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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평가

셋방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by 행성인 2010. 3. 2.


 

1월23일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 성북동으로 향했다. 2년 동안 웃고 울고 지냈던 망할 놈의 성북동 사무실을 떠나는 날이다. 열심히 일해 보겠노라고 짐 나르기 쉬운 복장을 하였는데 웬걸 어제 마신 술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을 가득 메운 짐들 앞에 얼어버렸다. 젠장! 이미 몇 명의 회원들은 이사를 돕겠다고 사무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도 남자라고 이 먼 곳까지 오다니. 그런데 이거 오늘 안에 끝날 수 있긴  한 거야?


2년 동안 지냈던 성북동 사무실은 80년대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나무계단이 집 안에 있고 여름에 문을 열어두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모임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끔찍이도 싫은 한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거실이 나무 바닥이라 온기라곤 찾을 수 없었던 이 곳. 이삿짐을 싸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추운 사무실에서 그래도 버텨보겠다고 산 난방기구가 10개 가까이 되었다. 쾌쾌한 나무냄새와 사람냄새가 뒤엉킨 2층집. 2년 동안의 활동과 이 사무실을 찾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던 이 집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유령의 집이었다. 쓸고 닦고 꾸며서 사람이 살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었는데. 이삿짐이 다 빠지고 나니 처음 이 집을 보러왔던 쓸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45도 경사진 언덕길을 5분 걷다가 사무실 대문 앞에 오면 숨이 넘어가 말도 제대로 안 나왔었다. 기름보일러도 낭만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었는데. 마지막엔 그 기름보일러 때문에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싼 기름 값을 견디지 못해 2009년 겨울엔 단  한 번도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한파가 닥친 어느 날 모든 보일러가 얼어버려 더 이상 사무실을 출입할 수조차 없었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었고 맘 편히 밥 한번 해먹지 못했다.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그대로 안은 채 이삿짐을 한 가득 실은 용달차는 새로운 터전으로 향했다.


성북동에 이사 오기 전 동인련은 서울역과 가까운 옥탑 사무실에 있었다. 1층엔 유명한 순대국집이 있었고 (동인련 방문하는 손님이 올 때마다 이 순대집을 이용하곤 했다.) 가까운 곳에 재래시장과 학원이 있어 값싼 떡볶이와 분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재개발로 모두 쓸어져버린 정겨운 풍경들이었다. 서울역 사무실은 굉장히 급하게 구한 사무실이었다. 7평밖에 되지 않았던 경희대 앞 사무실에서 2003년 4월 육우당이라는 한 청소년 회원이 자살을 했다. 사무실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무실을 출입할 수 없었다. 자살한 그 날 흔적은 며칠 동안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 10명만 들어와도 꽉 찼던 사무실은 주인집의 완강한 퇴거요청으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이태원에 거주했던 한 회원의 집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리고 여기저기 후원을 호소했다. 모금을 했고 특별회비를 걷었다. 짧은 시간 500만원이라는 소중한 보증금이 모였다. 그리고 서울역 사무실을 같은 해 6월에 갈 수 있었다. 여름에는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열기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사무실이었던 만큼 스스로를 위안하며 만족했다.


경희대 방향에 위치했던 사무실로 옮기기 전에도 동인련은 그리 안정된 사무실 운영을 하지 못했다. 신당동 사무실에도, 대학로 사무실에서도, 제기동, 신설동 사무실에도. 매월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체 역사는 벌써 1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천만 원 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니 뒤돌아보면 재정마련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이삿짐을 가득 실은 용달차가 1월23일 오후 1시 충정로역에 멈춰 섰다. 성북동을 찾았던 회원들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자기 집 이사하는 것처럼 모두들 열심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란다. 아파트 복도는 조금 음침했지만 요즘 자주 들락거리다보니 그마저도 정겨워 보인다. 차가운 나무 바닥 거실이 아니라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따뜻한 마루가 있고 작은 방 두 개가 있다. 방에서도 회의도 하고 컴퓨터로 사무업무를 본다. 회원들의 기증으로 한 대의 컴퓨터가 탄생했다. 방한 켠에는 그동안 동인련과 윤가브리엘 회원이 받은 감사패가 진열되어 있다. 봄을 느낄 수 있는 예쁜 블라인드가 창문에 걸려있다. 햇살이 너무 잘 들어온다. 벌써부터 충정로 사무실에서 느낄 봄이 기다려진다. 거실은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데 활동사진과 자료들을 쌓은 긴 책꽂이가 있다. 15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둘러앉아 회의하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교통이 편해졌다. 예전보다 회원들이 사무실에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회의, 청소년 활동가 회의 등 타 단체 활동가들도 사무실에 편하게 방문해 회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원들도 잠깐 들러 쉬고 가기도 하고 청소년회원들은 사무실에 놀러와 자기 블로그를 보거나 게임도 한다. 더 넓은 사무실과 더 많은 컴퓨터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더 편하게 회원들이 개인적인 일도 하고 맘껏 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셋방살이는 힘들다. 새롭게 이전한 충정로 사무실도 하수구가 막히고 화장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불편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집주인과 불필요한 마찰이 있진 않지만 너무 낡은 아파트다 보니 불편함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조금씩 나아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틀에 걸쳐 이삿짐 정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가구를 배치하고 그동안 발간한 자료를 전시해 두었다. 활동별로 서류를 정리하였고 활동사진들도 사진첩에 고이 모셔 두었다. 다시 꺼내보지도 않을 것 같은 옛날 자료들은 결국 버리지 못하고 충정로 사무실 창고까지 또 끌려왔다.


이제 봄을 기다리며 따뜻해진 충정로 사무실만큼 인간적이고 따뜻한 활동을 이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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