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부터 웹진 <확성기> 코너를 통해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8월 회원이야기에 이어 9월 활동이야기, 10월 마지막으로 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때로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 시리즈가 독자 여러분께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인련을 잘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 이런 단체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모든 면이 완벽하고 완성된 단체가 아니기에 10년 후 이 글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 지 벌써부터 설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멈춰 서 있거나 후퇴되지 않고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어쩌면 이 글은 동인련에게 용기와 희망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인련의 모든 면을 보여 준 이야기 모음은 아니지만. 2008년을 살아가는 동인련의 현재가 그대로 녹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내년엔 우리 모두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것처럼 동인련도 더 나은 발전을 할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니?" 우리는 어쩌면 평생 원하는 일.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 자기 생일 케이크 앞에서. 추석에 뜬 보름달을 보면서도 소원을 빌어보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 소원마저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 수다. 우리들이 말하는 꿈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사회적 지위와 현재의 위치에 따라서도 다르다. 한 끼 밥을 겨우 먹으며 연명하며 살아가는 노숙자들은 편안한 식탁을 꿈꾸기도 하고 월급쟁이 직장인들은 한푼 두푼 모은 적금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꿈을 꾼다. 졸업을 앞 둔 학생들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을, 수능을 앞 둔 고등학생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란다. 나이가 들 때마다 갖게 되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꿈으로서 달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은 그 꿈마저도 뺏기 바쁘다. 경쟁과 이윤 앞에서 꿈도 서열화 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장, 대학을 가는 것. 그 공간마저 위태할 때는 또 다른 차선책을 찾아 선택해야 한다.
꿈을 꿀 수 없는 세상
경제가 어려운 요즘. 경제대통령을 자처한 이의 오만 방자한 행동에도 분노할 시간이 없을 만큼 한국사회는 좌절에 빠져있다. 퇴직금을 몰래 주식에 투자한 과장님. 결혼하기 위해 매월 모아 둔 펀드기금이 반 토막 난 대리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회사원들의 풍경이다. 이윤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짜증나는데, 적금대신 부었던 펀드마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노동자들의 푸념이 여기 저기 들린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노동자들 역시 최악의 경제 상황을 비켜갈 수 없다. 펀드나 주식으로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게이, 레즈비언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한 비용마저 날아가 버린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꿈은 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거나 사치일지 모른다. 서열화 된 꿈마저, 경제위기 속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꿈꿔왔던 삶을 그대로 밟으며 살아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 꿈이 있었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고 말한다. 뉴스만 나오면 다른 곳을 돌려버린다는 사람들이 이제는 그 꿈마저 원치 않게 접고 있다. 세상 모두를 원망해 벌이는 묻지마 범죄와 자살은 이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여겨지게 될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1996년 경제위기와 다르게 당시 히트를 쳤던 금모으기 운동도 정치권에 대한 깊은 냉소로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책임이 내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쥐고 흔드는 1%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임금동결로 희생을 강요해 왔던 것들이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바닥이 어딘지 모른 채 하향곡선을 그리는 경제 위기 앞에서는 그 위기를 왜 나와 같은 서민들이 지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반토막 난 우리들의 꿈들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돈, 경제, 이윤에 집착된 꿈들은 대안적인 꿈들로 옮겨져야 한다.
너의 꿈을 더해봐!
회원, 후원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도 한계가 있다 보니 솔직히 동인련은 안정적인 활동을 유지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안정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회원들이 순수하게 회비만 내는 존재로 그친다면 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단체 활동은 활동가 몇 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인련의 아주 작은 꿈이라고 한다면 바로 안정적인 사무 공간 확보와 회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근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동인련이 준비하거나 시도하고 있는 회원모임(청소년, 에이즈감염인 모임 등)들이 더 많은 성소수자들의 꿈을 모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고 있다.
기억나는 동인련 회원들의 꿈을 잠시 나열해 볼까. 먼저 나를 포함해 동인련 회원들 역시 지금의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기에 매우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쉽게 다른 꿈을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좀 더 안정적인 노동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면.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꿈 역시 동인련 회원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덧붙여 성소수자로서 갖게 되는 꿈들이 존재한다. 트랜스젠더, 성전환자로서 살아가는 회원들은 쉽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다보니 주민등록번호를 쉽게 공개하지 않은 일을 하며 산다. 이들에겐 주민번호를 바꾸고 호적정정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에이즈 감염인 회원들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건강을 유지하며 일을 하고 싶은 꿈이 있고, 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군 입대를 앞둔 회원들은 안전하게 졸업하거나 전역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파트너가 있는 회원들은 안정적인 삶과 파트너와 손잡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 하고 솔로인 회원들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고 싶은 최우선의 꿈이 존재한다. 공동체를 꿈꾸는 회원들은 맘 맞는 회원들과 지역과 건물을 선택해가며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삶 속에서 다른 꿈을 살며 산다. 쉽게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회원 말 걸기를 통해 서로의 꿈에 드나들고 있다. 누구 하나 소외받지 않고 모든 꿈들이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꿈이 더해지길 바란다. 이것은 1+1처럼 꿈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꿈들과 당신의 꿈 모두 이룰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단축되는 것이고 개개인의 희생마저 줄일 수 있다. 아직 우리 꿈을 이루기에 많은 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들의 존재조차 쉽게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 꿈을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면 지금 이 순간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아닐 것이다.
올 한해도 깊은 시름을 안고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은 지도 오래, 이제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어떻게 하나 하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올 초에 세웠던 계획들이 얼마나 지켜졌나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열어보기도 하고. 올 연말에는 애인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야 하는데. 하며 열심히 파트너를 찾기도 한다. 내년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불확실한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더욱 그렇다. 성소수자로서의 나의 삶은 과연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나의 주머니 사정은 어떻게 변할까. 이제부터라도 너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꿈을 더해, 더해가고 또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을 함께 나눈다면 형체조차 없었던 그 꿈들이 조금씩 자기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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