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한편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늘 광장토론과 다채로운 문화제가 열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라는 노래처럼 시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토론이 개최되고 개개인의 사연이 얽힌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와 국민권력,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 심지어 행진대열이 어떻게 광화문 차벽을 넘어설지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다양한 계층, 계급의 요구에 맞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곳곳에서 열리는 토론을 경청하기도 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기도 한다. 통기타를 들고 온 분들은 노래를 부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른다. 청소년들의 거리 퍼포먼스는 유쾌 발랄하고 자신들이 진정한 배후(?)라고 주장하는 디시인사이드 음식갤러리 회원들은 무료로 김밥과 물을 나눠준다. 쉽게 끝나지 않을 듯 한 분위기다. 촛불이 줄어들고 있다라는 우려와 달리 자발적으로 거리를 택한 시민들과 단체 깃발이 뒤섞인 광화문 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역동성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6월 10일, 명박 산성 앞에 걸린 플랑 _ 민중언론 참세상 사진인용
“차별반대, MB반대” 거리에서 피어나는 레인보우 효과
하나.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 아니 걸으면서 하는 인권교육!
레인보우가 성소수자들의 상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만은 촛불집회만 나가봐도 정말 많다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지만 국민에 성소수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본 사람들은 단체이름도 없이 대형 무지개 깃발이 나부낄 때마다 물어본다. “어디서 오셨어요?”처음엔 쭈삣 쭈삣 거리며 대답을 피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성소수자가 누구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리플렛을 건낸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는 반면 뭐 씹은 표정으로 흘기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뭐 어떠하리~ 모든 권력은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레인보우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서울 시내를 지나다니는 시민에게 걸어다니는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진행 중에 있다. 심지어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무지개 깃발을 든‘동성애자들도 참여한다고 했을까’6월6일부터 8일까지 진행한 72시간 마라톤 행동에서는 무지개 깃발 아래 함께하는 이성애자 부부도 있었다. 깃발이 너무 이뻐서 함께 하고 싶다는 그들은 새벽 5시 피곤함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깃발을 자기들에게 주고 가면 안되냐며 아쉬워했다. 심지어 이들은 6월10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이 참여한 대열에도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둘. 자긍심으로 함께 한다.
아무리 무지개 깃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지개 대열과 함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지개 주변에서 “딱 봐도 우리 필”인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함께 하세요^^”라는 말에 멋쩍게 웃으며 용기를 내고 함께 한 이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일을 하며 지냈는데. 물대포 쏘고 전경에 머리가 짓밟힌 여학생 동영상을 보고 열 받아 무작정 상경했다는 한 게이는 광화문에 무지개 깃발을 보고 너무 반가워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나온 레즈비언도 잠깐 들렸다 갔다. 대학모임에서도 친목모임에서도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팻말들을 들고 “저희도 레인보우에요”라며 자리를 같이 했다. 서로 인사도 하고, 이명박도 씹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외모도 잠깐잠깐 평가하면서 촛불집회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고 즐거워했다.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시작할 무렵부터 이반시티와 해피이반 TGnet, 미유넷 등의 성소수자 포털사이트 자유게시판은 시위동영상을 퍼다 나르고 참가후기를 올리거나 함께 촛불시위를 갈 사람들을 찾기도 하는 등 매우 예민한 반응들을 보였다. 게시판에서 리플논쟁도 상당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들썩일 정도로 촛불정국이 형성되고 있는데 “나와는 상관없어”“우리는 우리이슈만”이라고 말한다면 성소수자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고 내 자신을 매우 편협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민이라고 얘기되어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분노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다. 또한 함께 행진할 수도 있고 그 안의 일부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촛불집회를 참가한 이 순간까지 “왜 나오셨어요?”라며 묻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혹시나 묻는 사람이 있다면 당당하게 “우리도 시민이라서 나왔어요! 모든 권력은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국민으로부터 나오잖아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자.
△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성소수자, 무지개 깃발 _ 뉴시스 사진 인용
셋. 6월10일 100만 촛불 속 무지개는 당연 돋보였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6월10일 촛불행진에 소속된 모든 단체회원들이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참여 일주일 전부터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게시판에서 무심히 외면당했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당일 현장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3개의 대형 무지개 깃발 아래 모인 삼삼오오 모임 성소수자들은 “차별반대”“MB반대”라고 적힌 무지개 손피켓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호모포비아 이명박”을 종로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외쳤다.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은 퀴어문화축제 때 노출방지용으로 나눠주는 빨간 리본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4시간 이상을 함께했다. 안국역 사거리 근처에서는 노래도 배우고 자유발언도 진행했다. 한편 무지개대열에 함께 한 반차별 공동행동(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등)의 참여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인권운동사랑방은 자체적으로 준비한 스케치북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성소수자로부터 나온다”라는 문구를 써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보라고 열심히 들고 서 있었는데 이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발걸음을 잠깐 멈춰 세우고 보게 할 만큼 의미있는 행동이었다. 시민들도 들고 다니는 홍보물이 예쁘다고 너나 할 것 없이 받아가 나눠주기 시작한지 30분도 채 안 돼 몇 백 장이 동이 났다. 6월10일 우리가 얻는 자긍심과 용기, 그리고 연대활동을 그냥 묵혀두기엔 너무 아깝다. 사실 호모포비아임이 이미 증명된 정권을 검증하고 또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성소수자 관련 의제가 아니라고 외면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이제 무지개는 촛불과 친해지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과 함께하는 무지개 대열을 더 확대될 때만이 성소수자 권리도 함께 쟁취할 수 있다.
이제 촛불을 든 시민들과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미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민생현안을 확대해 정권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미 시위대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구호는 “이명박은 물러나라”였다. 촛불이 꺼져가고 있다고, 호들갑스럽게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촛불은 건재하다. 행진 도중 함께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가고 있고, 도로가 점거되어 운전에 상당히 불편할 법도 한데 시위대열에 손 흔들어주는 시민들을 보기란 너무 쉽다. 성소수자 운동이 그동안 촛불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보여 주며 살아있는 인권교육을 진행했다면 이제 한발 더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혹자는 무지개가 광화문과 시청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다. 무지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께하고 있는 이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나 모두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광장의 민주주의가 성소수자 인권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지 고민과 실천을 조금씩 시작해보자. 자유발언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목소리를 담은 유인물을 배포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또한 결코 쉽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과 함께 한 자신감과 자긍심이 성소수자 권리를 되찾는 운동에 큰 밑걸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에게, 성소수자 운동이 나아갈 길을 묻다 (4) | 2008.07.30 |
---|---|
동인련의 이주노조에 대한 소중한 연대에 감사하며..... (2) | 2008.07.30 |
촛불에서 만난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수다 (1) (0) | 2008.07.30 |
촛불의 바다 속으로 뛰어든 무지개 _ 6월호 (2) | 2008.06.21 |
[발행준비 1호] 13만원의 희망. 새로운 연대에 대한 실험은 지속되어야 한다. (0) | 2008.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