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군 복무 할 때 부모님과 교환한 편지를 보여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10년 넘게 꺼내 보지 않았고 감독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절대 꺼내 보지 않았을 편지였기 때문에 처음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숨기고 싶었던 기억들이 나를 힘들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감독에게 지나간 세월만큼 먼지가 쌓여진 편지 묶음을 전달했다. 10년 만에 봉인에서 해제된 이 편지는 갈 길을 잃다, 30살을 넘긴 나에게 이제 서야 막 도착했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정신병동에 약 2개월 정도 입원해있었다. 병원에서의 특별한 처방은 없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신경안정제 약을 먹어야 했고 밤이 되면 독방에서 자야했다. 수치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견뎌보고자 했다. 하지만 나를 담당한 군의관은 부모님께 병원에서의 나의 상황을 상세히도 설명했다. 원하지 않았던 커밍아웃은 병원에 한걸음에 달려온 부모님 앞에서 나를 별 볼일 없는 불효자로 만들어버렸다. 면회시간은 매주 화요일 30분간 주어졌다. 칸막이가 없어 옆 사람이 가족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를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어야 했다. 부모님은 면회시간에도 주변 사람들이 들을까 무서워 나에게 속삭이듯 다그쳤고, 울음도 몰래 삼켜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병원에서 부모님과 교환한 편지들은 지금도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래서 부모님과 오고 간 편지에는 서로에게 하지 못한. 하지만 해야 하는 솔직한 감정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특히 서로의 가치관이 변했으면 하는 바램들이 말이다
2000년 군 전역을 앞두고 부대 쓰레기장 앞에서 나는 나만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끔찍이도 싫어했던 군생활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동기들과 찍었던 사진들. 내가 읽었던 책들. 서로 교환했던 편지들까지 군대에서 내가 만지고 사용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태웠다. 전역 당일 쇼핑백 하나만 달랑 들고 툴툴 털고 나왔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2년 동안 내가 소유했던 많은 것들을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던 것이 바로 부모님 편지와 정신병동, 임진각 철책에서 내가 작성한 일기장이다. 부모님 편지도 일기장 사이에서 지난 10년 동안 묵혀 있었다. 지금 보면 낯 뜨거울 정도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20살 나의 모습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과 교환했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당시 부모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한 못난 아들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커밍아웃한 태섭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죽을 때까지 미안하고 죄송해요’라고 한 말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가 원하는 커밍아웃을 준비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존재를 숨기기 바쁘고 거기에 익숙한 나지만, 부모님을 계속 새롭게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이해해주는 순간까지 기다리며 몇 번의 커밍아웃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편지로도 소통할 수 있고 핸드폰 문자로도 가능하다. 커피숍도 좋고, 산책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늘 커밍아웃 욕구가 불타오른다. 하지만 심지가 강하지는 못하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부모님의 편지 때문에 받았던 과거의 트라우마는 커밍아웃을 굼뜨게 만들고 있고, 부모님이 또다시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겁도 난다.
여기 소개된 2통의 편지는 군 정신병동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교환한 편지들이다. 동성애자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우리 부모님도 걱정과 함께 자녀가 바뀌시길 바라신다. 그냥 편하게 상식적으로 살기 바란다.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식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심정이 그대로 편지에 담겨있는 것 같다.
아빠는 남자라 이해를 한다고 치자. 너희 엄마는 어려서부터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빠한테 시집올 때까지 90세가 넘는 엄마의 할머니를 모시면서 생활해왔다. 어느 것 하나 아니 네가 생각 한 것 동성연애란 뜻을 전혀 모르는 엄마란다. 네가 하는 행동이 너무나 기가 막혀 여자의 몸으로서 너희들을 위해 직장 다니면서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하는데 근심과 걱정 흘리는 눈물. 너는 알아야 한다. 길은 단 한 가지 이젠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행동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군의관에게 편견을 두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을 탈피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 든다. 모든 것은 네가 알아서 행동하여라 아빠가 바빠서 면회를 할 수가 없어 미안하다. 안녕 이제는 할 말이 많다. 그동안 엄마가 하고 싶은 말 다했고 엄마가 바라는 것도 너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니 어느 곳에다 호소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해야 이 답답한 가슴이 뚫릴지 모르겠다. 엄마 생각은 최소한 병원에서 제대가 되어 진다면 하나 소원이고 둘째는 자대복귀해서 잘 참고 견뎌서 제대 하는 것 그 두 가지뿐이란다. 요사이는 그래도 몸이라도 건강하니 싶어 위안을 얻는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음일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 저기 뛰어들어 참견하고 주위사람 걱정 끼치고 자신이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고 두려움으로 고통당하고 수치심을 아는 놈이... 요즘은 대학 보낸 것에 대해 후회 아닌 후회를 하고 있다. 학교만 가지 않았어도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막금하다. 세상을 살자면 너무 많은 유혹이 따라와도 건전한 정신으로 이기며 사는 것이 사람사는 도리란다. 그런 도리를 무시한 이번 너의 처사는 엄마를 십리 낭떠러지로 밀쳐버렸고 부모를 배신한 것 같아 한참은 몸이 굳어버렸다. 밥 먹고 그렇게 할 일이 없었는지. 집안일에 아무 관심도 생각 없는 놈이 우리의 인권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얘기에 쓴 웃음까지 나오더라. 집에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수입이 반 이상으로 줄어들어 살기가 얼마나 힘들어졌는데 그리고 지하방에는 물난리까지 났단다. 엄마는 작년 한해 살아오는 게 다시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한해였고 지금도 마음 편하게 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괴로운데 너는 딴 세상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살고 있으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네가 사회로 나와 예전과 같이 행동한다면 너는 엄마를 두 번 괴롭혀 병들어 죽게 할 거라는 상념에 젖는구나. 욜이 너는 이해 못 한 편견일 거라고 얘기하겠지만 엄마는 일상적인 상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끝까지 너의 고집으로 일관한다면 차라리 엄마가 보지 못할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이 서로가 좋을 것 같구나. 인권운동도 필요없는 너 좋은 곳으로 가서 엄마씀
군에 입대한지 일 년도 되기 전에 모진 풍지풍파를 일으킨 너에게 아빠는 할 말을 잊어버렸단다. 아빠는 너를 원망하지는 않겠다. 오로지 부모가 교육을 잘 못 가르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네가 성장해 가는데 도덕과 올바른 인생 관념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바랬다. 이제껏 네가 하자는 데로 아니 관심을 갖지 않고 중학교 입학 후부터 회초리 한번 들지 않았다는 게 아빠는 후회가 많은지 모른다.
오늘은 너한테 전화가 오는 날인데 하면서 종일 생각했단다. 그런데 30분 일이 늦게 끝나 집에 달려와 보니 5분전에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 서운했다. 그래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내일은 면회를 가는데 하면서 위안을 했다.
...... 10년 만에 보는 편지도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그동안 안 보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도 10년 전 이 편지에 대한 나의 답장을 가지고 있을까? 원래는 10년 만에 부모님께 보내는 답장을 쓰려고 했는데 쓰지 못할 것 같다.
동성애자 아들을 걱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부모님의 10년 전 과거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인생은 아름다워> 태섭 부모님처럼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기다림은 나를 더 성장시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 시기가 당장 내일이길 바랄 뿐이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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