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 (동성애자인권연대)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성소수자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멋진 모델들과 유명 인사를 대동하고 선상 파티를 즐기는 엘튼 존? 아니면 패션계에서 화려한 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크 제이콥스?
이제 게이 스타들의 아득한 안드로메다 같은 이야기에서 내가 발 딛는 땅으로 돌아와 평범한 게이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제 견해를 전해 드릴게요. 단, 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태클을 거셔도 어쩔 수 없지만, 마흔 평생, 아니 빠른 75년생이니 서른아홉 평생 제가 여러 연령대에서 느꼈던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셔도 된답니다.
제 평생에서 성소수자로서의 자각을 하고 일상에 게이적인 것들이 결부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랍니다. 마흔이 다 되어 가지만 게이로서의 나이는 겨우 이팔청춘이니까 춘향이와 이몽룡이 서로 만났을 때 정도 되네요. 하지만, 이런 자각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는 건 여러분도 다 이미 겪어봐서 아실 거예요. '데뷔' 후 16년 동안 제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홍석천 커밍아웃 지지모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만나게 되고, 다양한 회원들과 친해지고, 제 자존감이 상승하고 다양한 집회에 참여하면서 무지개 깃발 아래 당당히 같이 행진도 했으니까요.
반면, 게이 자존심이 높아갈수록 일상과 게이라이프(gay life)가 나뉘는 이중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간극에서 부모님께 게이라는 정체성이 알려지게 되면서 제 삶은 다중이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게이임을 알고 저를 포기하거나 화를 내는 상태이고, 사회생활에서는 언제나 '일반(이반의 반대말 - 웹진팀 주)' 코스프레(이게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를 주도면밀하게 이어나가고 있고, 동인련에서나 제 게이 친구들과는 불타는 금요일의 신나는 파티를 즐기고 있으니까요. 이런 다중생활에서 피로감과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나마 제가 게이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고, 삶을 앞으로 전진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사실 이런 일상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도 있으니까요. 불금을 즐기는 게이라이프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게이 커플이 공개적인 결혼을 선언하는 마당에 아직도 벽장에 자신을 옥죄는 성소수자들도 많습니다. 저 자신도 당당하게 처음부터 게이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게이로서의 인권에 관심을 두고 그랬던 건 아니랍니다.
물론 가끔 아직도 내 안에 고립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하고요. 특히 동인련 활동을 하다가 경제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는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경험도 있습니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말하듯이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기본적인 경제생활이 되지 않으면 사랑 찾는 일도 요원해지니까요. 그럴 여유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어지게 되면 그동안 나는 뭐하고 살았느냐는 자책과,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서른넷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 외에도 좀 더 해줄 수 있는 게 생겼어요.
물론 그렇다고 관계가 지속될까라는 두려움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사회적인 요구들이 생깁니다.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이가 생기고 등등….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스스로 가두면서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도 이런 부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정체성의 한계를 긋는 측면이 있는듯 싶어요.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른 이들보다 떨어지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온전한 개인들입니다. 누구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어요. 제가 이때껏 살아오면서 게이적인 것들이 결부되거나 결부되지 않았을 때에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행동지침은, 항상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었어요. 계급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군대라는 낯선 공간에서 먼지보다 작아지는 위축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다독이며 거대한 위력에 눌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지워져도 끝까지 내 인생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버티고 버텼답니다.
물론 지금 살 만해져서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온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거죠. 도전에 맞서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실패하거나 언제나 성공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있다잖아요. 그러니 나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게 자신의 삶의 미래라는 커다란 돌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거라고 저는 자신 있게 전하고 싶어요.
좀 더 구체적인 조언을 얘기해 드려야 하는데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되어 버린 듯하네요. 하지만, 그런 뜬구름을 잡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여러분에게 남은 미래라는 걸 잊지 마시고 오늘도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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