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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가족

동성애자 아들이 커밍아웃 했을 때 - 모리 아버지 인터뷰

by 행성인 2013. 7. 18.

인터뷰어: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이: 모리 아버지 (동성애자인권연대 후원회원)


자식의 성정체성에 대해 알게 된 부모들은 보통 ‘충격-부정-죄책감-감정표출-결단’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아빠가 나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이 순서로 알아보았다.


1. 충격

 

모리: 아들의 성정체성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모리 아버지: 누나가 알아와서 알려줬다.

 

모리: 처음 아들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기쁨, 안도, 슬픔, 죄책감, 불쾌함, 분노, 실망감 등)
모리 아버지: 처음엔 슬펐다. 아들이 굉장히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불쾌감,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처음엔 걱정만 했다. 일주일이나 보름 뒤에는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준 성장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것은 초반의 슬픔보다 10배 100배 강했다.

 

모리: 그 충격은 얼마나 지속됐나요.
모리 아버지: 심리적, 육체적인 충격은 며칠 만에 사라졌다. 다만 걱정과 죄책감 같은 감정은 평생갈 것 같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에게 모든 걸 주고 싶어하고 책임지고 싶어하는데, 소수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힘든 일이다. 이성애자로 돌아갈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집착/희망이 뒤섞여서 평생 갈 것 같다.


모리: 처음 아들의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리 아버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모리: 아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리 아버지: 아들은 10%정도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본다. 커밍아웃이 아니라 아웃팅이기 때문에 100%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정체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준비를 한 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정체성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리: 아들의 정체성에 대해 알기 이전에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지.
모리 아버지: 예전부터 뇌병변 장애인을 돌봐왔었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제법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별종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의 아웃팅 이후 다른 가족 구성원에 비해 빨리 적응하게 된 것에는 뇌병변 장애인을 접하면서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중요했던 것 같다.

 

모리: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땐 스스로 게이인 줄 모르기도 했고, 차별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홍석천이 엉엉 울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안됐다. ‘그냥 이야기하면 되지 왜 저렇게 질질 짜는걸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받아온 차별에 공감이 안됐던 것 같다.

모리: 혹시 이전에 아들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나요.
모리 아버지: 전혀. 어릴 때 여자 같다고 놀림 받기도 했지만, 여자 같은 건 누나가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리: 아들에게 처음 한 말은 무엇인가요.
모리 아버지: 문자를 보냈는데, “미안하다. 오늘 따라 아들이 너무 보고 싶네.”라고 보냈다.

 

모리: 아들의 성정체성을 알고 난 후 성소수자에 대해 조사해보았나요? 어디서 어떤 자료를 얻었나요?
모리 아버지: 가장 손 쉬운 건 인터넷이었고, 그 다음은 학교 도서관.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논문 검색도 해 보았다. 책과 논문을 합쳐서 500편 정도. 완전히 다 읽은 건 아니고 관련된 부분만 읽었다. 최근까지도 읽고 있다. 엄마와 누나들에게도 말했는데, 최근 캠브릿지 의대의 논문중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의 미세 구조에 관한 통계 연구가 있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뇌 구조가 다르더라는 결과였다. 500편 자료를 읽었어도 그건 다 각자의 주장일 뿐이어서, 실험적 증거가 있는 것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찾아 읽는 자료의 절반 정도는 전환치료에 대한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는 주로 동성애자 단체, 블로그, 카페 등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 전환치료가 되려면 알아야 하니까.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이 게이들의 섹스에만 주목하는 것 같아서 왜곡돼 있다는 걸 알았다. 레즈비언 사이트에서도 글을 읽어봤는데, 살아가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들에 눈물이 났다.
학교 도서관에서 정신 심리 쪽으로 동성애자, 성소수자, 게이를 검색해서 나오는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다. 책은 7권 정도 찾았는데 1967년에 나온 책도 있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은 한두 권 밖에 없었다. 책들의 내용은 역사적인 접근부터, 선천성과 후천성에 대한 것이 많았다. 전환치료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책을 우선해서 읽었다. 전환치료가 된 사례라던가. 16세기에 동성애자가 문화예술 분야에 많았고, 가족을 만들지 못하지만 예술가여서 살아갈 수 있었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

 

