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0월 27일, 서울 도심에서 ‘미니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약 40명의 행진 참가자들은 무지개 깃발과 피켓을 들고 청계천, 서울광장, 대한문, 덕수궁길, 정동을 가로질러 주한 러시아 대사관으로 향했다. 수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기 바빴다. 푸틴과 히틀러가 합성된 그림을 본 어린아이는 무섭게 생겼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한민국 퀴어들과 지지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치켜들고 러시아 대사관으로 향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지개 깃발을 들고 시청역 근처를 행진하는 FKWL(From Korea With Love) 퍼포먼스 참가자들



이 퍼포먼스를 처음 생각해 낸 이들은 FKWL(From Korea With Love)라는 이름으로 뭉친 세 명의 대학생들이다. 평소 여성, 성소수자 등 젠더,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이 청년들은 러시아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 즉 반동성애법들이 제정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한 후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침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푸틴, 반동성애법 집어치워라”를 외치며 러시아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행진을 벌이고, 세계 곳곳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키스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이 이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폴란드의 동성애자 국회의원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푸틴과 키스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어로 “나는 선전이 아니라 사람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퍼포먼스 참가자



대한민국 퀴어들과 지지자들도 전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여 어려운 시기를 견뎌 내고 있는 러시아 퀴어들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인종, 언어, 문화는 다르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 혐오, 폭력은 우리가 겪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고, 그 고통과 절규를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기 위해 코리안 퀴어들과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렇게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포먼스 소식을 접한 이들이 10월 27일 서울 청계광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무지개 깃발, 그리고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적힌 피켓들을 꺼내 들고 선언서 낭독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의 LGBT 친구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난 7월 시행된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은 러시아의 LGBT 친구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사랑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배포할 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LGBT 친구들은 그들의 사랑과 평등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최대 100만 루블, 한화 약 3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보이는 반인권적 움직임에 힘입어 러시아의 성소수자 친구들을 대상으로 살해를 포함한 수많은 심각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실정입니다.

러시아에는 500만 명이 넘는 성소수자가 살고 있습니다. 동성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말은 동성애가 해악적이며, 성소수자는 동등한 시민일 수 없다는 함의를 지닙니다. 그들의 사랑에 어떠한 이름이 붙든, 그 숭고함에는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의 사랑은 평등하며 한국에서든 러시아에서든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는 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피켓을 들고 청계광장을 행진하는 FKWL(From Korea With Love) 퍼포먼스 참가자들



무지개 깃발을 들고 ‘뽀뽀뽀’ 노래를 부르며(성 역할 고정에 반대해 가사도 살짝 바꿨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까지 행진한 이들은 대사관 앞에서 다시 한 번 선언서를 낭독하고 본격적인 뽀뽀 세리머니를 펼쳤다.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같은 뜻을 가지고 거리에 나온 이웃들끼리 입맞춤을 나눴다. 한 퍼포머는 나무에 입맞춤을 하며 자연 사랑을 호소하기도 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퍼포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퍼포머들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비전통적 성관계’를 ‘선전’하기 바빴다. 푸틴 가면을 쓰고 있던 몇몇 퍼포머들도 ‘동성애 선전’에 일조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키스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FKWL(From Korea With Love) 참가자들



 대한민국 서울에서 러시아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곧 러시아 현지의 주요 LGBT 매체들을 통해 신속히 보도됐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연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와 사회의 동성애 혐오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푸틴 독재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나라 부산까지 찾아와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비난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괴한들이 성소수자 단체 사무실에 난입하여 총을 쏴 부상자들이 발생하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으며, 모스크바의 유명 게이 클럽은 가스 공격을 받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2월 3일에는 아르한겔스크 법원이 ‘동성애 선전’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적용해 처음으로 유죄 선고를 내렸다. 언론을 통한 ‘동성애 혐오 선전’도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데, 러시아 국영 TV 채널에서는 황금 시간대에 한 시간이 넘도록 노골적으로 동성애 혐오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LGBT 이슈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었던 러시아 통신사 ‘리아노보스티’가 푸틴 대통령령에 의해 폐쇄되고 러시아의 대표적인 동성애 혐오자인 드미트리 키셀료프가 이끄는 ‘라시야 시보드냐(러시아 오늘)’ 통신사가 새로 설립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게이 잡지 ‘The Advocate’에서 올해의 동성애 혐오자로 선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연례 대의회 국정연설에서 비판 세력을 의식했는지 직접적으로는 못하고 우회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비판하기 위해 ‘성별을 구분짓지 않는 비재생산의 관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FKWL(From Korea With Love) 퍼포먼스 참가자



 <더 패키지(O Pacote, The Package, 2012)>의 감독 라파엘 아이다르(Rafael Aidar)는 러시아 LGBT 커뮤니티에 보내는 연대 메시지에서 “편견, 무지, 인권 불인정에 맞서 투쟁함에 있어서는 지리적, 문화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언들과 우리 예술의 목소리는 우리의 자취를 남기고, 또 우리는 정당하게 살고 싶으며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무지개 깃발 아래 전 세계에 외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나란히 할 때에 우리는 더 강합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한국인들의 의지가 소중한 이유이다.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FKWL(From Korea With Love) 퍼포먼스 참가자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다. ‘미성년자 대상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으로 인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일부 국가 정상들은 이미 소치 올림픽 개막식 불참을 선언했다!), FKWL(From Korea With Love)는 올림픽 개최 기간 중에 한 번 더 퍼포먼스를 기획 중이다. FKWL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받아 볼 수 있다. 끝내 사랑이 혐오를 이기는 그 날까지 대한민국 퀴어들의 연대와 투쟁은 계속되리라.

 


2013년 10월 27일 서울에서 개최된 러시아 LGBT 커뮤니티 지지 퍼포먼스 영상



 

- 관련 링크

오경미,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타자를 말하기: http://communityart.co.kr/70179846265

Gay.Ru, В центре Сеула два часа целовались и ходили маршем в поддержку геев и лесбиянок России: http://www.gay.ru/news/rainbow/2013/11/01-27409.htm

GayRussia.Ru, В центре Сеула прошла акция солидарности с российским ЛГБТ-сообществом: http://www.gayrussia.eu/russia/8092/

LGBTnews.in.ua, В центре Сеула прошла акция солидарности с российским ЛГБТ-сообществом: http://www.lgbtnews.in.ua/videonovosti/v-tsentre-seula-proshla-aktsiya-solidarnosti-s-rossiyskim-lgbt-soobschestvom

g-lad xx, 韓でロシアの反同性愛法への抗議が行われました: http://gladxx.jp/news/2013/3598/36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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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곱단
    2013.12.31 21:03 신고 [Edit/Del] [Reply]
    멋져요! 대단해요!

    다음에 또 키스시위를 한다면 꼭 함께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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