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수자와 가족

한가위, 가족 그리고 나

by 행성인 2009. 10. 21.

한가위를 맞아 사무실에 모인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
정리: 나라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동인련 사무실이 시끌벅적해집니다. 홀로 명절을 보내야하는 회원, 가족과 친척들의 잔소리와 눈살에 집에 있기가 힘겨운 회원들이 저마다 먹을거리를 싸들고 사무실에 모입니다. 우리만의 명절을 즐기기 위해서죠. 올해도 동인련 사무실은 20여 명의 회원들과 친구들로 가득 찼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수다를 떨고 한편에서는 전통 놀이(?)도 하고 명절날 여느 가정집 풍경과 별 다를 게 없어보일지도 모르겠네요. ^^

가족들을 피해 동인련으로 모여든 회원들이 “한가위, 가족 그리고 나”라는 주제로 저마다 소감을 남겼습니다. 성소수자들에게 명절과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 동인련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어딘가 불편한 친척들, 웃을 수밖에 없는 나? but 휴일인지라 행복! - 이하이


흠... 무서운 친척들과 쾌쾌한 냄새가 나던 큰집. 그곳에서 지내던 (지루했던) 명절들은 이제 동인련 큰잔치가 있는 덕에 지루하지 않다. - 찌난


한가위입니다. 
동인련 가족들이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달이 깊고, 맑았습니다.
외로움을 모두 잊고
함께 웃었습니다.
앞으로도 몇 해고
이렇게 함께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 해와


큰아버지 오시는 시간을 피해 집에 갔다. 부모님 잔소리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2시간 지났나. 이불을 개고 거실로 나와 식사하는 식탁에 앉았다. 결혼. 일. 소개팅. 선. 밥그릇이 비어가는 시간 내내 들었던 말. 침묵을 끝내고 집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밝네... 에이 짜증나. - 정욜


동인련과 함께 하는 명절은 늘 즐겁다. 친구사이는 친구사이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동인련은 또 다른 색깔이 있다. 배도 그득해지고 머리도 가슴도 꽉 찬다. 오, 이쁜 애들! - 광수


이번 한가위는 한가위 같지 않은 한가위였다. 추석 전날 ‘용산, 종로를 만나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후다닥 막차를 타서 시골로 내려가서 추석날 제사를 지내고 바로 올라와 동인련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굉장히 즐거운 추석을 보내고있다! - 천공


문자를 하고 있으면 여자 친구 생겼냐고 묻는다. 큰아빠는 대학교 다니면서 여자도 안 만나고 미팅도 안 한다니까 대학생은 원래 다 그래야 한다고 하신다. 왠지 분위기가 커밍아웃하면 아웃팅되고 호적 파일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결혼 말은 없지만, 글쎄, 10년쯤 후에는 그거 가지고 싸우게 될지도. - N


나에게 가족이란 소주 그리고 한가위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동인련??? - Hoon


설설기는 저 자동차 안에도
암수 다정히 노니는데
아니 외로울사 이 몸은
님과 함께 못 돌아가리...
- Solid


한가위 둥근 달 보면서 비는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지만
내년... 아니 십년 후에는
내 사랑하는 부모님께 애인을 인사시켜드리고 싶다.
- 은사자


이젠 가족보다 친구들이랑 있는 게 더 편한 날... 식당을 찾아 헤매는 날 -


오는 친척 하나 없고
수중엔 차비도 없고
엄마 아빠 간만에 손잡고 방에 들어가고
난 동인련밖에 없어 ㅠㅠ...
(절대 놀러갈 사람 없어서 온 거 아니에요.)
동인련♡ 사랑해
- 날토


한가위엔 나 혼자만 바쁘다. - 평인


집에선 말을 잃는다. 둥글고 큰 달이 눈에 꽉 차는 언덕을 오르면 왁자지껄한 소음.
올해 추석도 동인련 사무실로 고고씽! - 나라


니들이 그러니까 내가 시골에 안 가지. 끝. - 최씨


우리 가족은 명절 때 친척집에 가본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아서 시집가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지만, 엄마 이외에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나서의 일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결코 혼인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힘이 들겠지만 힘을 내야할 것이다. - 리아


명절이어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아 특별한 소회는 없지만 부모님 두 분만이 시골에 가는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그런 면에서 명절에 가족과 같이 있고 싶으나, 결혼 문제에 대한 압박으로 같이 있기에 두려운 것도 분명하다. 혈족적 가족은 아니나 우리는 사회적 가족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명절은 어찌 보면 부유물처럼 종로바닥을 떠다니기도 하지만 사회적 가족 같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명절이 새로이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 Doo


몇년째 명절이면 이렇게 사무실에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술한잔 걸치며 넘치는 기갈로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참 정겹다. 아싸~~ 드디어 결혼하란 잔소리에서 .. '이젠 포기했어!'를 듣고야 말았다네~ 훗 - 병권




 * 웹진 '랑'의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그리고 성소수자 차별없는 세상을 원하신다면 매월 동인련 활동 소식, 회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성소수자들에게 꼭 필요한 글들을 싣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은 정기/비정기로 할 수 있으며, 후원 하실 분들은
 
http://www.lgbtpride.or.kr/lgbtpridexe/?mid=support 를 클릭해주세요^^
*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정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인들의 정기, 비정기 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