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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여성 성소수자

[회원에세이] 서울/2n/n글자/16n/오늘 홍대에서 술 한잔하실 분

by 행성인 2024. 11. 24.

림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출처: https://www.irasutoya.com/2016/11/blog-post_30.html#random

 

 

'서울/2n/n글자/16n/오늘 홍대에서 술 한잔하실 분'


요즘은 여러 사정으로 조신하게 지내고 있으나, 과거에는 저렇게 메시지를  올려 만날 사람을 찾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다만 몇 년 사이에 크게 그 견고한 분위기가 바뀌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분위기란 직접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섹스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여성 퀴어 데이팅 어플의 금기에 대한 것이다.

 

여성 퀴어 데이팅 어플에서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은 운영자에 의해 검열되기도 하고, 또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검열하며, 그 검열을 피해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웃기는 섹스의 대체어들이 존재한다. 다만 악용될 우려가 있어서 구체적으로 적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괜히 말했다가, 이런 걸 왜 밖에 말하냐고 욕먹을까 봐 말하지 않는다). 정말 궁금하신 분들은 주변에 있는 여성 퀴어 어플 이용자 친구에게 물어보시길 바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숙한 규범이 여성 퀴어들의 금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체어들의 존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력적인 여성 퀴어들은 타의이자 자발적인 규제 속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성적 실천을 시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리고 그중 하나였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러한 문화에 대해 짜증과 안쓰러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과 함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짜증은 당연히 섹스할 대상을 찾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어플 이용으로 습득한 온갖 은어들을 통해 섹스할 상대를 찾는 메시지를 올릴 경우, 놀랍게도 아주 많은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점잖은 글을 올렸을 때보다 적어도 배는 더 많은 연락이, 정말 빠르게 많이 온다. 이는 욕망 속에서 상대를 찾던 수많은 여성 퀴어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렇지만 그들은 직접 메시지를 올리지는 않고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상공을 배회하다가 먹잇감을 포착하는 순간 돌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섹스 상대를 찾는 과정의 고단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다. "안녕하세요"라고 메시지가 와서, 그에 대해 답장하면 10명 중 7명은 답장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이 욕망에 못 이겨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으나 두려워졌거나 그사이에 욕망이 식어서 답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남은 3명 중 2명은 나와 이야기하다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잡던 도중 사라지거나, 약속 당일에 사라진다. 이들도 같은 이유로 증발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1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안쓰러움은 이 짜증나는 번거로움이 왜 발생했는지 너무 잘 이해하고 공감해서 생기는 감정이다. 우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직시할 기회를 얻기 어려우며,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금기로 치부된다. 나 역시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내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힘쓴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더 나아가, 여성 퀴어가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바로 만나서 섹스하기보다는 우선 비대면으로 대화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만나서 서로를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을 얻기 위함이다. 최근 며칠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뚱티부"를 필두로 한 레즈비언이 작금의 "남혐 사태"에 대한 주적이라는 음모론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그 과정에서 데이팅 어플 이름들이 그대로 소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언급 전에도 여성 퀴어들의 데이팅 어플에는 불순하고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여성 퀴어를 만나려는 남성들이 적지 않게 있었기에, 우리의 불안은 과거부터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우리에게 자유롭게 섹스할 권리는 안전과 맞닿아있다. 이것은 한국의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 혐오적인 위협에 의해 억압 받아온 우리의 권리이자 자유이다. 우리에게 자신의 욕망을 인지하고 실천할 자유를 달라! 그런 의미에서 10월의 회원 모임이었던 〈여성, 퀴어, 섹스〉는 너무나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내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한 줄 몰랐다. 나는 비교적 성적 욕망에 있어 충실해 왔고, 친구들과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허물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 욕망이 어떤 때에 충족되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상대와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것이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여성 퀴어로서 자신의 욕망을 오롯이 인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앞으로 나의 욕망을 인지하고, 실천으로 이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이며, 우리를 억압하는 차별에 저항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단순한 쾌락도 중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