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HIV 감염인의 연애, 가족, 삶

Posted at 2013.12.25 01:21// Posted in HIV/AIDS


박상훈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1. 연애?


감염인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감염인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굉장히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면 성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HIV는 성관계가 감염의 경로로 너무나도 뚜렷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에 감염인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스스로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콘돔을 사용한다면 안전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가 비감염인이라면 감염인들 대부분은 그 상황에서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감염인이 상대방이 비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감염인이 상대방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라도 서로를 짝사랑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감염인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감염사실을 밝힐까? 감염사실을 숨기고서라도 만날까? 포기할까? 물론 선택은 감염인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더 낫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위험성이 큰 선택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상대가 비감염인이라면 포기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누군가에게 감염사실을 밝히기 싫고, 밝힌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염사실을 아웃팅 당할 것 같아 굉장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감염사실을 숨기면서 만나면 제 자신의 삶이 너무 답답해질 것 같고, 감염사실로 힘든 일을 상대방에게 하소연하지도 못 하구요. 그래서 저는 보통 감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감염인을 만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종로나 이태원에서의 헌팅이나, 비감염인이 주선하는 소개팅은 꿈도 못 꿉니다. (손가락만 쪽쪽)


감염사실을 알게 된 감염인들 중에는 감염인의 삶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드는 외로움에 좌절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동성애자라면) 게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자기 스타일을 찾기도 힘든데 그 안에 감염인이라는 비밀까지 생겨버리니 ‘이제 평생 연애는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습니다. 감염인 중에도 감염 사실을 알리고도 잘만 만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감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처지의 사람만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느끼는 감염인의 연애란 한마디로 조금은 답답하고 힘들고 안타깝습니다. 다들 어떻게든 연애를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느끼는 감염인의 연애란 한마디로 조금은 답답하고 힘들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2. 가족


감염이 된 후, 게다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더욱이 곧 군대에 가야 할 시기의 감염인이라면 가족들에게 감염 사실을 알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굉장히 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외국보다는 보수적인 문화들과 HIV가 대한민국에 첫 등장했을 때 만들어진 HIV에 대한 부정적이고 잘못된 인식들이 많이 완화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HIV감염사실 공개로 부모님이 받게 될 충격이라던가, 가족들의 반응이라던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 등을 굉장히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군대를 제대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검진항목에 HIV가 포함되어 있었나봅니다. 제대를 했는데 보건소에서 편지가 날아왔고, 그 편지를 아버지가 뜯으셨습니다. 편지 내용은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뉘앙스를 얘기하자면 “일단 보건소로 연락해보세요” 정도의 편지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앞에서 전화를 했고 저는 속으로 어떤 일인지 대충 감이 와서 조금의 마음을 다잡고 있었습니다. (벅차게 미친 듯이 여러 사람을 무분별하게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글로 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원래는 이러면 안 되지만 전화상으로 통보를 해도 되겠습니까?” 라는 말에 그냥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어차피 느낌 아니까. HIV감염통보를 받고 앞에 계신 아버지가 “무슨 일 이냐?”하시길래 더 끌어봤자 못 숨길 것 같아서 그냥 솔직하게 앞에다가 얘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마냥 나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얘기했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잘 받아들이지만 부모님께서 아직 편견이 있으셔서 가끔 힘들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감염인들은 가족들과 굉장히 많은 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에게만 얘기를 한다거나, 형제나 자매에게만 이야기하려했는데 형제나 자매가 부모님께 말씀드린다거나, 저 같이 그냥 자발적으로 얘기한다거나, 아예 얘기를 안하는 감염인들도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알리고 난 후의 결과는 정말 다양합니다. 가족들이 잘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로인해 상처를 입은 감염인도, 가족들 덕분에 힘을 입은 감염인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감염인들에게 가족들에게 감염사실을 커밍아웃 한다는 것은 복불복입니다.



3. 차별과 편견


감염인들은 말합니다. 차별이나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제가 감염인이 되고 처음 겪은 편견은 아버지께 감염사실을 알리고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알리자고 이야기하여 동의를 하고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 누나, 어머니 순차적으로 알렸습니다.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을까봐 누나에게 먼저 감염사실을 털어놓고 누나도 어머니께 알리는게 좋다고 동의하면 어머니께 알리자고 아버지와 의논했는데, 누나가 어머니께 알리자고 하여 알리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께 감염사실을 알리고나니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가족 모두 우는데 아버지께서 눈물을 닦기엔 좀 많이 휴지를 한 뭉텅이를 들고 오시더니 제가 바닥에 흘린 눈물을 닦으시곤 “누군가에게 HIV가 전염될만한 행동은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편견은 계속 조금씩 이어졌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화장실을 따로 쓰고, 식기를 따로 쓰고, 빨래를 따로 돌렸습니다. 한번은 집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먹었는데, 탕수육 소스를 젓가락으로 그냥 찍어먹었다고 크게 호통을 치신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분가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가족들의 편견이기도 합니다. 


알의 주요 구성원은 20대로서 취업이 아주 밀접한 연령대가 모인 그룹이다 보니 취업 얘기를 안 꺼낼 수가 없습니다. 일단 감염인들은 직장인 건강검진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물론 법적으로 지정된 검사만 한다면 감염인들도 취업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병원이나 건강검진센터에서 판매하는 건강검진 패키지에 대부분이 HIV항목이 들어갑니다. 병원쪽에서는 그 항목이 수익이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업쪽 에서는 대부분 채용 전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채용 후 건강검진은 건강검진을 사유로 채용 후 해고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채용 전 OT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건강검진을 함께 진행해버립니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채용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편법적인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다 나열을 할 수는 없지만 감염인을 필터링 시키기 위한(고의가 됐든 고의가 아니든) 시스템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군대면제와 면제사유입니다. HIV감염인은 군 면제 대상입니다. 군대에서 면제가 되고 가족들이 혹은 친척들이 혹은 친구들이 “너 왜 군대 안 가냐?”, “군대 갈 때 되지 않았니?”라고 물으면.. 더군다나 주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징집신체검사가 현역이나 공익으로 나온 걸 알고 있다면 굉장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취업을 할 때도 면제사유에 대한 사유서나 면접 시 질문이 들어오면 이걸 HIV라고 얘기하지도 못하고 어느 면제 질병을 얘기하기도 애매해지게 됩니다(실제로 질병면제 사유가 되는 질병은 일상생활하기에도 힘든 질병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회 일반 사람들이 감염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궁금하다면 가끔씩 포털사이트의 메인 뉴스에 HIV/AIDS와 관련된 뉴스기사의 댓글들을 확인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댓글들을 가만히 읽다보면 감염인인 제 스스로가 ‘잘못 살아 왔나?’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차별과 편견은 감염인으로서의 삶을, 먹고 사는 걸 더럽게 힘들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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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리
    2013.12.31 19:39 신고 [Edit/Del] [Reply]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HIV가 전염될만한 행동은 하지 말아라.”한게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HIV는 같이 밥 먹고 눈물 흘린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데 그 기본적인 정보도 없으셨다는게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해주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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