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누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말했던가?! 가족주의와 갑자기 넘치는 관심에 퀴어들은 더 살기 힘들다. 수십 번의 생존위기(?)를 넘긴 동인련 회원들의 명절 생존기를 모아봤다.
“집안 사람들은 강아지 데리고 놀면서 집안에 아기가 있어야 웃음꽃이 피는데 이렇게 삭막할 수가 없다고 말하곤 해.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손녀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압력을 많이 넣어. 나는 그럴 때면 혼이 빠져나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지. 성적 매력이 없어서 남자를 못 사귀는 여자처럼 앉아 있어.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내가 그렇게 보이는 것을 싫어해. 한번은 엄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네가 정말 시집을 못 가서 못 간 것처럼만 보이지 말라고. 네가 시집을 안 가더라도 못 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보이지 말라는 얘기지. 서른 네 살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가면 차라리 숙맥이라서 시집을 못 갔다고 얘기하는게 편해. 지금까지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시집을 못 간 척했거든. 근데 그것도 변명이 너무 궁색해서 예전에는 다른 변명을 한 적도 있어. 어떤 남자한테 차여서 상처받은 걸로 2년을 우려먹었지.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내 서사에 그렇게 관심 없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러다가 거짓말이 너무 많아져서 잊지 않으려고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적도 있어. 옛날에는 그랬어. 지금은 막 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나는 명절 때 여동생이랑 설거지를 해. 동생이랑 일을 비슷하게 하는데 칭찬은 내가 훨씬 많이 받
지. 내가 설거지 한 게 한 6~7년 됐는데 지금도 내가 설거지하러 들어가면 작은 엄마들이 됐다고 쉬라고 그래. 그정도 했으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 같은데 지금도 내가 하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
“사실 우리엄마는 그렇게 기력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명절이 되면 슈퍼우먼으로 변하지. 억센 아줌마처럼 바뀌어. 에너지도 넘치고 행동이 두 배 이상 빨라지고 심지어 말하는 것도 공격적으로 변해.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는 앓지.”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게이인 걸 다 알아. 그런데 사촌형이 한번은 결혼을 얘기하면서 다음 차례는 나라는 거야. 다 알면서도 인사치레로 하는 거지.”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선 집에 안가. 23년 동안 명절을 보편적이고, 보수적으로 보냈어. 그래서 그 뒤의 명절은 아주 힘들었지. 나는 명절이 되면 우울증이 와.”
“명절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잖아. 자식이 부모를 안 보고 살 수도 있어. 부모도 자식을 안 볼 수 있고. 하지만 없어서 못 보는 것과는 다르지.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해. 차라리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왜? 우리나라는 명절이라고 한껏 들떠 있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잖아. 그래서 올 추석에는 여행을 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명절이 되면 항상 동인련에서 놀았어. 각자 음식을 싸 와서 밤새 술을 먹었지. 복분자주도 마시고 유과도 먹고 송편도 먹었지……. 난 그게 너무 좋았어. 나에게 동인련은 가족 같아. 동인련 사람들하고 헤어질 때 하는 안녕은 그냥 인사가 아니라 또 봐, 내일 보자 이런 느낌이야. 사실 이런 게 진짜 가족 아닌가 싶기도 해.”
“나는 고향이 천안인데 고향에 내려가면 가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고향 친구는 만나면 첫 번째로 물어보는게 여자 친구가 생겼냐는 거지. 친구들은 내가 별로 여자한테 관심이 없고 여자 안 사귀는 거 알면서도 오랜만에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봐. 친구들은 그 문제가 제일 궁금 한가봐.”
“나는 명절에 제일 싫은게 여자들은 부엌에서 일을 하고 남자는 TV 앞에 널브러져 있는거야. 우리 집안이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집안이거든. 어릴 때부터 명절에는 집안일을 계속 도와야 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불만을 많이 얘기했는데 바뀌지 않더라고. 지금은 우리 집안 남자들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는 선상에서 남자들을 이용하려고 하지. 마늘 까는 것, 밤 까는 것을 남자들한테 슬쩍 넘기고 잘한다 칭찬하는 거야. 그리고 엄마한테 음식의 개수를 줄이자고 말하기도 하고.”
“보통 명절에는 집에 있어. 명절에도 바깥에 나가고 싶지만 엄마가 집에서 가족끼리 보내야 한다고 그러거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있었지.”
“난 커밍아웃을 했어. 그런데도 성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냐?, 여자를 사귀어야 하는 게 아니냐 계속 말하지, 집에 있으면 엄마랑 계속 싸워, 누나랑도 싸우고. 나한테 명절은 쉬는 날 이상의 의미는 없어.“
“나는 작은 엄마들이 많아서 집안일을 많이 안 해. 하는 건 밥 먹고 커피를 나르는 거, 수저 놓고 반찬 옮기는 것이야.”
“나도 친척들이 많아서 다같이 모여서 명절을 보내. 오랜만에 사촌들, 친척들을 많이 만나서 난 명절이 좋아.”
“명절이 좋다고? 난 심심한데… ”
“응 나는 명절이 재밌어. 기다려지고. 나이 많은 오빠들이 많아서 용돈을 많이 주거든.”
명절이 되면 모두가 변하는 것 같아. 모두 평소대로 있을 수 없는 것 같아. - by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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