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레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


지난 8월 15일, 청소년 성소수자 여름도시캠프 얼음땡에 다녀왔습니다. 신청하기 전에 할까 말까 고민을 무지 많이 했는데, 시기가 시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음날이 개학이라 망설여지더군요. 고민하는 동안 작년에 참가했던(그때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던) 얼음땡 캠프 생각이 나면서 그때 만났던 분들이나 얼음땡의 분위기가 그리워졌어요. 얼음땡은 제가 처음 참가한 퀴어 행사여서 제 안에서 특별한 의미예요. 퀴어 분들이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죠. 이런저런 신났던 기억들이 나면서 올해 얼음땡이 기대되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떤 분들이 오셨나 궁금하기도 해서 신청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신청을 하고 올해 얼음땡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첫 프로그램은 점심시간 겸 자기소개 ‘내/네 고민은 이것’으로 시작했지만 저는 개인사정으로 늦어서 그 다음 프로그램, ‘우리가 만드는 LGBT 뉴스’부터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ㅠㅠ ‘우리가 만드는 LGBT 뉴스’ 프로그램은 조별로 진행이 되었고 각 조별로 LGBT 뉴스가 담긴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인권조례에서부터 동성결혼, 가십기사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은 건 퀴어 성향이 분홍색 반점으로 피부에 드러난다는 창작 기사였습니다. 신문에 있는 결혼 정보회사 광고를 패러디해서 동성결혼 정보회사 광고를 만들어 놓은 것도 좋았어요. 조금만 일찍 정신 차리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 때 정신을 완전 놓고 있어서 이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난다는 게 안타깝네요.


넉넉한 휴식시간을 가진 뒤에 ‘퀴어 프렌들리한 사회의 나’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어요. 조별로 퀴어 프렌들리한 마을을 만들어서 각자 마을에 만들고 싶은 시설을 만들고  큰 종이에 잡지를 자르거나 그림을 그려서 꾸몄어요. 이런저런 사진을 찾는다고 잡지를 뒤적이기도 하고 색연필이나 사인펜을 오랜만에 잡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각 조별로 앞에 나와서 발표했을 때는 다양한 시설이 소개되었어요. 학교나 도서관, 아카이브 같은 공공시설과 함께 술이 나오는 분수나 24시간 클럽 같은 마을의 핫플레이스(!)들도 등장해서 큰 웃음 줬어요. 거기에 호모포비아 치료소, 최초의 게이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이나 퀴어 운동을 상징하는 공원 등은 언젠가 꼭 생겼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에는 여러 조에서 그렸던 그림들을 한 데 합쳐서 하나의 사회를 만들었어요. 다소 괴상한 조합인데도 즐거운 사회가 나온 건 우리가 퀴어한 사람들이라 그렇겠죠.:)

 


사이에 저녁을 먹고 제가 제일 기대하고 있던 프로그램을 맞았습니다.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사람책 프로그램’이에요. 사람책은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곧 한 권의 책이 되어 서너명의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번에 준비되었던 사람책 주제는 총 여섯 가지였고 한 가지 주제에만 인원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신청서를 쓸 때 1지망, 2지망으로 나눠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주제는 군대, 장기 연애, 트랜스젠더, 관계, 다산 콜센터, 직장으로 여섯 가지였어요. 제가 선택했던 주제인 관계에서는 사람책 한 분과 저를 포함한 네 명의 독자 분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관계라는 주제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봤을 때는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광범위해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을 수도 있는데도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직장생활에서 맺는, 소위 ‘공적인’ 인간관계와 ‘이쪽’ 인간관계의 분리나 직장에서의 커밍아웃, 가족문제, 연애 없이 사람들과 관계 맺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중에는 1, 2인 가구 여럿이 모여서 소규모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각 방에 비상벨을 설치해서 이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벨을 누르면 저쪽에서 달려와 주는 시스템에 대해서도요. 대안가족을 이루거나 큰 집을 쉐어하는 것도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 중 하나겠지요.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웠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프로그램 마감 후에 짧게 각 주제별로 두 분씩 후기를 발표하고, 올해의 얼음땡을 파했습니다. 물론 뒤에는 뒷풀이 행사가 짧게 있었어요.;>


프로그램이 빡빡하게 짜여서 시간이 급박한 것도 아니었는데 시간이 뭐 그렇게 빨리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즐거웠습니다.;v; 얼음땡 행사의 좋은 점은 서로 얘기할 시간을 많이 주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색하지 않게, 한 분이라도 소외되지 않게 노력한다는 점에서 편했고, 배려 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이런저런 먹을 것도 많았고 밥도 맛있었습니다. 오오 역시 풍요의 상징 얼음땡!


즐거운 시간 보내게 해주신 주최팀에게 감사드리고요. 음악 틀어주신 분, 행사 진행하는 동안 일관된 취향 보여주셨던 선곡센스 좋았습니다! 행사에서 만났던 분들도 다시 생각나네요. 다음 행사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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