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얼마 전, “조카”라고 불러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났다. 3년 전 큰누나가 날 집에 아웃팅 시킨 후, 내 정체성과 관련해 갈등이 일고 험한 말이 오가자 그녀는 날 자기 뱃속에 든 첫째 “조카”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사람으로 몰았다. 당연하게도 그 이후로는 누나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고, 때문에 난 “조카”라는 애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고 있는 참에 “조카”가 한 명 더 태어났다면서 아빠가 보내 준 아기의 사진은 여전히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며칠을 보냈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아빠가 짓는다고 했다. 최근에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생애사 연구를 한 나는, 아이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으니 나중에 트랜스젠더인 걸 알게 되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갖고 있던 이름은 안 바꿔도 되도록 중성적인 이름으로 짓는 게 좋다고 했다. 아빠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 보니, 아빠가 큰누나 부부에게 제시한 이름 두 개는 조금 중성적인 이름 하나와 완전히 사내아이의 이름 하나였는데(아기는 고추를 달고 태어났다), 큰누나 부부는 후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빠에게 ‘아이가 트랜스젠더일 가능성'에 대해 누나에게 전하긴 했냐고 묻자, 아빠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의 윌리엄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0명 중 한 명은 트랜스젠더로 태어난다고 한다. 500명 중 한 명. 퍼센트로 따지면 0.2%밖에 안 되는 숫자고, 나중에 가서 개명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이름 지을 땐 무시할 수도 있는 숫자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숫자가 아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에 정말 안타까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아기 엄마가 분유에 안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아기에게 생과일쥬스만 먹이다 결국 영양이 부족해져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이란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서라면 맹모백천지교도 할 기세다. 영어 조기교육은 언제부터 해야 하는지, 어떤 학원이 좋은지, 어학연수는 갔다 와야 하는지, 과외는 몇 개나 받아야 할지, 교대/사범대에 가면 정말 시집을 잘 보낼 수 있는지 전전긍긍한다. 보내야 할 학원을 몰라서 안 보내고 있을까봐, 다른 애들 다 하는 과외를 우리 애는 안 하고 있는 것일까봐, 하나라도 놓치면 부모로서 낙제점을 받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자식이 대학 못 가는 게 마치 자기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고생하는 한국 부모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괜찮다. 당신이 뭘 하든 당신은 이미 부모로서 낙제다.
좀 쉽게 말해주자면,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적어도 다음의 조건들 중 몇 가지는 만족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트랜스젠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이의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었거나,
성별중립적인 장난감만을 사줬거나(혹은 바비 인형과 로봇을 두고 아이에게 직접 고르게 했거나),
내복으로 파란색이나 분홍색을 사주기 전에 아이에게 어떤 색이 좋은지 물어봤거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남녀구별을 할 때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는지 물어봤거나,
여성스럽게, 남자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혼내지 않았거나, 같은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 받을 때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거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자기 몸의 변화에 대해 큰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지 물어봤거나, 혹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진 않는지 물어봤거나,
TV에 홍석천, 하리수, 김조광수 등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나왔을 때 아이에게 분명하게 “엄마 아빠는 너가 성소수자여도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라고 말했거나,
‘자녀가 성소수자일 경우 부모가 해야 할/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찾아보거나,
만약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이의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 작은 도움이나마 보태고 있거나.
난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이고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나도 어릴 땐 “여성스럽게” 행동한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고, 누나와 바비인형도 갖고 놀았다. 하지만 내가 바비인형을 갖고 놀고, 엄마 옷을 입으며 누나와 여장을 하고 노는 건 숨겨야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야 했지만, 부모님은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계속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고쳐야만 하는 것이었고, 나는 결국 어릴 적의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절된 것이 아닌 연속된 스펙트럼으로 이해한다면, 어릴 적 나는 100% 남성도, 100% 여성도 아닌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내 젠더/섹슈얼리티는 억지로 남성 쪽으로 조금 더 견인되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그게 문제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분명 좋은 점도 있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지 않았고, 별명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데 별 문제가 없었고, 스스로 잘 적응한 자신에 대해 뿌듯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내가 이렇게 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내 부모님은 이런 좋은 점들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다음에 자식을 키우게 되면 아이의 원래 모습을 해치면서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바꿔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게 내가 믿는 양육의 철학이다. 학교 공부를 좀 못해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뭔가가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만약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세상의 틀에 맞추려고 하면 찾아가서 싸울 각오도 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를 여성적/남성적이라는 젠더 규범과 섹슈얼리티 규범에 끼워 맞추려는 생각에도 반대한다. 그건 마치 아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모 손으로 아이의 살을 잘라내고 뼈를 깎아내는 것과 같다.
