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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종교

LGBT 운동과 진보적 기독교 운동은 동맹해야 합니다.

by 행성인 2010. 7. 4.

- 성소수자의 따뜻한 동지, 신학자 테드 제닝스 강연에 참석하고



지난 6월 9일 저녁, 나는 충정로역에서 목사님을 만났다. 어쩌면 행운인 것 같다.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옹호하는 강연 자리에 내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강연장에 가보니 반가운 분을 또 만났다. 지난주에 우연히 만난 한 목사님께 강연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곳에 오신 것이다. 이 분은 시카고 신학대에서 수학하시고 지금은 경인여대에 계시다고 한다. 이 강연이 있기 바로 얼마 전 진보기독교단체들이 주최한 비슷한 주제의 테드 제닝스 강연에도 역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테드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고 한다. 분명히 기독교와 동성애는 ‘핫’한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강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근래 있던 동성애 관련 강의 중 가장 히트친 것 같다. 드디어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테드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저는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에 대한 배제가 교회의 정체성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호모포비아와의 싸움은)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유일한 구세주로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의 제단 위에 번영과 권력의 우상을 올려놓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테드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답하고 있었다. 테드는 나아가 성소수자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일 자체가 예수께서 말한 율법보다 중요한 문제들이며, 교회가 호모포비아를 극복하는 것은 교회를 정의롭고 자비롭게 변화시키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오랜 기간 그 스스로 성소수자 학생들을 돌보고 신학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연구하며, 인권활동가들을 지지해온 그의 진정성이 듬뿍 묻어나왔다.


이어서 그는 교회가 왜곡한 여러 가지 진실들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서는 어째서 왜곡되었을까? 테드의 답은 간명했다. 예수는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을 해방하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당연히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 이들을 따랐던 사람들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었으며,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성서 또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인 것이었다. 그러니 성서가 힘 있는 부자들에게는 매우 인색한 것도 당연했다. 나아가 ‘부를 축적하는 것’ 또한 성서에서는 ‘죄’였다. 지배자들의 종교가 된 교회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더 이상 죄를 추궁하기 어렵게 되자 다른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성(섹슈얼리티)”였으며,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소수자들의 섹슈얼리티를 ‘죄’로 만들었다는 것이 테드의 설명이었다. 그는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진실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도대체 동성애를 혐오해서 뭘 얻고 싶은 건가?


“성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오늘날 “결혼과 가정의 가치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복음을 치명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하는 것이 교인들에게 정기적으로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을 상기시키게 된 점에 대해 저는 크게 놀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보장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사회에 설득하려고 했던 방법입니다.”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자들이 효율적 지배를 위하여 가족가치를 강화하고자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고 낙태를 처벌하며 에이즈 환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위와 같은 논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다름 아닌 기독교 교회이다. 체제와 종교의 공모관계가 수많은 사람을 삶의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다. 자기 혐오를 못 견뎌 자살한 청소년 동성애자의 미래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테드는 이것이 교회가 저지른 가장 큰 죄임을 절박하게 고백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주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주최 테드 제닝스 교수 초청 강연회



테드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성서 본문이 다루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과 지배자들이 왜곡한 성서의 진실을 바로잡고자 했다. 이 부분은 정말 흥미로웠다. 물론 강연 후의 소감을 듣자니, 성서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다소 어려웠다고 하지만, 대체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테드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용감무쌍한 발언을 하겠는가. 다윗과 요나단, 룻과 나오미, 백부장과 소년 노예가 서로 사랑했음을 누가 고백하겠냐는 말이다. 지금껏 이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성애를 단지 성적 행위로서의 이미지만 먼저 떠올리도록 강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보다 경건할 수 없는’ 성서에 다른 사랑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의 모습으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성서가 의미하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부분은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예컨대, 소돔과 고모라가 실은 부유, 교만, 권력의 상징이었지 동성애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일반적 내용에서부터, 어떤 단어들이 부유하고 권세 있는 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어느덧 약한 남자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고, ‘강간’으로 추정되는 단어가 ‘소도미(동성애)’로 번역되어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성서는 예수가 전파한 억눌린 자들을 위한 복음을 권세 있는 자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어왔다. 기독교가 “부자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성서의 어조를 낮추고, 그들의 죄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설령 공동체의 약한 구성원들이 고통 받게 만드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테드의 강연글에서 따옴)”


강연장 맨 앞 쪽에서 성경을 꺼내들고 열심히 공부하듯이 강연을 경청하던 청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그 이들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입만 열면 동성애가 죄요, 비정상이라는 독설만 쏟아내는 꼰대같은 목사들 이야기만 듣다 보니, 얼마나 기분이 상큼해지는 연설이었을까. 그동안 보수 기독교 때문에 문드러진 마음이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테드는 ‘성서가 진정 말하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연의 말미다. 그는 사랑은 죄가 아니라 율법의 본질을 완수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정의 실현의 유일한 수단이며, 사랑이 없는 정의로는 누구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요컨대,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요한복음을 읽으며 느꼈던 사랑에 대한 가득 차 넘치는 강렬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호모포비아라는 죄에 대해 지금의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는 테드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질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많은 질문들이 오갔지만 여기서는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청중석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성서에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올바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적 내용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테드는 창세기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시각이 될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바로 자신의 존재 자체로 괜찮을뿐더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나이 어린 동성애자들에게 테드의 답변은 한없이 따뜻하고 큰 위로가 되어 주었을 것 같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성별, 젠더 등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축복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젠더의 다양함을 깨달아간다는 것이다. 혼란을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테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누군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테드는 깊은 편견을 바꾸기도 어렵지만, 편견에 직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기존 기독교의 동성애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는 이어서 교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도자와 목사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교회까지 바꾸라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지고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너희가 나서라”. 그나마 우리를 수용하고 존중하려고 하는 이들도 스스로 이 짐을 지려 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다시 공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의는 게이에 대한 다소간의 불만스런 수용 또는 관용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끼쳤던 피해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끼치고 있는 피해에 대한 교회의 회개라는 문제이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학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전히 기꺼이 교회에 기회를 주려는 수많은 게이와 레즈비언,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테드의 관점이 맞다. 우리가 교회에 우리를 관용의 눈으로 바라봐 달라고 촉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교회가 먼저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며, 진정으로 ‘회심(회개)’해야 한다.


나는 테드의 연설을 들으며 용기가 솟아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 동성애자들이 성서가 실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아름답게 여긴다는 말에 얼마나 용기를 얻게 될까? 테드는 심지어 우리에게 감사한다. 교회가 이렇듯 우리를 박해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수를 따르는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씨앗이 되어, 교회를 감사와 축하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힘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강연이 끝나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테드와 뒷풀이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무언가 절박한 마음에 물어 보았다.


“우리가 보수 기독교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너무 거대해요.”


“교회 안에서 동맹을 만드십시오. 교회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동맹을 맺으세요. LGBT운동과 진보적 기독교 운동은 동맹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노신학자의 명료한 방향성에 우리는 다시 힘을 얻는다.



곽이경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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