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
나는 트랜스젠더(FTM)이다. 트랜스젠더로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질문도 받아왔다. 비트랜스젠더들은 내게 말한다. “언제부터 남자라고 생각했냐”고. 나는 이 질문을 받고 헛웃음이 났다. 이해하기 쉽게 해주기 위해 내가 그 사람에게 되돌려 질문했다. 당신은 언제부터 본인을 남자(여자)라고 생각했냐고. 여기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본인이 한 질문이 얼마나 어이없었던 건지 알고 머쓱해 한다.
하지만 꼭! 굳이! 그래도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지 않냐며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축구나 농구, 격투기를 좋아했다, 남자 아이들과 더 친했다, 안에서 노는 것 보다 밖에서 뛰어 노는걸 좋아했다, 액션 만화를 좋아했다. 이것이 질문자가 바라는 모범답안일 것이다. 그리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방과 후에 도서관에 가 문닫는 시간까지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리고 액션 만화도 좋아했었지만 꼬마 마법사 레미나 빨간 망토 차차 등 이쁘고 아기자기한 만화를 더 즐겨 보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모범답안에서 벗어나는 대답을 하면 듣는 이 중에 반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트랜스젠더인 걸로 헷갈리는거 아니야? 라며 대신 고민해준다.
뭐, 굳이 내가 남자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때를 말해주자면 5살 때 혼자 동네를 걷다가 문득 아, 난 남자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나서, 나중에 내 몸이 여자처럼 변하는게 두려워 그냥 어린 몸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몸이 자라고 불편한 것들이 늘어났다. 여성 속옷을 착용해야 하고, 교복 치마를 입고, 여성스런 행동을 강요 당하고, 샤랄라한 여자 옷을 입으라고 하는 등 신체적, 정신적 억압이 시작됐다. 원래 나는 여자옷이나 구두 등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계속 여성적인 것을 강요당하다보니 나중에는 여자 옷만 봐도 불태워버리고 싶어졌었다. 내 여성스러운 모습을 한 번 보겠다고 사람들이 내게 온갖 아양과 칭찬을 해주는 모습이 가여워 한 번씩 보여주긴 했었다.
애초에 치마나 구두, 여자옷 중에 이쁜건 탐이 나고 입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내 패션 스타일이 남들보다 범위가 넓기 때문이지 내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내 모습을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이면 남자거든 여자거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걸 나눠서 잘 어울릴 수 있는 옷을 포기하는 바보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내 인생을 아주 조금 적어 놓은 것을 읽어보니 어떠한가? ‘불쌍하구나,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가? 여전히 가끔은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사람이 돼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알려주고 이 글을 마치겠다. 첫 번째,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투여와 수술을 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 아무 외적 변화가 없고 호르몬 투여나 수술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에게 함부로 ‘너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야’라는 씁쓸한 실수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번째, 본인을 여자 또는 남자라고 말하는 외적변화가 없는 트랜스젠더를 대할 때에 그 사람이 말한 성별로 대해줬으면 한다. 당신이 그 트랜스젠더에게 ‘아무리 그래도 겉모습이 그래서 네가 말한 성별로 대하기 어려워’ 라는 말은 그냥 씹어 삼켜라. 그런 말은 해서도 안되고 듣고 싶지도 않다. 어렵고 어색해도 최대한 티는 내지 마라. 그러면 언젠간 당신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 질 거다. 그리고 몇 몇의 트랜스젠더는 말은 안해도 그 행동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세 번째, 상대방을 배려해주면 된다. 이 단순한 말이라도 기억해주면 된다. 그리고 노력해주면 된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날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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