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동성애자인권연대 후원회원; 녀우주연상 및 MVP 2관왕)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8월 15일, 흔히 말하는 “이쪽사람들”과의 짧은 휴가를 보내는 시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여름MT, 기갈은 높게, 쾌락은 깊게, 사랑은 평등하게, 일영해방전선의 날이 오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구파발, 의정부 두 팀 사이에서 어떻게 가야할지 망설이다 조금 더 가깝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의정부를 택했습니다. 샤넬, 오소리, 라마 씨, 이렇게 4명이서 오붓하게 더블데이트를 가는 느낌적 느낌으로 버스 뒷자리에 몸을 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꾀XX산장에 도착했을 땐 선발팀이 짐을 먼저 풀고 주변을 정리하고 저녁거리를 미리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얼추 모이고 나서 키워드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성애자 아닌 사람, 애인 있는 사람, 동인련에서 활동하는 팀이 두 개 이상인 사람 등등, 형식적인 소개에서 벗어나서 지루하지 않았던 자기소개였어요 ㅋㅅㅋ 저요? 저는 제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끼순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튀어나와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ㅅ^ 여러분, 끼로라는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이거 중요하니까 밑줄 쫙 긋고 별표 5개 ☆★☆★☆)
자기소개가 끝나고 같이 지내는 동안 지켜야 할 규칙들과, 당번을 정하고 그리고 옆의 계곡으로 나가 약 한시간 반 동안 물놀이를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대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게임을 하며 서로에게 물을 뿌려대는 생생한 장면을 담아내느라 찍고, 벗은 몸을 자랑하며 각종 포즈를 자아내는 사람들의 흑역사를 보존하느라 정신없이 찍고 또 찍고, 또 그걸 먼 발치서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예뻐서 찍고 찍고 또 찍고. 이렇게 원 없이 사진을 찍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증말~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는 동안 세월호 동조단식에 함께한 사람들이 만들어 온 노란 리본을 나눠주었습니다. 15일 당일 세월호 집회에 가 있는 다른 회원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무사히 MT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나마 유가족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회원들을 떠올리며 함께하는 마음으로 리본을 옷에 달았습니다.
동인련 MT의 전통행사라고 할 수 있는 촌극은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와는 굉장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각종 혐오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번 촌극에서 저희 조는 바이포비아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가 새 아버지를 데려오고 그것에 오열하는 딸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클리셰로 점철된 막장 드라마였지만 몸을 던져 연기하는 누군가(?!)덕분에 큰 웃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누군지 참 궁금하네요^ㅅ^;;)
아니 동인련은 창의력 대장들만 모이셨나봐요- 소개팅에서 만난 MTF, 추억의 현장 신촌 퀴어퍼레이드, 각 나이대 별로 서로를 마구 까대는 난장판까지, 진짜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서 혐오세력을 통쾌하게 이겨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기도 하고, 잠깐이나마 곱씹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하나씩 던져주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내다니, 부분의 합이 전체 그 이상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늦게 합류한 회원과 다 같이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미리 준비한 뒤풀이 팀에서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서로가 가진 웃음거리와 다르지만 비슷한 애환을 각자의 자리에서 털어내고 부대끼며 피워냈지요. 참, MT 가기 전에 누가 그러더군요. 소위 “꿘”들은 잘 못 놀거라고. 근데 웬걸, 제가 기억하는 동인련의 뒤풀이는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너무나도 많은 추억거리로 가득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사온 술을 꺼내며 회원들에게 나눠주질 않나, 누군가는 펜션 아래층에다가 클럽을 차리고 뒤집어지게 수건 쇼를 벌이지 않나, 마당에다 음악을 틀고 단체로 춤을 추지를 않나,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맘 편하게 판 펴고 놀고 마시고 이야기한 지가 얼마만이었을까요…?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밝아오는 아침. 눈을 뜨니 8시 6분. 7시로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여유롭게, 그리고 우아하게 아침을 준비하려고 했던 저의 계획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젠장, 그 놈의 술!!) 허겁지겁 뛰쳐나오며 아침을 준비하려 하는데 아니, 잠도 안자고 아직까지 달리시는 분들이 있으시네요. 이 사람들, 누군가가 말했던 “동성애청정국”인 이 나라에서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정말 독하디 독한가 봅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버섯과 양파를 듬뿍 넣은 특제 해장라면 식사를 끝내고 MVP를 뽑고 녀우주연상과 함께 시상을 했습니다. 녀우주연상을 수상하신 라마님, 루소님, 웅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촌극이 더욱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어라? 근데 한 명 빠진 거 같은데 누구였죠…?) 서로의 소감까지 모두 함께 나눈 다음에 펜션을 치우고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올해 여름 MT의 공식 일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첫 술번개 때 만난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성소수자 운동권들을 칭하며 “루저집단”이라고 비하했던 것에 충격을 받아, 거리를 두고 조용히 후원만 하며 살려고 했던 제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를 편협한 울타리에 가두고 살고 있었는가에 대해 반성합니다. 제게 있어선 본격적으로 여러 활동에 함께한 첫 성소수자 커뮤니티였고 어쩌다가 이곳에서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하는 입장)가 되어버린 저의 입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그리고 언제 떠올려도 어제 같을 낭만 가득한 1박 2일 동안 느낀 벅찬 즐거움이 참가했던 다른 분들에게도, 그리고 부득이하게 참가하지 못했던 회원 분들에게도 글을 통해 무지개를 타고 전해지길, 그리고 앞으로를 함께 살아가는, 살아내는 힘이 되는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후기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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