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샘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안녕, 십대 성소수자 친구들아!
편지 인사말을 쓰면서 너희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게이 친구들아’라고 썼다가 ‘학교에는 게이 십대들만 있는 건 아닐 텐데...’라는 생각에 결국 그냥 ‘십대 성소수자 친구들아’라고 부르게 되었네. 사실 너희들에게도 이름이 있을 테고 학교에서 만났다면 ‘십대 성소수자 친구야!’가 아닌 ‘○○야!’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텐데 말이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 나도 Gay교사가 아닌 ‘담탱이’이나 “○○선생님”으로 불렸겠지.
존재와 호칭이란 참 묘하지. 사람을 언어에 비유한다면 누구나 대명사가 아니라 각자가 고유명사로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일 텐데 우리는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각자의 이름이 아닌 ‘성소수자’ 학생이거나 교사로 불릴 수밖에 없는 처지인 거 같다.
학교라는 공간은 너희들이나 내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생활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은 공간인 거 같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넓어진 편이고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편이긴 하지.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이제 성소수자들도 다수인 이성애자들과 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겠고, 겨우 사회적 소수자로서 누구나 가질 보편적 인권을 가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하다고 봐. 그리고 이런 기초적인 인식조차도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 여전히 누군가에게 우리에 대해 말할 때 성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고 편견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눈치보고 노력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 사회가 지닌 관계 맺음의 방식이 우리 같은 소수자들을 참 피곤하게 할 때가 있어. 시시콜콜한 개인정보들을 나누며 서로간의 친밀감을 표시하는 자리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은 필수고, 연령마다 그 나이에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과 일반적인 삶의 패턴이 대화의 주요 화두가 되지. 20대와 30대 초반에는 연애와 결혼이야기가 대화의 중심이겠고, 30대 중후반과 40대에는 육아와 재테크 같은 이슈가 대부분이지. 이런 이성애 중심의 대화에서 미혼이거나 비혼들이 겪는 불편함도 있겠지만 특히 뭐라 그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성소수자들의 경우에는 때로는 원치 않는 거짓말을 하게 되기도 한단다. 이럴 때 그냥 평범한 이성애자로 살았으면 하고 바랄 때가 가끔 있지만 우리의 불편함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협과 배제 때문에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 좀 화가 나기도 해. 사실 그들이 그들 맘대로 정해놓은 ‘정상성’의 범주에 자꾸 모든 사람들을 끼워 맞추려는 것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참여하는 자리에서 겪는 그런 불편함들 때문에 왠만하면 커밍아웃을 하는 편이야. 교사로서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는 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시기상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맨날 시기상조라고 생각만 하면 그런 때가 영원히 안 올 거 같더라구.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이라면, 그리고 그들도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다면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쯤은(?) 받아들이고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사실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직 주변에 커밍아웃한 것으로 인해 내가 특별히 고통 받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서 일지도 몰라. 내가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그건 나에게는 행운인 거고. 무엇보다도 내가 주변에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운이 좋은 거겠지. 그런 말이 있잖아 “당신 주변에 누군가에 커밍아웃한 사람이 없다면 그건 당신이 커밍아웃할만한 좋은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 나는 이 말에 200%쯤 공감해 주고 싶어. 만약 너희들이 주변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너희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문제라는 거지. 물론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내가 주변에 커밍아웃을 한 가족이나 친구들, 선후배들, 심지어 동료 교사나 학부모들이 모두 나에게 우호적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어떻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지할 수 있겠어. 하지만 최소한 내 앞에서 내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예의를 지켜주니 그 정도가 어디야. 그리고 사실 나는 나를 알고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거라고 믿고 있어. 그들이 나를 멀리한다면 이미 우리는 친구가 아닐 테니까. 최근 내가 커밍아웃 후에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감동했던 말은 어떤 학생의 학부모가 “내 아이가 크면 선생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밭을 만들어 놓을게요.”라던 말이었어. 더군다나 그 학생의 아버지 직업은 목사였단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인 우리가 만난다고 해도 사실 서로 성소수자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크겠지. 성소수자로서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갈텐데 서로 존재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니 약간 서운하기도 하네. 만약 성소수자가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나비족처럼 파란 피부를 가졌다면 그만큼 차별도 노골적으로 받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더 유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그렇다면 서로에게 조금 더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텐데.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용기와 힘은 우리와 같은 약자들과 연대하면서 생기는 거 같아. 처음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다시 성소수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근데 살아가다보니 내가 성소수자여서 가질 수 있는 약자로서의 감성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그냥 우리 사회의 보통 남성으로 살았다면 나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는 꼰대밖에 더 되었겠나 싶은 거지. 그래, 난 다시 태어나더라도 지금처럼 당당한 성소수자로 살고 싶어. 너희들도 스스로의 존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과 함께 사회적인 편견과 불의에 맞선다면 그런 사회가 아주 멀리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얻게 되는 우리의 친구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싸워 줄 거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성소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다 보면 때로 우리를 공격하는 적들도 생기겠지만 좋은 친구들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란다.
지금 당장, 성소수자 교사와 학생인 우리가 학교 전부를 바꿀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그 속에서 기죽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걸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세상을 바꿀 이유가 되니까. 혹시 학교라는 공간속에서 나 혼자만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면 조금만 주위를 돌아봐.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인권을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네가 먼저 손 내민다면 그들이 모두 우리의 친구들이 될 수 있어.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 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아가기에는 많은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야. 이성애자들만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 교과서에서는 우리에 대해 잘 알려주지 않는단다.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찾아나서야 하는 거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사회단체와 인권단체들, 그리고 성소수자 단체들이 너희와 함께 하려고 한단다.
더 이상 성소수자임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될 때까지는 우리는 여전히 특별한 성소수자 교사, 학생으로 살아가겠지만 결국 그런 특별함이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누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서로 의지하며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말과 지식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가르치는 존재라고 생각해. 나는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면서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삶’의 다양한 목록 중 하나라고 말해주고 싶어.
학교에서 우리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지라도 너희들이 있어 나도 용기를 얻고, 내가 있어 너희들에게도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리 신나는 성소수자 퍼레이드에서 당당하게 만날 그날까지 잘 견뎌보자. 파이팅~!!
2013년 7월 방학을 앞둔 어느 날
Gay교사가 자랑스러운 LGBTAIQ친구들에게 보낸다.
* 이 편지는 무지개행동 <이반스쿨>팀의 "모교에 보내는 편지" 프로젝트의 답장으로 온 편지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성소수자들이 직접 작성한 "모교에 보내는 편지"들과 선생님들이 보낸 답장은 <이반스쿨>팀의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ivanschool)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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