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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쫌만 더 재미있는 세상을 꿈꾼다!

by 행성인 201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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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한밤 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머금는 술 한 잔, 무지 사고는 싶지만 얇은 지갑이 아예 구멍 날까 무서워 주저하다 큰 결심하고 산 옷 한 벌, 어느 날 갑자기 필 꽂혀 읽어 내려가는 책 한권, 나로 하여금 보는 내내 ‘히히덕-질질-심각’하게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 한편, 그리고 쓰러지게 만드는 개그 프로그램 하나.......

 

저는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뭐 재미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그 중에서도 나는 재미있는 것에 삶의 많은 무게를 실어두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앞서 열거한 ‘재미’들을 위해 제법 많은 시간과 (거의 없다시피 한)자본을 할애하는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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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은 재미의 일환으로 저는 또한 개그를 무지 사랑합니다. 위의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된 여러 재미 중 특별히 개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예를 들어 특이한 말투와 행동, 유행어, 재미있는 이야기, 반전과 과장 그리고 의외성 등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의 기본 공식 등-가 된다고 여겨질 때, 저는 생활의 여러 공간에서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활용을 벌이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로 재미의 공감이 이루어질 경우, 상상할 수 없는 웃음의 향연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급한 김에 가까운 세콤에라도 찾아가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싶을 만큼 실로 돌이킬 수 없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죠. 비록 항상 실패의 위험이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재미를 찾고 그 재미를 실천에 옮기는 삶을 희망하는 저는 재미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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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가 참 재미있어 하는 활동 중 하나가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이하 차세기연)’입니다. 차세기연은 차별금지법 논란이 불거지던 2007년 후반기에 그 논란의 중심에서 ‘동성애조장법안이 웬 말이냐?’를 외치며, 자칭 신의 이름(?)으로 분연히 일어서신 보수적인 다수 개신교인들의 움직임을 보며 ‘뭔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차별하지 않으시는 야훼’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열고, 이듬해 초에는 사랑의 마음(?)으로 차별을 행하시는 분들과의 토론장을 국회에서 열면서 첫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모임의 방향을 LGBTQ 이슈를 포함한 교회의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변혁에 두고 활동한지 벌써 올해로 두 해를 맞이하고 있죠. 기독교 신앙을 가진 당사자들과 흔하디흔한 비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차세기연은 그동안 교회와 신학대학, 그리고 기독교 사회 운동 단체 등에서 호모포비아의 문제점을 알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종교인이 되기 위한 논의를 만들어가는 ‘찾아가는 강좌’와 ‘소수자의 눈으로 읽는 성서와 책 읽기 모임’, 그리고 ‘반차별공동행동’ 등과의 연대활동과 ‘퀴어문화축제’ 부스참여 등의 외부 활동을 해왔고, 이후에는 LGBTQ와 관련된 교회의 바른 시각을 제안하고 알리기 위한 서적발간, 문화 컨텐츠 개발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음.......뭐 사실 계획은 뭘 못하겠습니까? 이후 여력이 될 때 천천히 해보려 한다는 것이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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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묻더군요. ‘너.......게이니?’, ‘당사자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신경 써?’ 뭐 긴 이야기를 하기도 뭐하구 해서 그냥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게 제가 재미있어 하는 일이랍니다.’ 물론 짧게 답하기 위해 던지는 말이긴 하지만, 그 재미는 저에게 첫사랑의 추억이나 어렵게 얻은 첫 아이만큼 소중한 단어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해방이니 자주니 하는 구호와 깃발들이 순간의 힘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말들을 평생 품고 삶으로 살아내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어려운 순간에도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재미, 바로 그 재미가 주는 기운과 힘이 깃발에 적힌 구호들을 체화하고 살아가게 해줄 것이라는 것을요. 저는 또한 믿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신의 아들’이라는 세인들의 호칭에 맞지 않게 벌벌 떨면서 신에게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다가도 막상 십자가 위의 초라한 죽음 앞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반전 멘트를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어렵지만, ‘그래 난 이게 재미있어’라고 느꼈던 그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저에게 있어 의미와 신앙, 그리고 재미는 큰 구별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연관성을 가진 언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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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에는 굳이 애써 재미 혹은 개그를 찾거나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남자 며느리가 웬 말이냐?’라는 희대의 카피를 날리며, 가족 드라마까지 죽이지 못해 안달인 기독교 호모포비아들의 활발한 행보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게이 예술인의 전시장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 ‘나라의 위신’을 이유로 당사자들의 행사를 취소하는 등 지금은 가히 상식이 굴절되는 ‘블랙 개그의 시대’라 아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올해 후반기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을 상정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상황에까지 이르면 종교와 국가가 함께 팔 걷고 벌이는 ‘어처구니 개그 난장판’에 저와 같은 사람까지 밥숟가락을 올릴 필요가 없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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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살아보라고 하죠. 다만 저는 그들에게 앞서 언급한 상황과 같이 어깨와 목에 힘주고 혐오하는 것 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재미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핏대를 올리는 이들에게 ‘워~이제 그만’을 말해주려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지금보다는 쫌 더 재미있는 세상이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아마 그 재미있는 여정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과 한번쯤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신나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저는 재미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고상균 _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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