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은 Korea Exposure & Education Program의 약자로 재미청년고국체험단이라고 불린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2,3세들이 8월 초부터 중순까지 한국의 노동, 환경, 여성, 농민, 통일 운동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10년이 넘게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들은 한국만 방문하는 것만이 아니라 북에도 찾아간다. 이 활동의 중심에는 노둣돌이라는 뉴욕에 위치한 진보적인 한인 단체가 있다. 노둣돌에서 매해 책임자를 두어 참가자를 받고 교육하고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그동안 2008년까지 매해 찾아오는 KEEP 참가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은 물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 설명했고 KEEP 참가자들 중 성소수자들이 있다면 미국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KEEP 참가자들 중 성소수자들은 한국과 미국의 운동이 어느 정도 차이는 있으나 사회적 편견 그리고 차별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흔히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이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놓인 상황과 비교했을 때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된 지역이 있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가 있기에' 좋겠거니 했지만, KEEP에 참가한 한인 성소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내가 혹은 우리가 가졌던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다. 그것은 미국 성소수자 운동이 백인 중심의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Queer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미국에서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사용되며 성(별) 정체성 sexual, gender identity라기 보다는 정치적 정체성 politic identity로 쓰인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KEEP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노둣돌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에 KEEP의 이번 방문을 앞두고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과의 간담회를 제안해 왔다. 이번 KEEP 참가자들 중에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참여가 있고 미국과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경험과 과제에 대해서 서로 토론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에서는 군 형법 92조 계간 금지 조항의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을 위한 활동,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 HIV/AIDS 감염인 인권 활동, 레즈비언 인권 활동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KEEP에서는 기존 이성애 중심적인 가정 폭력의 관점을 다양한 소수자들의 관점으로 변화시키려는 '파트너 간 폭력'과 HIV/AIDS 감염인 인권 활동, 트랜스젠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8월 13일 저녁,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의 첫 만남을 통해 활력 넘치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 1.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
오고간 이야기들을 다 정리해서 넣을 수는 없지만 미국 성소수자 운동을 경험하거나 하고 있는 참가자들에게서 받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참 활동적이다.'라는 점이었다. 사회 변화를 위해 조직하고 함께 활동하고 더구나 다음 세대 운동가들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참가자들 중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노둣돌 책임 활동가인 트렌스젠더 '앤디'였다. 그녀는 10년 동안 성소수자 활동을 해왔고 그 중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을 자신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꼽았다. 청소년 자살의 증가를 야기하는 혐오범죄와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사들이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정부의 정책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녀의 친구였던 마이클이란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 자살을 했다. 성소수자인 마이클은 주변 친구들로 인해 차별적인 상황에 놓였고 괴롭힘을 당했다. 주변의 힘든 상황이 마이클을 자살로 내몬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차별이나 괴롭힘으로 인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높다. 현재 많은 성소수자 단체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11살인 칼은 복도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그 이유가 주변 다른 학생들이 이 소년을 게이라고 놀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 칼은 게이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칼의 어머니는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연방 정부법'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아직 법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활동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활동은 현재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1,800개의 단체가 만들어지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활동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계기는 단순하다. 기존 활동가들의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운동은 계속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2년 전 미국 전체 조직망을 이루고 있는 40여개의 성소수자 단체들이 모여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발굴하고 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지만, 유색인종 중에 한국인들은 커밍아웃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한인 2,3세 활동가들은 한국인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커밍아웃을 돕기 위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KEEP 참가자들이 준비한 HIV/AIDS 관련 프리젠테이션
인상 깊었던 이야기 2. HIV/AIDS 인권 활동
올해 KEEP 참가자들 중 인상 깊었던 것들 중 하나가 '남성 참가자'가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KEEP을 통해서 만났던 참가자들 대부분이 여성들이었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올해 참가자 중 한명인 남성 활동가가 말한 활동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의 이름은 '존'이었고 자신을 퀴어라고 설명했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액트 업 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에이즈 연대) 뉴욕에서 활동을 했었다. 그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시기였다. 안전하게 치료 받을 권리, 제대로 된 치료제 개발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치료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운동으로 인해 실제 에이즈 환자들이나 유색 인종들을 위한 여러 가지 요구들이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에이즈 운동은 제도화 되어 제도권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 버렸고 Act Up 활동은 위축되었다고 한다.
존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프레젠테이션에 다니엘 최의 모습이 보였다. 백악관 앞에서 수갑을 찬 채 ‘Don't ask, Don't tell’ 이란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조항을 없애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존은 그 사진을 보며 '모순 없이 살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던졌다. 군대에도 당연히 동성애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유색인종인 한인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이 유색인종이거나 한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다니엘 최에 대한 불만이기도 한 물음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그리고 유색인종인 한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려는 듯 했다.
2년 후의 만남을 약속하며
이어진 뒤풀이에서 서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도 했고, 종로, 이태원에 있는 게이 바, 클럽에 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자는 이야기도 오고갔다. 참가자 중에는 이성애자들도 있었지만 편견 없이 서로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뒤풀이 자리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들어보았다. KEEP은 이번 방문을 위해서 거의 1년 가까이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번 참가자들만 보아도 필라델피아, 시애틀, L.A에서 살고 있는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뉴욕에서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노둣돌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정기적으로 참가자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직접 찾아가 점검한다고 한다. 참가비는 물론 후원 없이 참가자들이 비용을 낸다. 보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며 이곳저곳을 방문, 체험하며 그들의 '고국'의 현실을 알아가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뒤풀이 자리 말미에서 저마다 살아가고 있는 곳은 달라도 사회 변화를 위해, 그리고 성소수자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자는 이야기를 남겼다. 앞으로 2년 후 한국과 미국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삶이 조금은 보다 즐거운 삶으로 바뀌어 있기를 기원하면서...
장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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