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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

있다가 빼는 건 그냥 차별이 맞잖아!

by 행성인 2013. 4. 19.

덕현 (동성애자인권연대) 



자주 반복되는 학생인권조례 레퍼토리

 

1. 지역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고 한다.

 

2. 조례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차별하면 안된다며 여러 가지 항목을 나열하고 있다. 성별, 종교, 인종, 나이 등이 차별금지사유 항목으로 들어가 있는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도 포함되어 있다.





3. 추진소식을 들은 보수단체들이 이거 빼라고, 학생인권조례 만들면 안 된다고 난리를 친다. 기자회견하고 의원들에게 전화하고 게시판을 도배한다.




 

4. 그러면 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기 위해 성적지향, 임신출산 조항을 빼려고 한다.

 

5. 이러면 내가 화난다.

 

이런 과정은 참 여러번 벌어졌다. 서울에서도 그랬고 전북, 강원에서도 그랬다. 다행히 서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빼려는 시도에 항의해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이 포함된 원안으로 통과되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쉽지 않다. 지금은 서울에서조차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다고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이 갑자기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성적지향이 포함되어 통과된 경기도 같은 경우도 학생인권조례를 실행하는 단계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고는 한다.

 

“그래도 있다가 빼는 건 너무 하잖아. 그게 차별이잖아. 대놓고 너희는 차별받아도 된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그건 아니잖아.”

 

원래 없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있다가 빼는 건 정말 열 받는다. 임신출산, 성적지향 빼라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과 같은 데랑 대화는 불가능한 것 같다. 잘해봤자 동성애자를 불쌍한 죄인, 혹은 병자로 취급하는데 무슨 말을 같이 하겠는가. 그들도 우리랑 대화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학생인권조례 저지, 차별금지법 반대, 이런 것에 관심이 더 많다.

문제는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황당하더라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거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에서 매번 동성애 관련 내용들은 빠지거나 빠질려고 한다. 아무도 뭐라고 안하면 그냥 빼버린다.

 

전북에 가 교육위원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성적 지향은 빼면 안 되는 거죠?” 우리에게 물어봤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의원들조차도 다른 반대의견은 뭐라고 반박할 수 있는데, 성소수자 관련 내용은 자신에게 반박할 논리도 정보도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은 너무 쉽게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측과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거다.

 

현실이 개떡 같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개떡 같은지는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때 학생인권조례를 찬성하는 측에서도 처음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항목을 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인권조례의 개정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고 이걸 잘 살리면 반대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 서울시의회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감격스러웠다. 그리 쉽게 바뀌는 건 없다. 다만 싸움이라도 좀 붙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되면 좋겠다. 은근슬쩍 빠지는 것은 너무 싫다. 전북에서도 강원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도. “여기 있다”는 거라도 확실히 드러나면 좋겠다.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해야 한다. 서울 말고 다른 지역에도 성소수자들은 살고 있고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말만 많구나.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같이 고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