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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인권이 모락모락~ 피어났던 인권강좌, 모두를 위한 인권 식탁으로 초대받았던 행복한 그날 저녁.

by 행성인 2011. 4. 8.

인권이 모락모락~ 피어났던 인권강좌,

모두를 위한 인권 식탁으로 초대받았던 행복한 그날 저녁.

 

인권?!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당연한 것 같은 인권! 생각해보니 동성애자인권연대도 인권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인권단체입니다. 그런데 정작 회원들과 인권이 뭔지, 인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찐하게 이야기해 볼 기회가 없었어요. 물론 우리가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면서 이 일 저 일 벌이고, 또 회원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고 자긍심도 키우는 시간들 모두 인권을 위한 시간임은 당연한 거예요. 하지만 이번 인권 강좌는 그러한 활동들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고,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기 위해 준비되었답니다.

 

강사는 ‘인권연구소 창’의 활동가이시자,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 류은숙님이에요. 인권문헌에 대한 쉽고 재밌는 해설을 덧붙인 ‘인권오름’의 글들이 너무 재밌어서 독자로 만났었는데, 최근 모 신문에 실린 ‘배운 여자’ 칼럼에서 밝히고 있듯,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인권운동가로서 열정을 갖고 살아간다는 그녀가 너무 궁금하기도 했죠. 결정적으로는 류은숙님이 활동하는 인권연구소 창의 교육에 다녀온 동인련 회원이 어마어마하게 즐거운 뒤풀이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서 더욱 기대되기도 했고요! 어쨌든 류은숙님께 동인련 회원들과 함께 쉽고 재미있는 인권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4월 1일과 4월 29일, 두 차례 금요일 저녁에 모여 즐거운 인권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29일 교육이 한 번 더 남았네요.

 

이번 교육 참가자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인권연구소‘창’의 교육실이 작은 관계로, 또한 소곤소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충분히 나눠볼 요량으로 최대인원은 20명으로 기획했어요. 회원들뿐만 아니라 동인련 활동에 관심 있지만 접근(?)방법을 고심하던 분들, 청소년, 교사, 사회복지단체에서 일하는 회원, 이름만 알던 후원회원까지 총 12명으로 시작했지요. 소수이지만 매우 다양한 구성이 되었답니다. 특히 이번 교육에 처음 오신 8년째 사귀고 있는 여성커플 두 분을 통해 동인련의 여성회원 가뭄이 드디어 해갈되는 기쁨을 맛 보기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이 있어서 아마 29일에는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교육실이 북적북적할 듯 합니다.

 

인간은 ‘본래’ 그래? 인권은 역동적이다!

 

인권의 역사 강의가 시작되었어요. 근대 시민혁명 이야기가 나오자 ‘이거 사회공부야?’라고 잠시 의심하던 몇몇의 눈빛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이내 깨지고 역동적인 인권의 역사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습니다. 류은숙님은 ‘천부인권’이 인권의 중요한 속성을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인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역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재구성된다는 것이죠. 다시 생각해보았답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동성애자는 ‘본래’ 그렇다고 하는 것이 때로는 매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요. 동성애는 ‘본래’ 혐오스럽고 부도덕하다. ‘본래’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본래’를 뛰어넘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17세기의 사상을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용산에서 철거민을 쫓아낸 사람들이,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친일행위로 받은 땅도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후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근대시민혁명이라고 불리는 영국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을 거치면서 근대의 인권은 자유권뿐만이 아니라 중요하게는 ‘소유권’을 의미하게 되었죠. 프랑스혁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대원칙이 프랑스 민중의 힘으로 선포되었죠. 그게 바로 프랑스혁명이 위대한 이유라고 합니다. 오늘날 아직도 이 땅에서는 철거민들의 거주권이 소유권 앞에 무너지곤 합니다. 그러니까 인권의 의미도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인권으로, 쫓겨난 자들의 거주권으로, 해고당한 자의 노동권, 혼자서 어려우면 떼거지로 맞서는 단결권으로 말입니다.

 

아이히만이 할 줄 몰랐던 것.