모리: 대화상대를 찾는 과정은 어려웠나요 쉬웠나요?
모리 아버지: 책과 논문과 인터넷 검색을 했을 뿐 별로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친한 법학과 교수들과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었는데, 학문적 성격 때문인지 예외 없이 모두 내 생각보다 활짝 열려있었다. “내 아들이 성소수자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도와줘야 하고 칭찬해줘야 한다”, “힘들고 훌륭한 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더라. ‘으아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한적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어서 대화 상대는 결국 못 찾은 셈이다.
사실 대화상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살았던 세상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세대이다.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아들이 다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인권단체나 전환치료 상담센터 같은 곳에 연락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건방지지만 어떤 정해진 솔루션도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는 정신과 의사 선생이 교과서에도 동성애에 대한 답은 나와있지 않다고 대답하더라.
모리 아버지: 하나 하고 싶은 말은, 아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 지에 대해 잘 몰랐다. 게이라는 것만 알았지 정신적, 육체적 상태에 대해 아들이 별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아쉬웠다.


2. 부정

 

모리: 아들이 게이인 걸 알게 된 후 첫 대화에서 다음 중 어떤 방식을 선택했나요.
  1) 적대감 (“내 아들은 호모가 되지 않아.”)
  2) 새겨듣지 않기 (“잘 됐구나, 얘야, 저녁엔 뭘 먹고 싶니?”)
  3) 신경쓰지 않기 (“네가 그런 생활 방식을 선택한다면,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구나.”)
  4) 거부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극복하게 될 거다.”), 전환치료에 대한 희망


모리 아버지: 4번이었다.

모리: 그 과정에서 아들과의 가장 큰 갈등은 무엇이었나요.
모리 아버지: 나에겐 없었다고 생각한다.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처음 가족들과 이야기할 때, 준비안 된 커밍아웃이어서 그런지 말 몇 마디가 오고가자 화를 낸 후 아들이 대화를 단절했다. 적어도 아버지는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었는데, 아들이 스스로 대화를 끊었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아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다거나 밉거나 괘씸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모리: 아들이 대화를 단절한 이유가 뭘까요?
모리 아버지: 가족들이 자신에 대해 이해를 전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대화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모리: 아들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환 치료를 생각하고 있는 점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리 아버지: 아버지의 경우, 아들이 완전히 성장한 후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혼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견고하다고 생각했다. 99%가 게이이고,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은 1% 미만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의 블로그를 본 이후에 만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 같은 중요한 시기를 다 놓쳐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모리: 잘 이해가 안 된다. 모순된 것 같다. 전환치료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혼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리 아버지: 1%의 희망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모로서 그런 욕심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선천적 장애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제한되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모리: 그날 대화에서의 갈등 중 "너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아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리 아버지: 우선 가장 큰 것은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결혼 이민자에 대해 무시하는 일반적인 정서만 봐도 느낄 수 있다.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예술 같은 가장 근본적인 것에도 이성애 규범이 깔려있다. 사회문화적인 모든 가치관 속에서 숨기고 살아야 하니까.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이성애자들도 자식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난다. 사람이 좀 더 성장한다고 할까. 하필이면 왜 내 아들인가.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모리: 고민을 듣다보니 청소년 성소수자의 고민, 그러니까 성소수자가 처음 하는 고민과 닮아있는 것 같다.
모리 아버지: 책에도 그렇게 나와있더라.

 

모리: 이성애자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근거는 무엇인가.
모리 아버지: 욕심때문이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전환치료에 대한 과민반응은 누나들보다 아들이 더 심했다. 아들이 상대적으로 더 그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단 뜻인 것 같다. 아들이나 다른 가족들이나 준비는 덜 돼 있었는데 욕심만 컸던 것 같다.

 

모리: 아버지의 입장이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얘기할 것 같은지.
모리 아버지: 학자는 주관적이어선 안된다.