올해부터 독일에서 태어난 아기는 출생증명서에 성별을 ‘공란’으로 비워둘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고추를 달고 태어났더라도 나중에 스스로 여자라고 느낀다면 이후에 여성으로 등록할 수 있는 것이다(물론 한국처럼 태어날 때부터 주민등록번호에 1 혹은 2, 3 혹은 4 같은 성별을 의미하는 숫자가 표시되는 쓸데없는 제도가 없으니 가능한 이야기다). 스웨덴에서는 이제 법으로 유치원에서 ‘그(He, His, Him)’ 또는 ‘그녀(She, Her)’등 성별을 내포하는 호칭을 쓸 수 없게 됐고, 영국의 백화점 ‘Marks and Spencer’에서는 내년 봄부터 젠더중립적(gender neutral)인 장난감(바비 인형이나 로봇처럼 남녀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성별 구분을 암시하지 않는 장난감)만 팔 것이라고 한다. 한국 부모들이 자식이 무슨 대학 갈지만 걱정하는 동안, 다른 나라의 부모들은 아이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치마를 입는다고 아들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아빠가 같이 치마 입고 옆에서 걸어주기. |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딸에게 인형과 자동차를 동시에 사줬더니 일어난 일. |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비순응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캠프에서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 아이. |
사람들은 동성커플이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곤 한다. 동성애자를 잠재적인 성폭행범으로 보면서 아이를 강간할 것이라느니 뭐니 하는 멍청이들의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엄마 없이 자란 아이, 혹은 아빠 없이 자란 아이가 잘 자랄 수 있겠냐는 주장이 남는다.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 아이들은 너희 이성애자들이 하룻밤 쾌락으로 만들어 놓곤 무책임하게 고아원에 보내버려서(물론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만히 두면 엄마고 아빠고 아무것도 없이 자랄 아이들이라는 점이지만, 좀 더 교양 있게 반박하자면, 성소수자들은 부모의 실패한 양육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식을 훨씬 잘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적어도 내 할 말 하기 전에 자식 말 먼저 들어줄 순 있고, 내 잣대에 맞춰 자식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식의 머릿속까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가 키우는 아이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법을 알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내 아이는 적어도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여도 부모님과 가족에게 버림받을 걱정을 하진 않을 것이고, 자기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가족에게 나쁜 말을 듣고 상처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누가 더 행복하고 좋은 아이로 자랄 것인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누가 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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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트랜스젠더인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미국의 아버지가 쓴 글이다.
“많은 부모들은, 통계적으로 대부분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될 것이 뻔한 젠더 크리에이티브(gender-creative)한 아들을 잘 키우지 못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들의 아이를 위해 내가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난 15년 넘게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다. 형사로 일했고, 지금은 신입 경찰들을 거리에서 훈련시키는 고위직 경찰관이다. 그 전에는 소방관이었다. 그 전에는 대학에서 야구를,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미식축구를 했는데, 2학년 땐 학교 대표로 뛰기도 했다. 난 맥주, 구식 트럭, 펑크 음악, 오토바이 타기, 친구들과 게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전형적인 ‘남자 중의 남자’이고, 매우 남성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내 아들이 드레스를 입는다는 걸 알았을 때 매우 놀라곤 한다. 구두를 신기도 하고, 화장을 하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땐 더욱. 사람들은 내가 이에 대해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땐 더 많이 놀라곤 한다. 나는 지금 내 아들이 바뀌길 전혀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아들이 만약 남자 애들의 장난감이나 남자 옷을 입기를 원한다면, 그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족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미식축구와 야구 감독이었고, 어머니는 전문 서퍼(surfer)였다. 남자 형제도 한 명 있었다. 자라면서 우리 집에서 동성애나 젠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기억이 없다.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무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는 둘 다 이성애자였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 부모님의 친구들 모두 이성애자인 것 같았다. 그냥 그런 것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그녀는 자신의 남자 형제를 소개시켜 줬다. 그는 내 평생 처음 만난 오픈리(공개적으로 커밍아웃 하고 생활하는) 게이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와 잠자리를 갖는지는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의 여자 형제가 섹시하다는 것이었다. 난 그 사실에 집중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거나 소방관과 경찰로 일하면서 난 라커룸이나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동성애 혐오적인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Faggot. Queer. Gay. Homo. Cocksucker. 처남을 만난 이후, 난 그런 말들을 더 많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 후 내게 자신이 여자 아이들이 가질 법한 물건들이 좋고, 여자 아이처럼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들이 생기자, 이 욕들이 날 거슬리게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을 불러낸다.
