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소개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가시화되면서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부모도 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임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서로 위로하기도 하며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악화된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신앙과의 갈등에 대해,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대해, 어떤 고민이든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니까요. 



성소수자 부모모임 일곱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일시: 10월 17일 화요일 7시

장소: 동인련 사무실



참석: 


- 옥: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라라: MTF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은재 엄마: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은재: 레즈비언(부모님과 언니, 동생이 알고 있음)

- 모리: 게이(부모님과 누나들이 알고 있음)

- 달꿈: 레즈비언(부모님과 남동생이 알고 있음)

- 피터: 게이(가족에게 말하지 않음)

- 현진: 퀘스쳐너리(가족에게 말하지 않음)

- 루스키: 게이(가족에게 말하지 않음)


속기: 모리



모리: 반갑습니다.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 지난 한 달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야기하면서 시작할게요. 먼저 저부터 소개할게요. 모리라고 합니다. 스물 여섯 살 남성 동성애자에요. 3년 전부터 부모님과 누나들이 알고 있어요. 가족들과는 사이가 안 좋다가 부모님과 잠깐 화해 했다가 다시 사이가 안좋아져서 지금은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학생인데 요즘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현진: 현진이구요, 남성 퀘스쳐너리이고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 어머니는 양성애자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피터: 저는 피터에요. 남성 동성애자이고, 스물 다섯 살이고 대학생입니다. 위로 누나 두 명이 있는데 가족들은 아직 모르세요. 집에 개를 키우는데 개만 알아요. (웃음)


모리: 누나한테 이야기 할 생각은 없으세요?


피터: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어렸을 땐 뭐든지 다 이야기 했는데, 크니까 내가 좀 다르다는 걸 느끼고 나서는 선뜻 말하기가 힘들더라구요. 오히려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땐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알면 알 수록 더 말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달꿈: 달꿈이라고 합니다. 동인련엔 2, 3년 쯤 전에 처음 나왔어요. 여성 동성애자에요. 이걸 굳이 왜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어색하네요. 부모님들께는 커밍아웃을 했고, 11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는데 그 친구도 알고 있어요. 이야기하고 난 후로 다시 얘기를 하지 않게 됐어요. ‘하지 말아야지’라기 보단 민망해서 그런 것 같아요. 괜한 부담이랄까. 저도 좀 자신이 없기도 하고. 저도 이야기 안 하고 가족들도 좀 피하고 있고. 지금은 아무래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으니까, 부모님과 마찰이 없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관계가 더 소원해지니까. 

 방과 후 공부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공부방 아이들 부모님들 중에 사회 운동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신데, 최근에 먼저 얘기를 하셔서 말씀을 드렸어요.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셨어요. 오히려 제가 더 긴장을 했죠. 공부방 아이들한테는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어요.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물론 그런 소재로 이야기는 하려고 해요. 장애인 인권이나 다른 인권도 마찬가지이고.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이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고민이에요. 어린이들은 청소년과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옥: 서른 한 살 게이 아들을 둔 엄마에요. 아들이 가족에게 커밍아웃한지 8년이 지났습니다. 여동생한테 커밍아웃을 먼저 하고, 저한테 하고,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했어요. 몇 년은 아빠와의 관계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걸 잊고, 또 아빠가 원하는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아빠가 기분이 좋아지셨죠. (웃음) 오늘은 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게 내 삶 속에서 중요한 뭔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게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부모모임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서 안 읽었던 글도 읽어보고 왔어요. 내 삶 속에서 침체됐던 것들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루스키: 저는 호주 교포에요. 시드니에서 태어났어요. 동인련에서는 9년? 8년 쯤 전에 활동했었어요. 스물 여섯 살이에요. 열여섯살에는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민갔어요. 그래서 사실 호주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활동한 경험은 많지 않아요. 미국에서도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가서 부모님들을 만나본 적이 있어요. 근데 동양 부모님과 달라서 동양인 성소수자 가족이 겪는 걸 잘 이해 못하더라구요. 가족, 효, 유교 이런 개념들.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서양 부모님들이 잘 이해를 못 했어요. 한국에도 부모모임이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한국의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동양의 다른 나라의 부모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모리: 미국 부모님들이 이해 못하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어요?