 

모리: 전환치료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모리 아버지: 그렇다. 그러나 전환치료를 강요한 적은 없다. 아들은 이미 성인이다. 아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전환치료는 아들이 모른다면 알려주는 정도에서 멈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동성애자, 이성애자, 아들, 부모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이 완전한 교집합이 될 순 없다고 본다. 교집합이 아닌 것에 대해 강요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폭력은 일방적이지 않다고 본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아들도 가족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모리: 아들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리 아버지: 동의하지 않는다.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의 현재 상태에 대해 알려고 했으나, 다른 가족들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모리: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의견 차는 없었는지. 다른 가족 구성원과는. 서로의 의견을 듣기 위해 어떤 식으로 대화했는지. 그 과정에서 당사자(아들)는 대화에 참여했는지. 아니라면 이유는 무엇인지.
모리 아버지: 처음에 작은누나가 알아와서 큰누나에게 이야기 했고, 큰누나가 아버지가 놀랄까봐 정리해서 글로 보여줬다. 읽어본 이후에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자형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엄마는 대화 상대자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야기를 한두마디하면 옆구리가 터지기 때문이다. 엄마와는 아들에 대해 오늘 현재까지도 진지하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셈이다. 엄마에게는 아빠가 알아온 정보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대화한다. 엄마는 지금도 인정을 하지 않는 듯하다. 아버지가 느끼기에 엄마는 피해버리는 것 같다. 아들과 전화를 해도 엄마는 아들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와는 대화가 안된다. 누나들도 같다. 내 자식이지만 잘 이해가 안된다. 오히려 자형은 아버지보다도 더 아들편인 것 같다.

 

모리: 가족에게 추방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모리 아버지: 반대일 수도 있다. 아들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화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아들도 대화하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기대감이 높아서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3. 죄책감

 

모리: 아들이 동성애자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나요?
모리 아버지: 매우. 우선 유전적으로 선천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부모의 잘못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후천적이라고 해도 성장 환경은 부모의 몫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모리: 아버지와 어머니 중 더 큰 죄책감을 느낀 사람이 있었나요? 있다면 이유는?
모리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빠가 더 많이 느꼈다. 엄마와 이야기 하던 중에 “심지어 목욕탕도 한번 같이 안 갔지 않느냐?”하는 이야기도 했다. 엄마는 “올바른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리: 그 말을 들었을 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모리 아버지: 책에서도 봤는데, 아들은 아빠가, 딸은 엄마가 더 많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모리: 힘든 시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의지할 곳은 있었는지.
모리 아버지: 없었다. 나는 평생 의지할 곳이 없었다.
모리: 마음이 아프네요.


4. 감정표출

 

모리: 아들과의 첫 번째 대화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모리 아버지: 첫 만남은 대화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 전에 문자로 주고받았던 것이 대화였다고 본다. 문자대화에 난 “미안하다”, 아들은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했다. 듣고 싶은 말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첫번째 만남의 자리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다들 소리만 질렀다. 아버지는 진정하라고만 했고. 그자리에 누나, 자형, 엄마, 아빠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한마디만 해야겠다. 너가 블로그 한 그 시간에 공부를 했어봐라”라는 말을 했다.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싹 무시하고 일탈을 하고 있다는 듯 이야기 했다. 아들은 고슴도치처럼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을 어리게 보고, 의사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동생을 환자로 취급했다. 그러다 아들은 핸드폰을 던졌다.
아빠는 싸울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근데 생각보다 아들은 너무 경직되어 있고, 엄마와 누나는 아들의 상황에 대해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격차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다. 도매급으로 넘어간 아빠는 억울했다.

 

모리: 아들과 대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리 아버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아들과 아빠 둘만 있었더라면 대화가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누나와 엄마의 말에 흥분한 것이다. 결국, 대화할 준비가 된 사람들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대화의 장에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같이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은 환상일 뿐인 것 같다. 각자의 이해도에 차이가 있는데도 착각한 것이다.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감정적인 충돌만 있었다.

 

모리: 그럼 만약 대화할 준비가 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리 아버지: 평소 그 가정의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 만약 아웃팅이 아닌 커밍아웃이었다면 더 나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집의 경우 각자의 머릿속에서 각색을 하고 자기 방어의 논리를 구축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내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뭔가를 접목하려다보니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누나들은 자신을 속여서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특히 작은누나가. 그런 고민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 감쪽같이 속였다는 것. 작은 누나는 일주일동안 학원도 안 가고 매일 울고 그랬다. 어릴 때 같이 소꿉놀이하고 바비인형 갖고 논 것 때문에 자책하기도 했다. 그 기저에는 사랑이 있었다고 본다.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였을테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만, 왜 공유하지 못했는가, 왜 속였는가. 아웃팅이 아니라 커밍아웃이었다면 그런 방어기제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모리: 평생 커밍아웃을 준비해왔지만 한번도 "기만", “속였다"라는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날 그 말을 들은 건 가장 슬픈 일이었다.
모리 아버지: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속였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이야기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마음이 아픈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누나들은 ‘속였다’고 생각했다. 2촌(형제자매)과 1촌(부모)은 다르다.

