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현 (동성애자인권연대)
밀양 희망 버스에 다녀왔다. 밀양의 산속 마을은 초고압 송전탑 건설로 7년 동안 한국전력+전경들과 싸움을 벌여온 곳이다. 주민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인 그 분들은 지금 자신들이 사는 곳 위로 송전탑이 지어지는 것을 반대하며 하루하루 싸우고 계신다.
난 희망버스가 좋다. 나에게 정말 희망을 준다. 가기 전에 소식을 듣고 있자면 점점 우울해지곤 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왜 세상은 이 모양일까? 바꾸는 게 가능하기는 건 한 걸까?’ 비관적으로 되곤 했다. 그러다가 직접 가 싸움을 이어나가는 분들을 보면 마음에 힘이 난다.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도, 힘있는 누구를 빽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전문가들을 설득할 만큼의 정보를 가진 것도 아닌데, 울고 웃고 화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하는 분들을 보면 나를 가득 채웠던 비관이 사라진다.
뭔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더 이상 해 봤자 인 것 같은 때들이 있다.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 그럼에도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문화제 영상에서 "나는 중단될 거라고 본다. 중단만 시키면 되지 않것나?"라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주민의 얼굴을 보는 순각 난 흔들렸었다.
이번 희망버스에서 가장 재밌던 것 중 하나는 밀양 할매들의 합창이다. 할매들은 뽕짝을 개사해서 불렀는데, 뒤집어지면서 웃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네.ㅋㅋㅋ” 사람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건 언제나 멋지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전날 일정이 있어서 늦게 KTX를 타고 갔는데, 당일 오전에 출발한 팀들은 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장에 등산해서 올라갔다고 한다. 이번에도 엄청난 숫자의 경찰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한 팀은 4번이나 경찰들에게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었다는데, 꼭 한번은 공사장에 가보고 싶다는 주민의 말에 되돌아 내려올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어두워질 때에야 경찰들을 뚫고 공사장까지 갔다. 공사장에서 그 주민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지막 순서까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다. 절대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그 많은 경찰들에게 매일 저지당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분들에게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하면 나도 눈물이 난다. 그건 성소수자인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성소수자 차별이 행해지는 현실에서 나에게도 희망버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쌍용차 고동민 동지가 사회를 봤는데, 문화제에서 "죽지 말고 싸우자. 죽어서 이기면 뭐하나. 살아서 끝까지 싸워서 이깁시다. 할매, 할배"라고 하는데, 또 펑펑 울어버렸다. 쌍용차를 비롯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는다. 죽음을 당한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국가가, 경찰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HIV/에이즈 감염인이 제대로 된 치료조치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 때문에 밀양에서 자신들을 보게 된다. 이 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싸운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지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가서 마음을 전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안다. 그래서 "우리가 밀양이다".
희망 버스가 온다니까 반대하는 측에서 현수막을 걸었다고 하더라. "희망버스는 절망버스" 절망이 뭔지 안다. 절망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보고 있는 거다. 더 이상 우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사는 게 사는 건지 모르는 거다. "나만이라도 잘 살아야지" 하면서 주변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거다.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점점 힘겹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모두들 희망을 가지자. 바꿀 수 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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