루스키: 미국은 일단 개인주의가 강해요. 아들과 딸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게 한국에서는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고 여겨지잔항요. 미국에도 그런 인식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만큼 강하진 않아요. 문화적인 요소를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너가 다르면 다르면 되지 왜 부모님 상관을 하니?”하는데, 전 부모님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제가 행복하거든요.


현진: 저도 미국 교포 남성 동성애자 지인이 한 명 있는데, 미국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사람 이야기도 자기 친구들이나 한국 동성애자 친구들을 보면 가족 중심주의가 강해서 커밍아웃하기 힘든 것 같다고 했어요. 제 느낌으로는 교포 사회가 한국 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인 것 같아요.


루스키: 맞아요. 교포 게이보다 차라리 한국에 사는 게이가 나은 것 같아요. (웃음) 미국에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아시안이라고 또 소수자가 돼요. 미국이 개방적이라곤 해도 그건 백인들이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전 오히려 미국에선 한국 사람들 피해다녔어요. 학교에서 사람들이 제가 게이인건 다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인건 몰랐어요. 한국 사람 보이면 중국말 하면서 중국인인 척 하고. (웃음) 왜냐면 교포 사회가 너무 좁거든요. 부모님 귀에 바로 들어갈테니까.


모리: 미국에서도 여러 교포 사회 중에 한국 교포 사회가 제일 보수적이라고 하더라구요. 다 교회 다니고, 서로서로 다 알고. 그럼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에요?


루스키: 부모님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요. 제 자신이 좀 자립한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 더 잘 받아들일 시기가 있지 않을까. 좀 더 자리를 잡고 나면. 걱정 되는 건, ‘얘가 미국에서 자라서 미국 물을 먹어서 그런가’하는 생각 하면서 죄책감 가지실까봐. 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힘들 것 같아요. 영어로 커밍아웃 하는 것과 한국어로 커밍아웃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아임 게이!”하면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은데 “저 동성애자에요.”라고 하면 따라오는 그 부정적인 이미지들.


피터: 부모님이 혹시 종교를 갖고 계세요?


루스키: 교회에 잘 다니시진 않지만 기독교인이세요. 엄청 종교적이시진 않으세요. 


모리: 미국에선 TV에서 성소수자 관련 뉴스도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거 볼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때요?


루스키: 예전에는 “절대 동성애는 허용 못 한다.”하셨는데 최근엔 너그러워지신 것 같아요. 예전에 게이 타운에 갔어요. 엄마가 “이런데선 음식도 먹기 싫다”고 했어요. 벽에 붙어있는 게이 클럽 포스터 같은 거 보고 이게 뭐냐고, “얘네들 다 지옥에 가야돼!”하셨었거든요. 근데 언제 한번 외삼촌이랑 엄마랑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동성 결혼 관련 내용이 나왔어요. 외삼촌이 동성애자들에게도 결혼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했는데 엄마가 크게 반대는 안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한번은 엄마가 “넌 왜 여자친구도 없니? 너 혹시 게이니?”하고 농담조로 물어보셨는데 얼마 후에 두번째로 진지하게 또 물어보셨어요. 여자친구가 계속 없으니까. (웃음) 조금 더 심각하게. 그땐 아니라고 했어요. 죄책감도 있지만 엄마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이게 낫지 않을까. 


피터: 형제 자매는 있으세요? 


루스키: 형이 있어요. 형은 이성애자에요. 형은 아예 몰라요. 좀 개방적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형이랑 샌프란시스코 게이 타운에 갔어요. 어쩌다가 지나가게 됐는데 형이 “이런 곳도 있구나~” 했던 기억이 나요. 


피터: 근데 형이랑 같은 학교 다니셨으면 알지 않을까요? 저는 저희 누나가 알고 있는데 내가 말할때까지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거든요.


