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2014년 1월 17일.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이 오랫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40-60대 남성 동성애자 HIV/AIDS 감염인 생애사 보고서 & 8,90년대 남성 동성애자 게토·커뮤니티 보고서 발표회’에 다녀왔다. 이번 연구는 모두 여섯 명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연구참여자는 모두 남성 동성애자이자 HIV/AIDS 감염인으로 연령은 41세에서 62세까지 분포하며, 데이터 수집에는 생애서사 인터뷰 기법을 활용하였다.
맨 처음 발표회 소식을 접했을 때,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참가 신청 이메일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면 아마 뼈저리게 후회했으리라. 생각해보라. 게이라는 용어 자체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쓰이기 시작했고 그 조차도 외국에서임을 감안했을 때, 8,90년대 한국에선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을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니 AIDS에 대한 인식은 거의 밑바닥 수준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8,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당사자들의 생애사라니……. 8,90년대라면, 나는 태어나기도 전 혹은 태어났더라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을 적이다. 그러니 손이 자동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시대엔 어떤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을까? 지금과는 무엇이, 어떻게 달랐을까? 그렇게 신천지를 꿈꾸며 발표회 장소에 도착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 혹은 다른 생각으로 찾아온 수많은 이들로 발표회 장소는 매우 붐벼 자리에 앉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하지만 발표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발표회가 시작됐다.
1970년대 종로 모습
첫 번째는 게토·커뮤니티 보고서 발표였다. 8,90년대 당시 동성애자들이 모이고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던 순간을 산 증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리한 보고서였다. 아직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기 전이었던 그 당시, 동성애자가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주로 이용한 방법은 잡지의 가십 기사나 공공 화장실 벽에 붙은 광고 스티커였다고 하는데, 그런 막연한 정보만 가지고 찾아갈 때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였고, 문화를 이루었다.
그들이 모였던 장소는 지금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술집, 사우나, 호스트바 등. 차이점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종로 말고도 을지로와 신당동에도 동성애자 업소 문화가 형성된 적이 있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보기 힘든 ‘크루징’이라는 문화가 성행을 이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깜깜한 도심 속에서 눈대중을 통해 만남 상대를 찾는 것’ 이라는데, 크루징이라는 단어조차도 내게는 처음이었다. 겁 많은 내겐 감히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었을 일인데, 그 당시 사람들은 정말이지 담이 컸나 보다.
그 당시에는 밤늦은 시각에는 술집을 대상으로 한 단속이 있었다고 한다. 단속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그들 사이에서는 배려와 협력이 싹텄다고 한다. 그 싹은 친목 모임을 만들게 되고, 추후 그 싹은 인권단체의 태동을 알리게 됐다고 한다. 어찌 보면 동성애자들의 하위문화에 있어서는 지금보다는 그 당시가 더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AIDS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당시 AIDS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에이즈 자체가 하나의 혐오 표현으로 자리매김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 의지할 것이라곤 암암리에 퍼지는 인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AIDS에 대한 혐오는 무서울 정도지만, 그 당시에는 같은 동성애자 사이에서 그 혐오가 더했다고 한다.
“그게(에이즈) 걸린 거야. 근데 걔는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종로 대로변에서 지나가는 버스에 지가 돌진해서 죽었어. (중략) 술집을 가도 대우를 안 해주지. 다 버리지. 심지어 지금은 규제를 안 하잖아. 밝히지도 않지만. 그런데 옛날에는 규제까지 했단 말이야. 못 들어오게.”
“90년대 초야. 90년대 초도 아니다. 아 1992-3년도지. (중략) ‘형 술집오지 마라.’ ‘왜?’ 그러니까 걔가 간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는 거야. 길녀 얘기 했잖아 내가. 길녀가 왔다 가니까 오호~ 소독약을 뿌리고 난리를 치더라고. ‘왜 그러는데?’ 그랬더니 ‘저년이 에이즈 환자야.’ 그러는 거야. 그러면서 걔 먹는 거 다 버리고 유한락스로 닦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런데 걔가 뭐라고 하냐면 ‘형이 왔다가도 저래.’ 그러는 거야. 그걸 내가 봤잖아. 내가 그때부터 국내 술집을 안 가는 거지.”
- <8,90년대 남성 동성애자 게토·커뮤니티 보고서> 中 연구참여자6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
이처럼 출입 거부에, 먹고 나간 자리는 소독을 할 정도로 AIDS에 대한 무지는 엄청난 혐오를 낳았다고 한다.
첫 번째 보고서 발표가 끝나고 이어서 HIV/AIDS 감염인 생애사 보고서 발표가 계속됐다. 앞선 발표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고 알지 못했던 그 당시 문화들에 대해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발표가 끝나갈 무렵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신천지를 생각하며 온 곳인데, 내가 본 건 신천지가 아니라 그저 약간 낯선 이웃 동네일 뿐이었다. 그 당시 그들의 하위문화와 삶은 지금의 우리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위문화는 음지에서 그 싹을 움 트고, 이성애자인 척 사는 이중 생활은 기본이었다. 이젠 10년도 아니고 1년만 지나면 강산이 바뀐다는 시대인데,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삶과 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또 하나의 삶과 문화가 그들 그리고 우리와 겹쳐졌다. 최근 읽었던 <나치즘과 동성애>에 나오는 나치 시절, 그들의 삶과 문화였다. 그들의 삶과 문화 역시 지금의 우리들과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었다. 시대와 장소, 그리고 국적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일맥상통하는 삶과 문화를 영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고 비슷한 문화를 이루는 이유, 그 시대와 장소, 국적을 아우르는 공통된 원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지만 매우 씁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뿐이다. 그 혐오 속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는 변하려 해도 변할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약간씩 가지를 쳐 나가며 지금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리고 노골적인 배제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HIV/AIDS 감염인들이 여전히 게이 커뮤니티 내부에서까지도 자신의 감염 사실이 드러나길 꺼려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일반인들의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동시에 게이 커뮤니티 내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혐오 또한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감염인 당사자들이 위협을 느끼고 숨는 마당에 비감염인들이 아무리 감염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소리친들 무슨 소용인가. 당사자 본인들이 차별을 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무엇이 이렇게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에 거리감을 두게 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소수자이면서, 소수자 안에서 또 다른 소수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변화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발표회 발제문의 결론 중 일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은 예전보다 덜하겠지만 HIV에 감염된 게이와 HIV에 감염되지 않은 게이 사이의 불편한 거리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적관계가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공간에서 HIV감염인과 비감염인이 직접 마주할 때 보이지 않던 거리감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피해 위험이라는 논리 속에서 게이 감염인은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죄인이 되어 버린다. 비감염인 게이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당부엔 역설적으로 그 거리감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거리감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선언적 수준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참여자 4가 언급한 것처럼 문화행사든 다른 어떤 방법이든 인권단체와 커뮤니티가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40-60대 남성 동성애자 HIV/AIDS 감염인 생애사 보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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