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레즈비언)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공적으로만 만나오던 사이였기에 사석에서는 첫 대면이었다. 그러다보니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갔다. 대화의 주제는 공통관심사인 성소수자로 자연스레 흘러갔다. 알고 보니 지인도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회원이었고, 다른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인련을 비롯하여 타 성소수자 단체에도 후원만 할 뿐,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동인련 회원사업팀의 팀원이기도 한 본인은,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레 지인에게 모임에 나오라고 권유를 했고, 그 권유는 이 글을 쓴 계기가 되었다.
지인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단지 ‘불편’해서.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했을 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서 내게 동인련 같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불편’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이유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기만 한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앞으로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지인의 외형을 설명해보자면, 머리는 숏컷에 바지를 즐겨 입는, 흔히 말하는 ‘부치’의 외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나가서 겪게 되는 일은 한결 같았다고 한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스캔’, 외형만 보고 ‘부치’ 혹은 ‘팸’으로 자기들 멋대로 결론 지어버린다고 한다.
지인이 불편한 이유는 자신을 ‘부치’로 봐서가 아니다. 굳이 ‘부치’나 ‘팸’으로 구분하는 게 불편한 것이다. 지인은 자신을 굳이 ‘부치’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게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문화가 자주 보인다. 처음 보는 게이가 있으면 그 사람은 ‘탑’인지, 아니면 ‘바텀(혹은 끼순이)’인지 ‘스캔’에 들어간다.
성소수자라면 대부분 사회의 성별이분법적인 사고로 인해 불편함을 겪어왔을 것이다. 여성 혹은 남성의 고정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그에 벗어나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 말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그런 성별이분법적인 사고를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고, 커뮤니티 내에서만큼은 성별이분법적 사고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이 없기에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찾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커뮤니티를 찾는 이들이 또 다른 이분법적인 상황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팸부치이분법적’ 혹은 ‘탑바텀이분법적’인 사고 말이다.
지인이 ‘불편’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성소수자' 이야기만 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지인이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기서 지인이 말한 ‘성소수자 이야기’란 성소수자 인권이나 성소수자와 관련한 어려운 이야기들(학술적이고 전문적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활동을 1년 넘게 해 온 본인으로서 그렇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기에 단순히 지인의 착각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분명 어느 정도 커뮤니티 내에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이 됐기에 지인이 그렇게 느낀 것일 테니 말이다.
그저 일상을 공유하고자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찾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들에게 '성소수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커뮤니티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하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사실 본인만 하더라도 애인이 아니었다면 동인련에 활동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먼저 활동을 했던 애인을 통해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동인련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한 것이니 말이다. 만약 애인이 아니었다면 내게도 동인련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을 것이다. 이름부터가 동성애자’인권’연대 아닌가. 동인련을 접하기 전, 내게 ‘인권’은 그저 어려운 것으로만 느껴졌다. 실상 동인련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소수자 인권 향상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커뮤니티’라는 중요한 역할도 지니고 있다.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꿀 수 있는 일종의 해방 공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커뮤니티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공간이 된다면 그건 ‘커뮤니티’의 역할을 다 해냈다고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것이 누군가에겐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모두 만족하는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티 구성원의 ‘불편’을 인지한 이상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운영위원이라든지 몇몇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가 같이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이 글을 본 여러분 먼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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