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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구금시설 내에서의 에이즈 강제검사와 격리수용, 인권이 파괴된다

by 행성인 2011. 12. 23.

 

구금시설 내에서의 에이즈 강제검사와 격리수용, 인권이 파괴된다

우리를 슬프게 한 에이즈 10대 사건 ③


* 이 글은 주간 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기고하였습니다. http://hr-oreum.net/article.php?id=1989



 

“사기죄로 2009년 1월 ○○구치소에 입소하였습니다. 다음 날 모든 신입 수용자들을 집합시키고 한 사람씩 채혈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가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독방에 보내져 밤새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환자복을 입으라고 한 뒤 병원에 안과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눈에 약을 넣고 기다리는데 누가 “여기 구치소 에이즈 환자 눈 좀 봐”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절 보게 되었고 피하면서 수근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진 더러운 인간을 왜 여기까지 데려오느냐며 에이즈까지 걸린 놈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 교도소로 옮기게 되었는데 특별히 변화된 건 없었습니다. 독방에서 혼자 지내며 운동도 혼자 모든 것이 혼자였습니다. 8개월 실형을 살았는데 심한 감기가 걸려도 약을 줄 수 없다, 참으라는 말만 했습니다. 이후 8.15특사로 나오게 되었지만 교도소 앞에서 전 움직이지 못했고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정신과 치료 중이며 광장 공포증으로 밖을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저는 그 곳에서 더러운 인간, 살 가치도 없는 인간처럼 취급당했습니다. 늘 좌절했고 죽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2009년 구치소, 교도소 생활을 경험한 한 HIV/AIDS 감염인의 사례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가 구금시설 입소 경험이 있는 감염인들을 인터뷰하고 정리하는 활동을 하는데 당사자가 현재 치료 중이라 직접 대면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 말했듯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직접 작성해준 내용이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끔찍한 인권침해를 겪고 모멸감을 느꼈을 사례자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사례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사기죄’라는 단어였다. 총 3명의 인터뷰를 했는데 나머지 두 분은 폭행죄와 마약소지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감옥까지 가시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죄를 전제로 둔 구금시설을 생각할 때마다 늘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둔다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누구는 이것 때문에 안 되고 누구는 저것 때문에 안 된다는 단서가 달리는 순간 인권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사례자는 동의 없는 검사를 통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된 상황 때문에 격리수용조치가 취해져 늘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로는커녕 상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멸감에 가까운 말을 들으며 울분을 속으로 삼키기만 해야 했다.



구금시설에서의 검사와 치료



몇 가지 의문을 던져보자. 에이즈는 질병이고 감염된 사실을 빨리 알게 되면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검사를 통해 알게 되면 다행인 것 아닌가? 다른 수용자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격리수용조치를 취한 것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에이즈에 대한 기본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에이즈 강제검사와 격리수용 조치가 국제기준의 원칙에서도 벗어난 반인권적인 조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구금시설에서의 HIV검사는 조금 더 달라야 하는가? 물론 본인의 질병을 빨리 아는 것은 관리와 치료를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본인의 동의 없이 색출을 목적으로 한 채혈은 그 자체가 인권침해다. 그것을 거부할 권리 또한 주어져야 마땅하다. UNAIDS는 이미 1997년에 자발성과 비밀보장을 기본으로 수행해야 하고 자발적 검사는 낙인 없는 환경에서 제공되어야 하고, 사전 상담, 고지된 동의, 사후 상담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WHO 역시 수용자에게 실시하는 강제검사는 비윤리적이고 효과가 없어 금지되어야 하며 검사결과는 의료적 비밀보장을 해야 하는 의료인에 의해 수용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구금시설에서 실시되고 있는 강제검사는 자신의 질병을 더 빨리 알면 좋다는 선의를 가지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질병’을 가진 환자를 색출하고 격리시켜야 나머지 수용자들도 그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이어서 보건학적으로 에이즈는 일상적인 생활접촉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전염력도 약한 바이러스로 구분되고 있으며 치료제 역시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만성질환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구금시설에서의 일상접촉은 사회와 차이가 있는가. 이상하게도 구금시설에서만 HIV전염력이 더 강화되는지, 법무부는 HIV/AIDS감염인 수용자들에게 강제격리수용 정책을 취하고 있다. 혼거생활을 하면 다른 수용자에게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로부터 당사자가 차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격리수용을 정당화하지만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전자는 HIV/AIDS 감염인들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의 대상으로 둔 인식이고 후자는 거두절미하고 비겁한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WHO는 1999년 구금시설에서의 에이즈 가이드라인에서 모든 수용자들이 특히 법적상태나 국적과 관련하여 차별 없이 구금시설 밖에서와 동등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이는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수용자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 치료선택에 대한 정보에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례자처럼 적절한 치료는커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절한 치료, 돌봄,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낙인 속에서 희석되어 버렸다.



수용자 의료관리지침 재개정해야



2011년 3월 법무부는 「수용자 의료관리지침」(법무부 예규 제971호)을 개정하였고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행형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개정된 「수용자 의료관리지침」에는 구금시설에 입소하는 모든 신입 수용자에게 에이즈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고 HIV/AIDS 감염인을 즉시 격리수용할 수 있도록 차별적 처우를 규정하고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개정안에는 수용자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건강진단(에이즈 검사 포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침과 법이 개정되기도 전부터 구금시설 내에서는 이미 강제검사, 격리수용조치가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수용자 의료관리지침」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의료정보시스템을 규정하여 수용자의 의료정보를 장기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어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마저 가지고 있다. 자신들은 타 수용자들로부터 차별을 받을까 걱정돼서 격리조치 시킨다고 할 지 몰라도 관리지침의 개정은 개인질병정보를 더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어 차별은 더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격리수용조치를 당하고 있는 HIV/AIDS 감염인의 심정은 어떨까?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의 사례를 잠깐 언급해보겠다. 1평 남짓한 병동독방에 수용되어 있는 분은 복도에 위치한 CCTV가 회전하면 독방 안이 다 보인다는 것을 안 뒤 변비가 생겼다고 했고 병동독방이라고 해도 환자용 침대나 병실이 없어 건강을 최소한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수치라는 말을 출소 후 처음 알 정도로 감염인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정보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한분은 병동독거와 일반 독거를 모두 했는데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나는 질문에 장갑을 끼고 이발을 해주거나 목욕을 혼자 할 때 그 모습 자체가 수치스러워 독방에서 대강 씻겠다고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3개월마다 정기검사 때문에 병원을 찾지만 교도관 4명과 함께 동행해야 했고 치료제를 처방받으면 바로 돌아가야 할 정도로 의료인과 상담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으며 처방받은 약마저도 제때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WHO, UNAIDS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받기는커녕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인터뷰를 통해 확인했다. 통제와 색출을 목적으로 한 강제검사, 격리수용 정책이 더 강화된다면 HIV/AIDS 감염인 수용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 질 수 밖에 없고 에이즈 예방이라는 목적 또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죄를 짓지 말지’, ‘감염되지 않게 조심하지’라는 말로 정부의 정책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법무부는 WHO가 제시한 구금시설 내의 HIV전염, 에이즈에 대한 가이드라인를 수용하여 「수용자 의료관리지침」을 재개정해야 할 것이며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역시 개정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 더 읽어볼 자료.

우리를 슬프게 한 에이즈 10대사건 ① "생명을 팔아넘긴 한미FTA폐기해야"
우리를 슬프게 한 에이즈 10대사건 ② "여전히 지속되는 의료기관에서의 감염인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