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2012년부터 동인련 HIV/AIDS인권팀은 인터뷰를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로 삼아 왔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에이즈 이슈를 환기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나 정책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질병을 대하는 사회적 기반이나 인식을 살피고, 나아가 질병 당사자로서의 삶에 귀기울임으로써 명목상의 운동을 삶에 밀착된 활동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는 팀 내 요구 역시 인터뷰를 택하는 데 한몫했다. 그동안 만나기 쉽지 않았던 질병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로도 팀원들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2012년도의 첫 인터뷰는 국내 HIV/AIDS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부의 예방단체와 간병시설, 자조모임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인터뷰의 목적은 국내 HIV/AIDS 기반시설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 인권팀은 질병 당사자 개인의 삶, 구체적으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 감염인들의 삶에 대해 밀착될 필요성을 느끼며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3년, 동인련 HIV/AIDS인권팀은 남성 동성애자 감염인들의 생애사를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4-60대 남성 동성애자를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8,90년대 국내 동성애자 게토‧커뮤니티의 역사를 다시 읽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에이즈가 등장하고 커뮤니티의 대응이 어떠했는지,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고 질병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커뮤니티의 풍경과 구성원들의 관계를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감염인 동성애자의 삶을 커뮤니티 역사에 자리매김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당시의 구체적인 풍경을 살펴보기 위해 인터뷰 참여자는 90년대 초 이전 커뮤니티‧게토 공간에 발을 들인 이들로 한정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총 6명이다. 40대 이상 게이 감염인을 섭외하기 위해 인권팀은 팀원 가운데 오랜 HIV/AIDS인권활동가들의 ‘인맥’을 활용했다. 먼저 HIV/AIDS 인권 운동을 통해 만났던 감염인 활동가들에게 제안을 했고, 몇몇 분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때론 미리 섭외된 인터뷰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를 소개해 주면서 인터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한 명당 두 번의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평균 2시간 정도, 많게는 4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8,90년대 게이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동시에 게이 감염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경험해 봤을 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들려주십사 설득하는 작업 역시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섭외를 요청하고자 인터뷰 목적을 설명할 때 몇몇 참가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살아온 이야기나 들려 달라고 하니 HIV/AIDS인권팀에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냐는 너스레와 손사레가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이야기들은 실을 뽑아내듯 길고 끊임이 없었다. 그간 자신의 삶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제안을 덥석 물어 연구를 계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들려준 이야기의 무게는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으레 감염인의 삶을 상상하듯 절망적이거나 우울한 것만도 아니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감염된 지 적게는 4년, 많게는 20년이 넘었다. 이들은 감염 초기에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HIV감염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다름 아니었다. 간간이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존재 한 부분을 숨기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모습들이 은연중에 비쳐지기도 했다. 이미 뼈가 굵은 이들은 그 고통을 극복했다고 회고하지만, 그 시기를 되짚어보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에서 대놓고 실례를 하는 게 아닌지, 경솔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이로서의 삶, 감염인으로서의 삶 모두 자신의 몫일지라도 차별과 배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경험을 다시금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들은 감염인인 동시에 ‘우리’의 공간에 먼저 나온 ‘선배’이기도 하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는 지금껏 어둠과 망각에 보이지 않았던 골목에 다시금 빛을 비춰 들어가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지만 이들의 기억 속엔 영원히 남아있을 골목들, 수다한 극장들과 업소의 이름들이 나올 때마다 연구자들은 놀람과 신기함을 표했지만 한편으론 이제 만날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이 초대한 기억의 골목들을 안내받으며 우리는 그 당시 허름한 극장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서로를 향한 시선,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소문과 이름들, 어두침침한 업소의 풍경, 크루징했던 공원의 모습을 그려보고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조합해 나가면서 오래된 서울시내 지도를 더듬어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동료 감염인들과 HIV에 감염되지 않은 게이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동료 감염인에게는 ‘자긍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비감염인 게이들에게는 ‘안전한 성관계’와 ‘책임감 있는 삶과 사랑’을 당부하는가 하면, ‘게이 감염인에 대한 지지’도 요청하고 있었다. 진심어린 당부와 충고를 전하는 모습에서는 삶을 관조하며 주변을 살피는 깊이도 비쳐졌다. 감염인들의 자긍심과 안전한 성관계에 대한 호소는 평소 ‘세계 에이즈의 날’처럼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캠페인에서 언급되는 구호들이지만, 당사자들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완전히 다른 무게와 힘을 전한다. 


게이와 감염인, 두 단어의 조합은 여전히 편치 않은 연결이다. 질병 당사자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이 예전보다 줄어들고 질병 당사자의 자긍심과 결속이 높아진 지금에도 감염인 게이와 비감염인 게이 사이의 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지라도 오랜 편견은 몸에 배어버린 탓일까. 편견의 관성은 여전히 게이 감염인에게 문란함이라는, 보복 심리에 사로잡힌 죄인이라는 낙인을 생산하고 묵인을 강요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게이 감염인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성원임을 인식함으로써 커뮤니티 내부의 자성을 촉구해야함을 모르지 않는다. 더불어 감염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비감염인과 직접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감염인들만의 자긍심을 요구하고 이들의 노력을 요청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신뢰와 지지가 선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이즈가 게이들의 돌림병이라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질병을 정체성으로부터 떼어내 왔던 역사의 그늘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게이 감염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경험을 돌아보고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커뮤니티가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변화를 위한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 보기 위해 진행되었다. 질병 당사자의 생애사뿐 아니라 8,90년대 HIV/AIDS가 출현했던 게토‧커뮤니티를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보고서는 생애사와 공간연구라는 독립된 두 편의 텍스트로 나뉘어 작성되었다. 계획부터 섭외, 인터뷰와 보고서 작성에 이르는 과정을 밟기에 1년의 시간은 부족했다. 인터뷰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고 분석하지 못한 팀원들의 아쉬움은 2014년 보다 완성도 있는 보고서로 다듬자는 계획으로 남겨졌다.


HIV/AIDS인권팀의 생애사연구는 활동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활동을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구호를 생산하고 거리에서 외치는 활동뿐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알아가고 배제와 불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시도들, 나아가 질병이슈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시도해야 한다는 필요 아래 작성되었다. 제언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연구결과이지만, 이후 보고서가 감염인을 터부시하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8,90년대 게이커뮤니티의 역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과거의 소중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추신: 당사자들의 생애를 통해 에이즈 이슈를 널리 환기시키고 싶은 욕구가 없지 않지만, 그러기엔 질병 당사자들의 사생활이 공개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높았다. 이런 연유로 보고서 파일은 대중들에게 공유하지 않되, 100권 한정의 자료집을 발행하여 판매하고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동인련으로 문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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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22 06:44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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