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제92가 합헌이라면 대한민국 헌법은 위헌인가?
헌법재판소의 구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합헌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2008년 8월 육군 22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직권으로 구 군형법 제92조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을 위배하고 있고 동성애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그리고 2010년 6월10일 인권사안으로는 이례적으로 군형법 92조 위헌결정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개최하였다. 헌법재판소가 군형법92조에 대한 위헌결정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국회는 군형법 92조를 대폭 개정하였고 그동안 문제시 되어왔던 ‘계간’ 금지조항이 삭제되기는커녕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에서 2년 이하로 상향조정되었다.
구 군형법 제92조 위헌여부 결정에 대해 3년 가까이 끌어왔던 헌재는 지난 3월31일 이 법안에 대해 최종 합헌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도대체 뭘 하며 있었기에 국방부가 제출한 의견서와 보수 교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결정문이 나왔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3년 간 군대 내 동성애자의 군복무에 대한 국가적 연구뿐만 아니라 성적 지향에 대한 국제 인권기준과 비범죄화의 추세, 그리고 인권보장의 흐름을 전달해 왔다. 또한 4천장에 달하는 탄원서와 각계의 의견서를 꾸준히 제출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검토했어야만 했던 중요한 정보들과 의견들은 깡그리 무시한 채 동성애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허위사실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번 결정문이 과연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헌재는 군형법 제92조 위헌여부 결정에서 모든 내용을 판단한 것도 아니다. 또한 일부 재판관들이 위헌의견과 한정위헌의견을 제출했다고 하지만 형법법규의 명확성의 원칙만을 문제 삼고 있을 뿐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판단은 합헌의견과 별 차이가 없다. 군형법 제92조에서 큰 문제로 계속 지적되었던 ‘계간’에 대한 판단은 처음부터 배제하였고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는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은 음란 행위’로 규정하였다. 김종대 재판관의 반대의견 보충의견에선 보수교계와 단체들의 눈치라도 보고 있는 듯 ‘군내에서의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뜻이 아니고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군내에서의 동성애를 금지할 필요성도 있다’고 먼저 못을 막았다. 합헌 의견에선 동성 간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만족 행위’로 규정하면서 군형법 제92조가 동성애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적 교성행위’로 규정하면서 동성애가 비도덕, 비정상인 것처럼 묘사하였다. 이는 공문서에 의한 인권침해이자,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이며, 객관성과 공정성으로 포장된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다. 이것을 헌법에 합치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헌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특히 군 기강과 국가안보를 운운하면서 군형법 92조가 위헌결정이라도 나면 군대에서 동성 간 성행위가 만연할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모습은 동성애자들을 향한 폭력이자 명예훼손이다. 오히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군형법 92조가 동성애자들이 군대 내에서 강제 추행 피해 위험에 더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동성애 혐오증을 부추겨 성 군기 문란의 책임을 동성애자들에게 덧씌우는 이중적 폐해를 낳아 버렸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의 확립, 시장 경제의 건전한 발전 등 모든 분야에서 헌법의 이념과 가치가 존중되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 나아가 세계적인 선진 헌법재판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이고, 무엇이 헌법의 이념과 가치가 존중되는 것이며 과연 군형법 92조의 합헌 결정이 선진 헌법재판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가.
헌재의 판단 속에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모든 국민’에 동성애자들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반인권적이고 몰지각한 이번 결정을 개탄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진정으로 헌법에 충실하고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헌법기관으로 자리잡기를 요구한다. 동성애 처벌이 가능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읽는 자들을 부끄럽게 할뿐만 아니라, 헌법과 보편적 인권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망신에 가깝다. 인권에 무지한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린 이번 결정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통렬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11년 4월5일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인권단체 연석회의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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