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의 열 번째 제문을 불태우며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무덤덤해지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굳이 거슬러
어느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아직 나눌 이야기가 더 남은 탓이겠지요.
떠난 이가, 떠나면서 그가 이 세상에서 꿈꾸던 행복과 희망을
그리고 삶에 대한 너무 큰 미련까지 모두 우리의 몫으로 남겨둔 까닭이겠죠.
누군가의 죽음을, 남겨진 메세지를 집단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떠난 이의 힘이 아니라 기억하려는 바로 그 집단의 힘이기에
우리는, 더 많은 우리를 모아 함께 제문을 태우려합니다.
지금 그와 함께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이 기억과 추모의 힘으로
이미 그와 같은 이유로 세상을 스스로 떠난 모든 이들이 기꺼이
다시 돌아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 한 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올 봄은 유난히 일교차가 심합니다.
그럼에도 긴긴 겨울을 딛고 이곳저곳에서는 봄꽃망울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10년이 되도록 우리들이 차가운 겨울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10년은 무지개 꽃망울을 활짝 피워내기 위해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서로를 보듬어온 세월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육우당을 보내야했던 상처가 아직은 아물지 않았지만,
그런 가슴가슴들이 모여 육우당을 기리며,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를 통해
무지개 봄꽃 꽃망울은 힘을 얻을 것 입니다.
‘창녀와 앉은뱅이에게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이라 노래했던 육우당은 오늘 우리 안에 부활하여
무지개 세상을 위한 더욱 힘찬 날개짓이 필요한 때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러니, 함께 모입시다.
- 임보라(섬돌 향린교회 목사)
봄날이다.
꽃샘추위가 그렇게 늦게까지 기승을 부렸어도 봄날이다.
10년 전 4월25일 봄꽃이 만개하여 축제를 벌였을 그 봄날에 열아홉 살 육우당은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육우당의 자살은 봄바람에 날리는 여린 꽃잎을 칼날로 베어버린 비극적 죽음이었다. 그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에서 처음 본 것 같고, 동인련 사무실에서 신입회원이라며 소개를 받았었다. 그때 열아홉이란 나이가 마음에 와 닿았었다. 남과 다른 성정체성이 세상에서 배제되는 내 열아홉과 육우당의 열아홉이 별반 다를 게 없기에 열아홉이란 나이가 애처로웠다. 저 아이도 상처받고 쓰라려 할 텐 데, 앳되고 여려 보이는 인상이 기억난다.
육우당은 유서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천주교를 사랑한다고 썼다. 하느님을 사랑한 그 아이에게 한기총은 칼날을 휘두르고도 10년이 된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혐오의 날을 더욱 세우고 있다.
나는 한기총에는 하느님이 없다고 단언한다. 내가 세례 받을 때 성서를 가르쳐 준 수사님에게 그렇게 배웠다. “하느님은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성당에 있지 않아, 사람들이 외면하는 에이즈 감염인 쉼터 같은 곳에 있어” 하느님은 배부르고 권력을 가진 자 곁에 있지 않고, 가난하고 핍박 받는 자 곁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 육우당은 하느님 곁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얼마나 더 상처받고. 얼마나 더 피눈물을 흘려야 화사한 봄날을 아름답게 바라 볼 수 있을까. 피눈물을 흘려야할 자는 ‘한기총’이다.
여린 꽃잎을 지켜줄 고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이 되어주세요. 견디고 이겨내어 다시 또 봄을 맞을 수 있도록.
- 윤 가브리엘(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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