 

모리: 미안함이 아닌 괘씸함을 마주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리 아버지: 아빠는 형제가 없어서 그런 감각이 없었다. 이에 대해 누나들과 이야기해봤는데,  아빠가 생각하기론 큰누나는 맏이로서 형제를 같은 운명체로 본 것 같다.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는. 아들은 그런 게 없다. 작은 누나는 같이 공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많이 섭섭해 했고, 많이 울었다. 큰누나는 그때 뱃속에 아기가 있어서 충격 받을까봐 가능하면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첫째는 대부분 보스 기질이 있다. 아기를 가져서 심신이 예민해진 것이기도 하고. 다들 자긍심이 너무 크고 각자 잘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만고만하게 성공한 사람들이어서 우애가 좋았으면 오히려 대화가 잘 됐을지도 모른다.

 

모리: 그 점은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일 거라 예상했었다. 우리 가족은 성정체성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앞에서 “학자는 주관적이어선 안된다”고 대답 했듯이. 블로그에 성소수자에 대한 자료를 그렇게 많이 올려 놨음에도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게 충격이었다.
모리 아버지: 같은 글이라도 독자들은 편광 안경을 끼고 선택적으로 섭취하기 마련이다. 글을 보여줄 땐 독자가 흡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써야 한다. 모든 정보를 다 흡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고 자기최면에 걸린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들의 블로그를 읽지 않는다. 읽어도 글이 의도한 바가 아닌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섭취한다. 같은 글을 읽어도 아빠가 받아들인 내용과 엄마와 누나들이 받아들인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는 내용과 듣는 내용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모리: 개인적으로 블로그는 여러 기능이 있었다. 대부분 순기능이었는데,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인권운동으로서 한 동성애자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쓰는 하나의 편지로서 커밍아웃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하루 만에 모든 걸 말할 수 없을테니 차근차근 정리해두자 하는 생각이었다.
모리 아버지: 블로그를 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좌충우돌 비틀비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글을 쓰면서 논리 훈련도 굉장히 많이 됐다고 본다.

 

모리: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모리 아버지: 가족들은 자식을 사랑하기만 하지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화는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들 내에 너무 오래 있다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걸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집단 최면에 걸리기 쉽다고 본다.

 

모리: ‘이걸 내가 다 설명해줘야 해?’라는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리 아버지: 당사자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할테니. 아들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운동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처럼 인권운동에 대해 알게 된 상태에서 아들이 커밍아웃을 했다면 그때만큼 충격을 받진 않았을 것 같다. KBS 뉴스에서 김조광수의 결혼 이야기를 하고, 힐링캠프에 홍석천이 나온다는 건 3년 전만 하더라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사회가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다 자잘한 인권운동이 심어놓은 씨앗이 싹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젠 수업중에 동성애를 접목해 이야기한다. 과학적 개방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교실에 분명 동성애자가 있을 것이고, 동성애자라고 해서 사람이 아닌 게 아니라고 말한다. 과학자는 어떤 것이든 터부시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5. 결단

 

부모들은 결국  (1) 지지를 보내거나, (2) 중간에 멈추고 대화하기를 거부하거나, (3) 지지하지 않는 것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고 합니다.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후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지를 보내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리 아버지: 내 아들이 성소수자로 살아야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인 편견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고 완화시킬 수 있는, 동성애가 물밑이 아닌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운동에 기여하고 싶었다. 내 아들이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익적이진 않지만 그렇다.

 

모리: 전환치료에 대한 1%의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와 같은 결론을 지은 것이 새롭다.
모리 아버지: 그런가? 김해에 있는 성소수자 부모 네 명을 알고 있는데, 모두 똑같은 마음이다. 모든 부모가 그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모리: 가족 구성원 사이에 의견 차이는 없는지.
모리 아버지: 현재 아빠는 지지를 보내고, 엄마는 아빠를 따라 눈만 뻐끔거리고 있고, 누나들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누나들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생을 사랑하니까. 그러나 아직 터 놓고 이야기할만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우습게도 어느 순간부터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누나들은 아버지를 아들에게 빙의 된 사람으로 취급한다. 자꾸 아들 편만 드니까. 하지만 아빠는 아빠일 뿐이다.