 

아이히만은 히틀러와 함께 홀로코스트를 기획하고 집행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전범재판에 참여했던 유태인 학자인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유능하고 똑똑하며 성실한 사람인 아이히만이 할 줄 몰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이히만은 자신의 머리와 말로만 내린 지시 때문에 삶을 빼앗긴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태인들, 집시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 대해, 바로 타인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류은숙님은 우리가 아이히만이 할 줄 몰랐던 것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권운동을 해나가면서 늘 갈고 닦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바로 ‘공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이해되지 않으면 당신의 자리에 서서 세상을 보는 것.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인 듯 했습니다.

 

수치심 없이 공공장소에 나타날 수 있는 권리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가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놀랍기도 하지요? 다들 와~ 하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권리입니다. 수치심 없이 공공장소에 나타날 수 있으려면 우선 낙인이 없어야 하고,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옷도 갖춰 입고 제대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공동체의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동성애자에게는 더욱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면 비난 받거나 때로는 수치심을 느낄만한 일을 당하고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밍아웃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른 침을 삼켜야 하고, 그것이 때로는 사회구성원으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간디는 “사람이 제 동료를 천대하면서 그것으로 제가 높아진 듯이 아는 것이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답니다. 류은숙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잠시 군형법92조 합헌 판결이 나던 날, 헌법재판소에서 동성애를 처벌하라며 목청을 높이던 호모포비아들을 떠올렸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동성애자를 비방하고 혐오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 차이, 연대


 

이제 다시 ‘우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지금껏 ‘우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한 적 있었나요? 동성애자들은 차이를 매개로 ‘우리’에서 배제하는 문제에 대해 가장 민감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 또한 끊임없이 우리라는 정체성 속에만 머무르다 진정한 연대로 나아가지 못한 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은 그러한 점들을 다시 돌이켜 보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차이’를 어떻게 대했는가? 류은숙님이 던진 질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차이를 지우고 입장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마치 “네가 동성애자인거 인정해. 하지만 여기서 티내지마.”라는 이야기일 것이고, 얼마 전까지 미국 군대 내에서 존재하던 ‘DADT(묻지도 말하지도 말라)’와 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거북한 동성애라는 차이는 지워버리라는 것이죠. 또는 “차이를 인정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흔한데요. 이것은 언어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성정체성은 인간이 가진 고유성이며 사실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경우 ‘인정’은 ‘무관심’의 표현이겠죠. 동성애에 대해 아주 조금 관용적인 사회운동가들에게서도 가끔 이런 표현을 듣곤 합니다. “동성애라 차별 받는 것은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라고요!

 

이제 우리는 ‘연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누구나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인권이 보편적이어야 하는 이유죠. 보편성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보편/상식/정상성이 같은 뜻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지금껏 그러한 고정관념에 많이 시달려 왔잖아요. 이것이 보편성 안에서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해야 할 이유이겠죠? 차이를 넘어 연대로 가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불의에 대한 공동감각’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동성애자와 같은 억압받는 사람들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모이곤 하지만, 정체성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분명 그런 감각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덧셈의식’입니다. 불의에 맞서 더하고 더하는 연대의식으로 함께 하는 것. 언제나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인련 회원들에게 가장 힘이 되면서도 깊이 생각해볼만한 주제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응답받을 수 있는 ‘공동의 식탁’


 

자! 마지막입니다. 인권은 이제 공공성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공공성이란 무엇일까요? 류은숙님의 쉬운 설명에 의하면, “그 자체가 미리 마련되어 있고,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동의 식탁”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초대장을 가지고 있고 주인이 따로 없는 모두의 식탁! 또 하나 이 식탁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 곳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소외당하지 않고 모멸감 느끼지 않고 행복을 느끼며 삶을 영위해나갈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나는 동성애자 친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아프지만, 자기 모습 그대로 소통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두 시간 여의 뜨거운 강의가 끝나고 우리는 인권연구소 창의 뒤풀이방(?)에 모여 앉았습니다. 밤늦도록 모두를 위해 마련된 ‘공동의 식탁’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냈습니다. 비워지기 무섭게 끊임없이 나오는 마른안주와 톡 쏘는 음료(^^)를 보며 몸소 공공성을 실천하시는 류은숙님께 많이 배운 하루였습니다. 두 번째 자리가 4월 29일 금요일 저녁 다시 마련됩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사회권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보다 집중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인권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고 싶으신 분들 어서어서 연락주세요^^

 

이경_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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