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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후원/무지개 텃밭은 지금

강양의 '오늘은 후원이야!' 후기

by 행성인 2012. 9. 25.

강양(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물론 매일 이러면 나 죽겠지만)

 

주의 : 이 글은 본인의 알코올과 스트레스, 어릴 적 번개 치는 날 입은 정신적 외상에 의해서 심각하게 손상된 기억력에 의지한 것이라 다소의 윤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중간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저한테 알리지 말고 혼자서만 기분 나빠 해주세요^^

 

후원의 밤이 있던 그 날. 개인 사적으로 말하자면, 한 달에 딱 6일 뿐인 나의 휴일 중 하루와 겹친 그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한껏 게으름을 부린 다음 모래 맛이 나는 고시원 밥으로 브런치를 대신하고 하루 내내 게임이나 할 생각이었던 그 날. 그래 바로 그 날.
이주사의 문자가 나의 평화롭고 찌든 일상에 난입했다.


‘열두 시까지 레벤브로이로 와라!’


뭐 나도 명색이 회원인지라 후원의 밤 때문에 부르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단 6일 뿐인. 그것도 대부분을 의식불명으로 보내버리는 (대부분 그 전날에 술을 마시니까) 휴일에 맨 정신으로 눈을 떴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수많은 몹과 랩업을 해야 할 언데드 오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가는 후에 어떤 보복이 있을지 모르고 (닭도리탕 하나 사주고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웹진팀이란 말이닷!) 결정적으로 쉬는 날 게임만 하는 인생도 탈피 해보고 싶은 생각에 (절대 게임에 접속했을 때 본 정기점검 문구 때문이 아니다) 여튼 가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에 단 6일 뿐인 나의 휴일. 나 자신에 대한 사치는 조금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렇게 답문을 보냈다.


‘일이 있어 조금 늦을 거 같아요. 한 시 반까지 갈께요.’


물론 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원래 가기로 한 시각에 한국인의 정을 보태 넉넉히 두시에 을지로에 도착한 나는 같이 온 재경과 함께 목적과 흐름에 관한 철학적 토론을 시작했다. 뭐 차 포를 떼어놓고 말하자면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젠장 레벤브로이는 어디야?”
길치로 태어난 덕에 인생의 방향성을 상실한 우리는 찌는 듯한 더위에 졸도할 뻔하다가 감성청년을 만났다. 기쁜 마음에 우리는 그에게 길을 물었고 그는 친절하게 답했다.
“글쎄 여기 어딘가 있겠지?”
그래. 그건 나도 동의해. 근데 그 말을 사하라 사막에서 바늘 찾는 사람에게 해주는 건 어떨까? 아마 낙타 대신 당신을 타고 다닐 거라고!
다행히 레벤브로이라는 김빠지는 이름의 술집은 가까이에 있었고 다행히 길치로 태어났지만 문맹으로 자라난 건 아니었던 우리는 간판을 보고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바닥에 아름답게 흩뿌려진

 

쓰레기였다.



강양이 주운 쓰레기를 양산한 활동 사진 전시


 

이주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반가움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강양은 오늘 부랑자 컨셉이니까 쓰레기 주워라.”
뭐. 엄밀히 말하면 부랑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 쓰레기를 줍는 건 아닌데. 어쨌거나 이미지라는 것은 개인의 세계관에 의해 윤색되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에… 여튼 난 졸지에 부랑자가 되어 쓰레기를 주웠다. 부랑자라니! 광장시장에서 6만원이나 주고 사기 당한 소중한 내 미군잠바라고요!
쓰레기를 다 줍고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멍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할 일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스텝들은 서빙과 계산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설명 해드릴테니 잘 들으세요.”
뭐 난 스텝은 아니니까 그냥 대충 맥주나 몇 잔 마시고 흥청망청 당나귀 모드나 하고 있어야지 생각했을 무렵. 내 목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목걸이형으로 생긴 그 물체는 활자가 새겨진 종이를 비닐포장지로 고이 품고 있었고 종이에 새겨진 활자는 끔찍하게도!