6. 참된 용인

 

모리: 초반에 가졌던 죄책감은 모두 해결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모리 아버지: 해결이 안된다. 자식 사랑의 본능이기 때문에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모리: 아들의 성정체성을 인정 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자기 자신, 가족관계,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생각 등).
모리 아버지: 고집이 줄어든 것 같다. 남도 아닌 내 아들이 평생 전혀 생각해 볼 일이 없었던 동성애자라는,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내 자신이 그 중심에 있는 가치”는 버리려고 노력하게 됐다. 계란 노른자가 아닌 흰자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대화의 중심이 항상 나였어야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올바른 잣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없애버렸다. 아들의 성정체성을 안 이후에는 가족과 대화 중에 아버지가 끼어서 큰 소리가 난 적이 없다.

 

모리: “커밍아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리 아버지: 대단히 공감한다. 이 말이 모든 것을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편견의 껍데기가 수십, 수만 겹이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커밍아웃을 처음 접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질문 할 것이다. 아버지도 처음 뇌병변 장애인 집을 도울 때 울기만 해서 다른 후원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몰랐으니까. 사람들이 동성애를 이해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만약 하나 뿐인 자기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반응할까?하는 질문을 해보고 싶다.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후원을 시작하면서 하는 이야기도, "아들이 그렇다면 힘들겠죠"라고 했다.

 

모리: 인터뷰를 해보니까 어떤가요.
모리 아버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오히려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리: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후기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이 인터뷰는 내가 아닌 아빠에 대한 인터뷰다. 나의 ‘커밍아웃 과정’을 겪으면서 아빠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커밍아웃 과정’을 겪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대부분은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로서 자식들이 겪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가족들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했고, ‘가족’이라는 가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내가 답답했던 것은,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는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부모들을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동성애혐오자들’로 규정하는 결론을 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후련하기라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결론은 실제로 ‘커밍아웃 과정’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가족과 싸우는 동안 가장 답답하고 이해가 안됐던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과 잔인한 폭력을 동시에 던지는 사람들을 난 믿을 수 없었다. 연락을 단절한 채 시간이 제법 지나고(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아빠가 동인련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이런 불신을 조금은 옆으로 치워뒀던 것 같다. ‘한번 믿어보자’하는 마음이었다. 이 절망적인 싸움을 끝낼 다른 방법이 없었고, 부모님을 용서할 기회가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는 결국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인정했다. 아빠와 여러 번 대화를 하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중요한 건 자식을 사랑하고 말고가 아니다. 또한 자식이 가족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굴고 말고가 아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식은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대화를 하는 방법이다. 나는 ‘커밍아웃 과정’을 겪으면서 가족과 대화다운 대화는 한번도 하지 못했다. 나의 경우, 가족과 내 의견의 불일치 지점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과연 게이로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애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 논쟁 정도는 충분히 대화로 풀어볼 수 있는 주제였지만,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첫 대화’를 기대하며 내려간 집에서 가족들은 비난과 정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양 말했고,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비난과 정죄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라는 이 낯선 주제 앞에, ‘불행할 것이 뻔해 보이는 자식의 미래’ 앞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화할 준비를 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나 대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식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견의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화 밖에 없다. 정말로 자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강압이 아닌 대화를 선택해야 한다.

 

운 좋게도 나는 이제 아빠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아빠와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마음에 있던 벽이 사라진 기분이랄까. 항상 ‘여기까지만 말하자’ 생각하던 내 삶과 고민들을 다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내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아빠를 보면서 내가 처음 정체성을 자각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힘들었으니 아빠도 똑같지 않을까. 아빠를 용서하고 나니 아빠의 아픔이 보였다. 성소수자 혐오의 희생양은 성소수자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도 포함한다. 성소수자의 이야기 뿐 아니라, 부모와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도 똑같이 중요한 이유다.



* '커밍아웃 과정'을 겪은 성소수자 가족들의 인터뷰를 모집합니다. 가족들과 자신의 커밍아웃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은 lgbtpride@empas.com으로 신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