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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갓난아기가 바라본 이쪽 세상

by 행성인 2013. 7. 18.


오소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넌 아직 애기야”


이쪽 친구들과 놀다 보면 종종 듣는 소리다. 행동이나 체형에 관한 소리가 아니라 이쪽 세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됐다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게이로 산지 막 6개월이 지난 말 그대로 ‘갓난아기’ 다. 지금부터 갓난아기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13년 1월 6일, 나는 눈을 떴다. 2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양수 속에 움츠려 있다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응애응애” 대신, “사랑해도 될까요?” 란 말을 하면서……. 


솔직히 양수 속은 답답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죄다 이성애중심적인 소리들이었고, 나는 여자를 좋아해야만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남자를 좋아했던 적도 있지만 그 주변의 소음들 때문에 그냥 동경이라는 감정으로 대체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런 지식도 없고 내 편도 없는 상황에서 “난 남자를 좋아해!”라고 했다면, 나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양수 속에서 움츠린 채 지냈을 것이다. 


그렇게 깜깜한 어둠 속에서 24년을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부신 빛이 보였다. 그 빛이 날 세상 밖으로 이끌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해주었다. 사실 그 빛은 너무나 밝아서 좀 벅차기도 했다. 24년을 어둠 속에서 지냈으니까. 그래도 그 덕분에 나는 지금 폭풍성장 중이다. 


그 빛은 나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빛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난생 처음 접하는 빛임에도 불구하고 두렵지 않았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기에 생각한다. 호모 포비아들도, 직접 접해본다면 바뀌지 않을까? 라고. 


사실, 이쪽 세계에 입문하고 나서 어리둥절한 적이 많았다. 일단 모르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다. 때짜니, 마짜니……. 이건 뭐 완전 갓난아기가 입을 떼는 수준이랄까? 한번은 이쪽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는데, 마침 파전에 막걸리가 땡겨서 ‘전 집’에 가자고 했다가 토끼눈이 돼서 놀란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전 집’이라고 하면 보통 종로3가의 게이들이 많이 가는 그 전 집이라고……. 


종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처음 친구들을 따라 종로의 어느 술집에 갔을 때, 나는 그 곳이 게이바 인 줄도 몰랐다. 그저 좀 비싼 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게이바 라는 것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남자들로만 꽉 차 있어서 놀란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어? 진짜 남자밖에 없네?” 그러고 나서 다시 술자리에 집중했다. 그 곳은 별다른 위화감이 없었다. 평소 생각하기에 게이들은 일반과는 뭔가 다르게 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른 술집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 포장마차에 가서 합석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솔직히 그 때의 나에게 그들은 너무나도 벅찼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히히. 


뭐, 용어나 문화는 어느 정도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왜냐하면 그건 나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해질래야 익숙해 질 수가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부정적인 시선을 접해 본적도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래서 어디서건 애인과 커플템을 착용하고 다니고 팔짱을 끼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 쪽 세계에 입문한지 어언 8년이 되어가는 내 애인님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결국 마찰이 있었고, 이제 밖에서의 스킨십은 자제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갓난아기’란 게 드러난다. 경험해보질 못했으니 두려울 게 없는 거다. 아기들의 위험한 장난이 다 그런 이유에서겠지.


사실 나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볼수록 오히려 더 당당해지고 싶고 당당해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그런 시선들을 피해 숨으면 숨을수록, 우리들 스스로가 숨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아는 형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그 성공의 큰 요인은 어느 웹툰 하나였다. <모두에게 완자가>라는 웹툰이다. 형은 그 웹툰을 보기 이전까진 ‘양과 음의 조화’ 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고,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마인드가 컸다고 한다. 그런데 웹툰을 보면서 점차 마음이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에 나를 지지해준다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마음을 돌릴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굳이 웹툰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조금씩 우리들을 보여준다면 언젠가는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는 누구나 겁을 내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를 양수 속에서 나오게 해준 그 사랑스런 빛처럼,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줄 빛이 되어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