“이봐, 그냥 농담한거야. 장난인 줄 알면서 왜 그래. 문제가 뭐야?”
이런 게 내가 듣는 대답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당신이 그런 말을 누군가를 폄하하거나 우위에 올라설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당신은 게이나 여성적인 사람이 ‘열등’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난 당신이 내 아들이나 그와 같은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 처럼 느낀다. 난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사전부터 하나 사라. 사서 새로운 단어를 배워라.
난 내가 일하는 경찰서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니진 않는다. 그건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고, 그들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난 그들이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내 등 뒤에서 뭐라고 하고 다닐지 신뢰하지 않는다. 내 아들처럼 멋지고 특별한 아이에 대해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들은 안다. 그들은 날 엿 먹이지 않기 때문에 절친한 친구들이다. 그들은 내 아들이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내 아들이 행복하고 건강한지, 내가 좋은 아빠인지만 신경 쓸 뿐이다.
가끔 친한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도 있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야? 난 그렇게 못해. 적어도 내 집에서는.”하고 그들은 말했다.
대체 그게 다 무슨 말인가? 내 아들 같은 애는 키울 수 없다고? 아이를 처음으로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 “남자로 만들어 주겠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하는 당신은 전혀 남자답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대화를 피하며 화제를 바꾸려고 한다. 난 이런 논쟁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많은 이들은 나와 이야기하려고도, 그들의 입장을 설명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다르고, 표적이 되어 상처받기 쉬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서의 의무이다. 나는 맥가이버 칼을 좋아하고, 축구를 하고, 더러운 농담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을 좋아하기 시작한 첫째 아들과 똑같이 내 둘째 아이를 사랑한다.
나는 아버지다. 나는 아무런 연줄도, 주의 사항도, 조건도 없는 직업에 서명한 것이다. 난 디즈니의 모든 공주들과 그 공주들이 나오는 만화를 외울 수 있다. 난 아들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줬고, 아들이 학교에서 그것 때문에 놀림을 당할까봐 무서워하자 재빨리 지워주기도 했다. 난 지우기 싫었다. 그저 아들을 따라다니며 내 아이를 놀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싶었다. 손톱을 지운 이유는 아들이 공황 발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의 결정이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좀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언제나. 아무런 불만 없이.
내 아내는 마음 속엔 소녀가 있는 우리 아들을 키우는 이야기로 블로그(링크)를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아내는 우리 아이와 같은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C.J.를 “젠더 크리에이티브(gender creative)”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한 “젠더 비순응(gender non-conforming)” 혹은 “젠더 불쾌감(gender dysphoric)”이라는 단어로 부른다.
그녀가 받는 메일들 중에는 고심하는 아버지들이 보낸 것도 있다. 난 그런 편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그 상황에 있어봤고, 나도 고심했다. 아주 많이. 하지만 난 또한 발전하기도 했다. 아주 많이.
그녀는 아버지들이 여성적인 아들을 감당하지 못해서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의 메일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받는다. 정말 화가 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통계적으로 이야기해서 어른이 되어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될 것이 뻔한, 젠더 크리에이티브한 아들을 기르다가 결혼 생활이 붕괴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아버지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주고 싶다.
내 아내는 또한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는 메일도 엄청 많이 받는다. 마치 내가 아들이 여자같이 행동하는 걸 보고 있지 못하기라도 한다는 식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내 아들 옆에서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싶지 바꾸고 싶은 게 아니다. 내게, 아들이 드레스를 입고 깡총깡총 뛰거나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그 아이의 삶에서 강하고 남성적인 롤모델이 결여된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강하고 남성적인 그 사람이 아이를 완전히 감싸서 아이가 태어난 대로 자랄 수 있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상남자”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내 아들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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