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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2024 활동] ‘받자’, ‘받지 말자’의 논의를 넘어보자- 정부 및 기업 후원 원칙 마련 토론의 건에 대해

by 행성인 2024. 2. 20.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2024년 행성인 총회에 오랜만에 보고와 의결 안건이 아닌 토론 안건이 부쳐졌다. ‘정부 및 기업 후원 원칙 마련 토론의 건’이라는 제목의 안건은 최근 들어 행성인 사무국과 운영위 내부에서 고민하던 주제였다. 누군가는 왜 이게 총회에서 논의할만큼 중요한 일이 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고, 누군가는 왜 이런 중요한 주제에 대해 웹진이라는 매체에 한 활동가의 아직 충분히 논의되거나 합의되지 않은 입장을 싣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누군가 말을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논의도 진행하기 어렵다. 총회에서의 발제문과 나 개인의 입장이 뒤섞인 이 글이 논의를 만들어 갈 힘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써본다.          

 

 “행성인은 활동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오랜 시간동안 암묵적인 행성인의 활동 원칙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 원칙은 행성인의 활동 원칙과 방향, 비전∙가치∙미션, 정관 및 내규 어디에도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떤 논의에 의해 이러한 원칙이 설정되었는지를 현재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회원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며, 적어도 총회 의결을 통해 명문화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러 활동가들의 기억에 의하면 이 원칙이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가이드라인’ 수준의 원칙이었던 시절들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 적도 있고, 미국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활동가가 연수를 떠나거나, 행성인의 소모임이었던 ‘부모모임’이 미국 대사관의 지원을 받은 적도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말이다.

 

그런데, 2024년 현재, 이 원칙은 외부 지원 사업의 신청이나 후원 수령과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과거 유연한 판단의 사례들과 달리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공모 사업이라는 이유로 내부에서 고민하던 기금의 신청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고, 기업의 규모나 종류, 후원의 성격이 단체 활동의 독립성 유지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 없이 기업의 후원을 일괄적으로 거절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는 언젠가 구성원들이 합의한 원칙은 남아있으나, 그 원칙을 수립하게 된 맥락은 무엇이며 실제 어떻게 적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는 상황에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정부나 기업이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시기에는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정부나 기업에게 성소수자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어떤 제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기업에서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자체적인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등의 사례가 증가하면서 행성인으로도 관련한 문의나 제안이 종종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2021년부터 단체의 핵심 사업으로 성소수자 노동권 관련한 활동을 이어오면서, 일터에서의 성소수자 인권 증진과 관련하여 기업과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는 계기들이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기업이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 행동을 시작하는 진입점이 된다면, 지원을 거절하면서 어떻게 기업과의 관계를 맺어 나가며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위원회와 사무국에서는 “행성인은 활동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이를 구체화 하는 것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행성인과 비슷한 원칙을 가진 사회운동 단체들은 존재한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여 운영되는 시민사회 단체의 경우 정부와 기업의 활동에 대한 비판 기능을 상실하거나, 활동의 의제와 영역, 방식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단체의 활동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데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개입하거나, 이러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타협하게 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으로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이 시민사회 단체의 독립성 유지를 저해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회변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 역시도 시민사회단체의 주요한 활동이 되기도 하며, 기존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이어져 온 활동의 예산이 삭감되는 것이 주요한 투쟁의 의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행성인의 구체적인 맥락에서 고민했던 것처럼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잠재적인 협력자와의 협력의 기회를 놓치게 할 수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역할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마련된 자원을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정부나 기업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단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사회운동이 유지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며,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큰 이견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 회원들과 논의하고 싶은 것은 모든 정부와 기업의 후원이 단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저해하는지,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있어서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가치와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자원과 관계의 확장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원칙을 마련해 볼 수는 없는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거부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조건이나 맥락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저해하는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지 등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은 이미 이 글을 쓴 내가 이 원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는지에 대해 이미 어느정도 판단하셨을 것이라 짐작한다. 나는 정부의 기업과 후원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암묵적 원칙에 행성인의 회원이자 상임활동가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중요한 활동이 되기를 바라고, 그 구체적인 행동에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지원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자원과 관계가 확장되기를 바라고, 또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도 단체 활동가의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나는 우리가 정부와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 성소수자 인권을 넘어 노동권의 침해와 비윤리적인 기업의 활동에 대해서도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우리가 ‘생색내기’로 단순히 이용되지 않고, 자원을 위해 중요한 가치를 타협하지 않으며 활동해 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원과 관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개의 총회가 그렇듯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논의가 길어지다보니 이 ‘토론안건’에 대해 실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고, 올 한해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해 보기로 결정하며 총회를 마무리했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아직은 조금 막연하지만 좀 넓게 각자의 신념과 생각,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나갔으면 좋겠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단체의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의 길을 섬세하게 모색해 나가는 논의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이 ‘받자’, ‘받지말자’의 좁은 논의를 넘어,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정부와 기업, 다양한 주체들의 상을 넓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풍성한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