‘진행’


허허 이런 제기랄. 망했네. 아까 누가 주길래 읽어보지도 않고 무심코 목에 걸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스스로 목에 칼을 차는 짓거리였다니. 고맙다. 누가 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평생 널 저주하마.

그렇게 한 달에 여섯 번 있어야 할 나의 휴일은 다섯 번이 되었다.

 

나는 지도상으로 4번이라고 되어 있는 구역에서 서빙을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나는 스텝임을 나타내는 하얀색 옷을 입고 목에 저주로 얼룩진 스텝 명찰을 걸고 서빙에 만반을 기하는 자세를 취한 뒤.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4번 구역은 외진 곳이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공연을 해도 보이지 않는 후원의 밤의 변방이랄까? 그렇게 드러누운 고양이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자 기획단장 모리가 와서 사진을 찍어갔다.(허허 죽을라고) 어쨌든 남들은 슬슬 바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게으름이라는 개념이 내 몸을 통해 체화되는 것을 느끼며 쏟아지는 잠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4번 구역에 첫 손님이 왔다!

 

뭐 외부 손님은 아니고 카이님이 일하다가 맥주 한 잔 하겠다며 온 것에 불과하지만. 난 잠이 덜 깬 눈으로 대충 주문을 받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계산대에서는 인간계산기로 변한 달꿈이 광기에 젖은 눈으로 열심히 주문을 받고 있었다. 계산대 구석에 박혀 있는 달꿈은 유폐된 슈퍼컴퓨터를 연상하게 했다.

‘아 열심히 하는군. 근데 모자가 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차마 입으로는 뱉지 못하고 그냥 미소와 함께 돈과 주문서를 주고, 맥주를 받으러 갔다.

조리실 옆은 이미 시켜놓은 맥주와 안주들을 나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맥주 따라주는 아가씨 맘에 들더라. 어쨌거나. 맥주를 가져다주는 내 손길은 남들과는 다르게 한가하고 여유로웠다. 4번 구역은 무인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결국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자의 소리긴 했다.

 

결과적으로.

잠시 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세상에! 전국방방 곡곡의 성소수자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오는거냐? 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뭐 후원의 밤이 흥했다고 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배리 배드 씽이었다.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으니까. 나는 발바닥이 약하단 말이닷!



북적이는 후원의 밤



뭐 중간에 친구가 와서 날 지명해주는 바람에 핑계를 대고 쉬긴 했지만. 근데 비싼 남자도 아니면서 얼마 앉아 있지도 못했다. 더 앉아있으라고 원망하는 친구를 보며 더 날 갖고 싶으면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안주인 해물떡볶이를 시키라고 말해준 후 비웃음을 날리며 서빙하러 떠나버렸다. 친구는 바로 해물떡볶이를 시켰지만 나는 그깟 해물떡볶이로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3초뿐이야 라고 비웃으며 다시 떠나버렸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나의 삶은 이러했다. 맥주 한 잔 나르거나 맥주를 두 잔 나르거나 혹은 맥주를 세 잔 나르는 덤으로 안주를 나르는. 누군가 공연을 했지만 짜증만 났다. 사람들이 공연 안 보인다고 해서 행사장을 가로질러가지 못하고 돌아서 서빙 해야만 했으니까. 좁은 공간을 내 둔한 몸을 움직여 가며 서빙하는 건 곰이 불을 뛰어넘고 자전거를 타는 서커스와 비슷했다.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은게 기적이다.

중간에 모리님이 사온 김밥을 좀비처럼 쳐묵쳐묵하고 (몰래 하나 더 먹었다!) 한가한 틈(내가 보기에)을 타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거 구경하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후원의 밤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왜 구매중지 사인을 안하는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주사가 고맙게도 구매중지 사인을 내려줬고 손님들은 아쉬워하며, 난 즐거워하며 후원의 밤이 마무리 되었다. 그 후 이주사는 지친 스텝들에게 강제 휴식명령을 내렸고 난 다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가을이었던 것이다. 청량한 온도 속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주차방지턱에 앉아서 졸았다. 나쁘지 않은 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