에 방문한 기록을 봤다고 말을 걸었다.


그때부터 나는 피씨방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다. 각종 산해진미가 키보드 앞으로 배달되었다. 그래봐야 라면 김밥 과자지만.


나는 그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먹으며 다른 남자들을 만났고, 하루는 애인이 생겼다고 그에게 자랑했다.


그는 잠깐 나를 포옹하고는 한동안 피씨방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불현듯 다시 나와 군대를 간다며 반갑게 인사한 얼굴이 마지막.


그의 이름은 ocean 이었다.

 

 

ep.3

21년 중1 당시 저는 한참 디나이얼의 끝을 지나고 있었는데요, 그건 그때 여사친이었던 A의 덕이 컸어요.

A는 초등학교에서 혼자 배정된 제게 먼저 다가와준 소중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A에게 친구가 아닌 다른 결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고, 지정여성으로 살던 전 비로소 제 감정과 정체성을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물론 바로 모든 걸 알게 되진 못했지만, 저는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A에게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A는 본인이 이성애자라서 못 받아주겠다며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조금 껄끄러운 사이가 되려할 때, A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실 옆반의 B를 좋아한다.

그런데 B도 -적어도 제가 알았을 때까지는- 여자친구였거든요.

사실 양성애자라고 하던 A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래도 그동안 서로 깊은 얘기도 많이 나눴던 A라 완전히 틀어지진 않았고, 짧고 굵은 연애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전 과정이나 헤어질 당시 싸움을 생각하면 아픈 기억이지만 제가 모르는 척하던 저를 다시볼 수 있게 해준 A에게 조금 고맙기도 합니다!

학교 생활은 힘든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추억할만한 일을 만들어준 것도 그렇고요. :)

 

 

ep.4

01. 학교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어서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논바이너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시스젠더 레즈비언인 척 하고 3학년 선배와 카톡을 한 적이 있었다. 몇 주 쯤 한 것 같은데 나의 답장은 정말 못 봐줄 수준이었고 결국 그녀도 연락을 끊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다.

2. 나보다 한 학년 밑을 다니던 친구가 자기 학년에는 이쪽 친구들 사이의 오픈 카톡방이 있다고 말했다. 얼굴도 모르고 퀴어라는 점 빼면 공통점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랑 굳이 친해져 봤자 별 소용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간혹 그들은 어떤 얘기를 하고 놀았을지 궁금하긴 하다. (이래놓고 대학에서는 퀴동 ―퀴어 동아리― 들어갔다.)

3.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다리에 큰 상처가 있지 않은 이상 교복 바지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체육복 바지 위에 치마를 입은 뒤 바지를 돌돌 말아 치마에 가려 보이지 않게 한 상태로 교문을 통과하고 교실에 들어가서 치마를 벗는 기행을 매일 펼쳤다. 그런데 3수 때 수능 성적표를 받으러 간 날 바지를 입은 학생을 발견했다. 나는 왜 못 했나 하는 속상함 반, 나의 후배들은 이제 기행을 안 펼쳐도 되겠구나 하는 기쁨 반.

 

 

ep.5

초등학교 입학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는 너무 재미없었지만 도장의 땀 냄새와 드세게 남자들이랑 겨루기하는 언니들이 좋았다. 야금야금 다니면서 승품도 하고 여느 친구들보다 앞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삼단을 땄다.

하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체육관에는 기합과 체벌이 있었다. 큰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도 감당해야 하는 수치의 시간이었다. 새로 온 사범은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혼자 기합을 주더니 기어이 사람들 보는 앞에 목검으로 엉덩이를 때리며 너를 보면 거북하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다.

그건 또래의 다른 긴 머리 여자 관원들에게, 고분고분한 이들에게는 한 적이 없던 얘기였다. 내가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엇을 잘못했나. 지금 내가 이렇게 억울해 하는 건 자격지심인가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람들 앞에 망신 당한 수모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태권도를 그만 뒀다.

가끔 대회에 나온 선수들을 보면 생각한다. 쟤들은 얼마나 맞고 수모를 당했을까. 그리고 나처럼 떠났을 친구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도 상상해본다.

나는 태권도가 국제스포츠라고 자랑만 하지 않고 이런 과거들을 반성하는 국기가 되면 좋겠다.

 

 

ep.6

우리는 중학생이었다.

수준별 수업 때문에 잘 모르는 아이와 짝이 된 지 두어 달이 지날 무렵, 어느 날 앞자리 애들이 키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관심 없는 척 괜히 책만 보며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옆자리 애가 키스해본 적 있냐며 대뜸 말을 걸었다. 그간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던 아이였다.

당연히 안 해봤지만, 그때만 해도 자존심이 교복 치마 길이만큼 중요하던 시기였기에 그 정도야 해본 적 있다고 거짓말을 쳐버렸다. 거짓말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중, 그 애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그럼 자신과도 해보지 않겠냐고 물음을 던졌다. 본인은 경험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의 나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이야기를 조금 쿨하게 넘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지, 뭐." 라고 대답한 게 모든 일의 화근이었고, 학원 가는 길에 둘이서 따로 길을 빠져 나가 처음으로 키스라는 걸 했다.

물론 말이 좋아 키스였지 짤막한 입맞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애와는 간간이 인사만 건네며 지내다가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날, 그 애가 왜 내게 그런 얘길 꺼냈으며 여전히 날 기억하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난 생생히 기억하고, 언젠가 뜻이 맞는다면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사연을 보낸다.

 

 

ep.7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예절 시간이 있었어요. 예절 시간에는 한복을 입는 법부터 입은 한복에 맞춰 인사하는 법까지 배웠죠. 제게 정해진 한복은 치마저고리였어요. 정해졌다는 말에서 눈치챌 수 있으셨겠지만 아무도 제게 어떤 한복을 입을지 묻지 않았어요.

 

 

ep.8

나도 모르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치마를 전혀 입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도 치마를 입으라고 누군가 강요하는 순간은 다가오고 말았다.

 

바로 교복을 입는 순간이었다.

 

나는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다. 나만 그러진 않았다.

 

나랑 비슷한 어떤 학생들도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다.

 

사실 나도 그 학생들도 미리 확인했었다. 교복 규정에 어긋나지 않음을 말이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바뀌고 우리는 자유를 잃었다.

 

나와 친구들에게 바지 금지령이 떨어졌다.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우리 중 누구는 일찍 등교했고 우리 중 누구는 벌점이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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