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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바람과 햇살이 스며드는 창하나..... .

by 행성인 2010. 9. 7.

 

친구들과 M·T를 간다는 건 유쾌한 일이다. 언제든 만나면 다정한 벗.

얼마 만에 느끼는 설렘인가? 최근 들어 모 강연회서 다시 만나 M·T 가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을 하며 내 자신이 예전보다 많이 적극적으로 변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왠지 모르게 편하다.

 

8월 21일 토요일 드디어 인천에 있는 ‘왕산해수욕장’으로 떠나는 날. 기다리던 동인련 M·T 첫날이다. 평소 같으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하루 종일 깊은 잠에 빠져있었으련만, 신기하게도 이른 아침 나는 어느새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사람들과 즐겁게 놀다 오리라!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추억 하나 만들어 오리라!!

 

날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핸드폰에 고요함만이 흐른다.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전화를 주기로 하였는데 어찌된 일일까? 무슨 일 생긴 건 아닐까?’ 살짝 불길한 마음에 내가 먼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하니, 신호음만 길게 들릴 뿐 받질 않는다. ‘이쿠! 뭔일 있구나.’ 나는 재빠르게 컴퓨터를 켜고 다른 친구 연락번호를 알아내어 물어보니 오기로 한 친구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 연락을 못했으니 곧 올 거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미리 준비해 놓은 차량을 타고, 동인련 사무실에 들러 물품을 가지고 쭈~욱~고고씽~ ^0^ 연일 무더위가 고공행진을 하며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날씨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종대교를 건너 왕산해수욕장 내에 위치한 펜션에 도착했다. 모임 장소가 1층이라 전동휠체어가 드나들기 용이한 곳이다. 도착을 하니 우리 보다 먼저 와있던 벗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짐을 풀고, 간단히 인권감수성과 관계형성에 좋은 게임을 하였는데, 나는 처음으로 비장애인들 틈에서 참여자가 되어 끝까지 함께 의미를 나눌 수 있었다.

 



바다는 근교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전동 휠체어가 모래에 빠지면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까봐 바닷가 근처에서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딜 가나 말 수가 가장 없던 나인데, 동인련 사람들만 만나면 자꾸만 내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사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부터인가 내 생활이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장마철 날씨처럼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10여 년 전 집에서 독립하면서부터 세상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내 인생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도 장애와 동성애자라는 이중 차별과 싸워온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점점 오랜 고립감으로 인해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남들보다 뒤늦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를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기피하고 있던 잠자는 시간이 무지막지할 정도로 늘어나고, 출근하는 날 수와 외부 일을 하는 날 수가 줄어들고, 또 주말에 외출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나 또한 집 안을 굴러다니는 물건 중 일부가 된지도 벌써 3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무기력함을 느낄 뿐..... .

 

어쩌면 내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보다 ’동성애자‘라는 현실을 수용하기가 더 힘겨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겉으로 나타나기에 오래 전부터 적극적일 수 있었던 장애 문제 보단 비교적 숨길 수 있었기에 뒤늦게 마주하기 시작한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고민이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애인 자립 생활 운동을 통해 신체적인 장애에 대한 보조 인력은 확보하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그 사람들이 감시 카메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내 자립(독립)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있어야하는 보조인들..... .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 역시 숨이 막히게 조여 오는 족쇄 같았다. 외부에 나가서나 집안에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를 감춰야 하는 숨바꼭질 놀이는 쉴 틈이 없다. 안식할 수가 없다. 그렇게 차츰차츰 내 정신적 에너지는 고갈되어 같다.

 

또 다른 의미와 진정한 용기를 배우기 위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인 듯 어렴풋하게 인식되는 것도 있었지만, 현실이 주는 상처는 상상을 초월했다.

 

진정을 다 해 노력하고 또 무엇인가를 타인에게 제공을 해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지면, 그들은 그것을 왜곡시키고 오히려 적을 대하듯이 하였으니 말이다.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동료라고 생각해야 하는 장애인들이 배움과 경험이 부족함으로 이 사회가 취하고 있는 편협하고 기만적인 의식 통제 수법에 무방비 상태로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협소한 잣대로 좀비처럼 차별에 동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원망하거나 미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도 이 사회에 의한 희생자일 뿐..... .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공격 앞에서는 항상 참아야만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끔씩 동인련 벗들이 차별받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 속에 똑같은 아픔이 한 자락씩 더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을 함께 감당하기란 내가 너무 보잘 것 없고 한심해 보였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 그저 침묵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회피는 상처와 아픔을 외면한 채 아무 일 없는 듯 나 자신을 기만하고, 그럴수록 무의식을 지배하는 침울한 고독은 침묵으로 흘러 타인과의 관계를 어렵게 하였다.

그리고..... . 왠지 모르게 나빠지는 건강..... . 그리고..... . 만남도..... . 그리고..... . 연락도..... . 그리고..... . 노는 것도 싫었다. 한동안 딜레마의 폭풍은 나를 휘청거리게 하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금 새롭게 고개를 드는 것이 있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지금은 괴롭지만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불행일까 다행일까?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 파괴적이진 않은 것 같다. 차라리 누군가를 붙들고서 삶이 억울하다고 하소연이라도 해볼까? 아니면 미움이라도 키우면 내 삶을 지탱할 수 있으려나? 미움과 원망은 어쩌면 파괴적일 만큼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그런 것들이 살아 있다면 아직은 살아갈 희망도 남아 있으리라..... .

 

인간은 본질적, 내재적, 가능적 존재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며, 지성과 창조성을 발휘하여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은 ‘결핍증’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부정)’당하고 있다는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고독’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나 역시 내재화 된‘본질적(절대적)가치' 와 표면화 된‘조건적(상황적)가치'를 뒤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수치스러움인가? 무엇이 자신에게 잘 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나를 보는 외부의 반응이나 태도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스스로 숨기고 억압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것을 노출시키기란 너무도 리스크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의에 대한 침묵과 복종은 우리 삶에 대한 모독이다. 질식하지 않도록, 혼자이지 않도록 다시금 만남을 통하여 내 삶에 바람과 햇살이 스며드는 창 하나를 내자! 그리고 그런 만남이 주는 쉼과 의미를 확장해 나가자!! 그리고 서서히..... . 아주 서서히..... . 불의에 대한 분노를 키워나가자!! 싸울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자!!!

 

이번 동인련 M·T를 통하여 만남이란 관계에 대하여 내 자신이 편안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혼자가 아님을, 그리고 차갑게 식은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모진 상처에도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동인련 벗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동안 쉬고 있던 장애인 운동을 다시 시작했음을 밝힌다!!



찰흙 아바타-J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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