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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후원/무지개 텃밭은 지금

[아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by 행성인 2012. 8. 2.

재경,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얼마 전 동인련으로 하나의 메일이 왔습니다. 가톨릭 대학교 ‘현대사회의 성과 문화’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실리콘 팔찌를 제작, 판매한 수익금을 동인련에 전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는 잠시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각박한 사회에 이렇게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 계셨다니!


동인련 웹진팀에서는 이 사람들을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프로젝트 팀장인 서민지님께 메일을 드렸고, 6월 28일 목요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서민지님과 박수진님께서는 환한 얼굴로 저희를 맞이해주셨습니다. 어찌나 밝은 미소를 가지고 계신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절대 저희에게 기부를 하겠다고 하셔서 그런 건 아니었구요.



박수진님과 서민지님



수업(현대사회의 성과 문화)과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릴게요.

저희 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 ‘현대사회의 성과 문화’라는 수업이 있어요. 교수님께서 저희 학교 출신이신데, 강의실 안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어요.

프로젝트의 이름은 ‘강의실 탈출’ 프로젝트였는데, 각자 조를 나눠서 어떤 조는 전시를 하기도 하고,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연극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어요. 저희 조는 뭔가를 만들어서 팔기로 했죠.

각 조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많이 다뤘어요. 연극하는 조에서는 노래방 도우미의 자살사건에 대해서 다루기도 하고, 영상조에서는 남과 여의 차이에 대해서 다루기도 했죠.

희한했어요. 아무도 먼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조원 모두 이렇게 말했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걸로 해보자!”

그렇게 시작했어요. 정말 신기하죠.


성소수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할 수 있는 것, 그 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우리가 있다는 것, 우리가 성소수자들을 지지한다는 것,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것을 표현할 방법들을 찾아보았어요. 처음에는 양말이나 뱃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양말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신어봤자 소용이 없어요ㅜ) 뱃지는 옷에 붙이면 구멍이 나니까, 에… 우리의 옷은 소중하니까요. 결국 선택한 방법이 실리콘 팔찌였어요. 눈에 잘 띄고 뱃지처럼 구멍이 나지는 않으니까.


색깔별로 실리콘 팔찌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팔찌 하나에 무지개 색을 모두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작비가 만만치 않더군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단색 팔찌를 색깔별로 만들기로 했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실리콘 팔찌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라는 문구가 마음에 드는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문구를 새길 때 여러문구들을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부르노 마스의 노래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를 새기기로 했죠. 실은 말이죠… 팔찌에 글씨를 프린팅할 마음이 없었어요. 절대 양보할 수가 없었거든요. 팔찌에 글씨를 새기는거 말이에요. 음각으로. 하지만 음각으로 새기는 건 너무 비싸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프린팅된 팔찌도 나쁘지는 않더라구요.


학교에서 판매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사람들 반응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도?

팀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팔찌 700개를 주문했어요. 한 사람당 100개씩 팔기로 했죠. 어떻게 팔았냐구요? 인맥, 인맥을 동원했어요. 친구와 선후배에게 판 뒤, 친구의 친구, 후배의 친구, 선배의 친구… 뭐 이렇게. 학교 교수님들께서 대량으로 사주시기도 했어요. 정말 놀라웠죠. 이건 2천 원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거라면서, 돈을 더 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인사동과 홍대에 나가서 길거리에서 판매를 하기도 했어요.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어요. 홍대에서는 홍대 놀이터 앞에서 판매를 했는데, 너무 시끄럽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중간중간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분들도 많았지만요.

퀴어퍼레이드날에도 제(서민지)가 다니는 열린문 공동체 교회(Opendoor Community Church)와 함께 팔찌를 팔았어요. 되게 신났어요. 30만원 어치를 팔았던 것 같아요.



인사동에서 팔찌를 판매하는 모습


기부처를 선택할 때, 동인련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성소수자 단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동인련이 제일 먼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이곳에 기부를 하기로 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취지에 따라 전달해주신 수익금이 청소년 자긍심팀에게 전달되었는데, 특별히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수익금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어요. 동인련에 있었던 고(故) 육우당에 대한 글을 접했을 때, 너무 마음이 안 좋았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후에 바뀐 것들이 있나요.

수업에 끝날 때 즈음,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어요.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정말 변했더라구요. 수업 초반만 하더라도 성소수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학기말에는 무지개 팔찌를 차고 있더라구요. 정말 놀라웠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내년에는 퀴어문화축제에서 자원봉사도 해보고 싶어요.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성소수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요.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것은 성소수자 스스로가 아닌 이성애자의 프로젝트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자신과 같은 이성애자가 타인인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동인련이 강조하는 ‘연대’의 진정한 힘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 디뎌야 할 첫 걸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