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의 정답은 글 말미에 나오니 전문을 읽으시면 좋습니다)
달꿈(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성소수자 무지개 타고 강정으로> 참가단은 3월 31일~4월 2일 동안 강정마을에 들어설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강정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정마을에 방문했다. 강정마을에 걸 현수막과 여러 성소수자단체와 개인들의 후원금을 가지고 말이다. 이 글은 총 이틀간의 ‘여행’ 같았던, 아주 짧은 견학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틀간의 기억을 나열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이곳에서 느낀 감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가고 싶었지만 함께 가지 못했던 많은 동인련 회원들에게 우리가 강정마을에서 했던 활동들과, 내가 보았던 강정마을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강정마을 견문기
3월 31일 토요일.
이른 시간에 김포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에 배낭과 함께 걱정과 설렘을 가지고 탑승했다. 걱정이면, 들려오는 강정마을의 소식과 또 그곳에서 직접 볼 풍경들이 너무나 예상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고, 설렘이라면, (이번이 두 번째 강정마을 방문인 내게) ‘성소수자’ 라는 이름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과 함께 그곳에 방문하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막상 강정마을에 도착하자 걱정거리로 바뀌었지만, 이때까진 설렘의 요소로 작용했다. 도시를 벗어나 따뜻한 남쪽으로 간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설레지만 좀 불편한, 꽤 복잡한 마음으로 제주도를 향해 떠났지만, 사실은 이 연대활동이 즐겁기를, 마치 여행 같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절망보다는 즐거움이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를 바랐다.
제주공항에 내려서 강정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했다. 준비해온 깃발을 펼치긴 했다. 무수히 많은 해군기지건설반대의 깃발 속에 오로지 단 하나, 찬란히 빛나는 무지개색 깃발이 자랑스럽기도 했으나 조금은 부담스러워 구석에서 조용히 깃발을 들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보이는 이 깃발, 그리고 선명한 글씨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동성애자를 강정마을의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의 연대를 부담스럽게 느끼진 않을까? 결국 매번 하던 질문을 던지며 쭈뼛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살포시 깃발을 꺼내들었다. 강정마을에 도착해서 참여한 공사장 정문 앞에서 진행한 집회의 모습.
집회가 진행되는 내내 반대편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군복 입은 자들의 ‘엉터리 집회’도 함께 있었다. 집회가 끝나고 강정포구를 향해 행진을 하고,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날씨였지만 마을 주민들과 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율동을 하며 문화제를 즐겼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하며 강정포구로 가는 길. 높다란 펜스에 가려 구럼비 바위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어 본 펜스 너머는 구럼비바위는 간데없고 공사현장 같았다. | 행진을 하던 우리는 질서유지선 앞에 멈춰 섰다. 더는 앞으로 갈 수 없었다. |
즐겁게 율동을 함께 하는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 | 저녁에 매일같이 열리는 강정 문화제. 오늘은 홍대인디뮤지션 시와가 노래를 했다. |
글로 쓰니 참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고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문화제에 끝까지 참여한 우리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강정마을에 상주중인 동인련 회원들을 만나서 숙소로 돌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있을 노동자대회에 참여하고자 몸피켓을 만들었다. 피켓 작업이 모두 끝난 후에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야식을 먹고, 몸피켓 만들기에 돌입! | 완성한 몸피켓 |
4월 1일 일요일, 강정에 도착한 이튿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난 오리, 이경, 달꿈은 오전부터 분주하게 밖으로 향했다. 공사장 정문에서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과 함께 108배를 하고, 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경찰차를 막는 활동을 함께 했다. 직접 몸으로 막으며 마을활동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무장도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구럼비 발파를 위해 들어오는 화약차량을 어떻게 막았는지 보여주는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일어날 갈등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우리는 곧 숙소에 자고 있는 나머지 동인련 회원들을 깨우기 위해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준비해온 현수막을 강정마을 안에 설치했다.
마쯔가 디자인한 현수막.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한 후 새삼스럽게 구경하는 동인련 회원들.
현수막 설치가 끝난 후에는 노동자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강정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정초등학교에 가는 마을 입구에서는 경찰차 진입을 막기 위해 마을 활동가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우리는 노동자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곳을 지나 왔는데, 얼마 후에 그들의 연행소식을 접했다. 일상적인 연행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고, 무디게 할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고 특히나 그곳을 지나쳐온 나에게 많은 물음과 또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았다.
노동자대회가 끝나고 함께 행진 (1) | 노동자대회가 끝나고 행진 (2) |
2. 우리가 본 최고의 풍경
노동자대회에 참여하고, 집회가 해산한 후에 우리는 잠시 낮잠을 청한 후, 산책을 할 겸 다같이 강정천으로 향했다. 사실 이게 이 견학문의 클라이맥스다.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던 강정천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귀포시 식수의 70%를 생산 공급하는 곳이라, 강정천이 강정 앞바다로 연결되는 지점은 보지 않으면 모른다.
거울같이 맑은 강정 천. | 강정천은 강정 앞바다와 만난다. | . |
이외에도 강정에는 더 아늑하고, 감동스런 풍경들이 많다. 이 것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해군기지가 이곳에 건설되면 왜 안 되는가를 눈으로 보고 느끼고 왔다. 물론 강정마을 최고의 풍경인 구럼비 바위는 볼 수 없고, 붉은발말똥게보다 경찰들이 더 많은 괴이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강정의 풍경을 보러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강정마을을 나올 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그곳의 풍경을 보고,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그것부터가 작은 실천이 아닐까. 좋은 연대는 공감이 아닐까. 공기와 물과 풍경과 색깔은 지켜져야 하는 많은 이유를, 분명한 말을 당신에게 걸 것이다.
3. 급작스런 마무리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어쨌건 나는 지금 가장 감격적인 순간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의 질문인 대체 ‘왜 성소수자들은 강정마을에 갔을까?’의 정답을 밝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정마을에 도착한 첫날밤, 강정마을 문화제에서 발언요청을 하기로 했다. 성소수자인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이 순간을 위해 전날 오리가 대표로 혼자 대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는 마지막 날 문화제에서 연대발언을 했다!
“굉장히 많이 떨려요. 왜냐하면 아직도 동성애자를 비정상, 정신병으로, 죄악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우리는 평화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찾아왔지만 사실 마을 주민 분들이 싫어하실 수도 있고, 쫓겨나거나 혼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찾아왔어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여기 있어도 없는 게 되고, 우리를 향한 편견과 차별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냥 지켜주지 않으니까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전쟁과 군대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싸우는 세상을 꿈꾸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연대하겠습니다. ”
오리의 발언이 끝난 후엔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의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좋았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성소수자들도 이 투쟁을 지켜보고 있고, 지지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을지 몰라도, 지친 투쟁의 순간에 연대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강정에서의 이튿날은 깨알 같은 일정과 함께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강정마을 밖이다. 그곳의 소식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또 동인련 회원들이 함께 갈 수 있는 활동을 조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또 가고 싶고 동인련 회원들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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