루스키: 형은 누나와는 다른 것 같아요. 형들은 좀 느린 것 같아요.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미국 가면 쉬울 거라고 하는데 사실은 소수자 안의 소수자가 돼요. 오히려 이해를 잘 못받아요. 한국에서 먼저 활동을 하다가 외국에 가서 그런지, 혼란스러웠던 게 내 커뮤니티 같다는 기분이 안 든다는 점이었어요. 1년 동안은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아시안 게이 학생들을 만나보니까 이게 문화 차이고 인종 차별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억압을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그 안에 또 다른 억압이 있겠나 생각했는데 있더라구요. 


(은재와 은재 엄마 도착)


모리: 은재님과 은재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짧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은재: 동인련 나와본 게 되게 오랜만이네요. 타투를 배워서 목동에서 타투샵을 하고 있어요. 손님이 오면 일 하고, 없으면 안하고. 원래 어머니랑 같이 오려고 한 게 아니라 아무래도 제가 있으면 어머니가 이야기를 잘 못 하실까봐 어머니만 오시게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장소를 알려드려야 하는데 잠들어버려서 전화를 못받았어요. 어머니가 한시간 반 기다리셔서 삐지셔서 같이 왔습니다.


은재 엄마: 안 삐지겠어요? 여기 바로 앞 카페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기다렸어요. (웃음) 저는 은재 엄마구요, 자식 일엔 어떤 쪽으로든 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아이에게 말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서로 오해하고. 아이가 이걸로 고민을 많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마음을 전하고 아이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었던 거지, 동성애자인 건 힘들지 않았어요. 단지 그 문제로 인해서 애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루스키: 멋있네요.


은재 엄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옥: 훌륭하시죠.


은재 엄마: 저는 애가 셋이에요. 다들 독특한데, 모두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존중하고 인정은 해주는데 다만 엄마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아이가 그 마음을 오해한 게 조금 힘들었지 동성애자인 걸 존중하는건 당연하게 생각해요. 뭐 다를 수도 있는 건데. 어쩌라고! (웃음)


옥: 언제 아셨어요?


은재 엄마: 애가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였어요. 2학년 때 농활을 다녀왔는데 그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저한테 이야기 했을 때,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되는데, 저도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고등학교 때 그런다.”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그때부터 저를 미워하기 시작한 거에요. 근데 나중에 그걸 진지하게 이야기했을 때 ‘아, 얘는 지금 심각하구나.’하고 깨달은 거죠. 근데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무슨 말만 하면 애가 오해를 하니까. 애가 막 저한테 욕도 하고, 제가 그래서 때리기까지 했어요. 애가 감정을 막 어쩔 줄을 모르고 저도 감당이 안 됐었으니까.. 숨기고 사는 사람도 있고 드러내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부끄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건 못해”, “저건 못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나는 동성애는 좋은데 연애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얘는 열 몇 살부터 연애를 하는 거예요. 왜 동성애만 꼭 연애를 해야하냐고. 


달꿈: 많이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웃음)


은재 엄마: 너무 일찍 연애를 하니까 다른 걸 못하는 거에요. 모든 걸 다 팽개쳐놓고 연애만 해. 엄마 입장에선 미치겠는 거에요. 만 20세가 넘으면 연애하라고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말만 하면 “그까짓 성인이 뭐라고, 20세가 뭐라고!” 그러면서 화를 냈어요. 연애와는 상관 없이 자기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그걸 놓치면 나중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동성애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 않은 게 좀 이상한진 몰라도. (웃음) 단지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연애를 하니까.. 그것만 좀.. 시간을 놓칠까 봐. 근데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아이가 최근에 처음 타투 한다고 그랬을 때 진짜 힘들었어요. 저는 이제 그거도 하나의 디자인/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얘로 인해서 참 많은게 예술이 되고. (웃음) 얘가 저를 많이 키운 것 같아요. 사회 인식을 바뀌게 하고, 우물 밖으로 나오게 하고. 처음엔 우물 밖으로 나온 제 모습을 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살았거든요. 이 아이로 인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됐어요. 참 많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런 신문지면으로만 보던 이야기들을 얘를 통해서 보게 됐어요. 동인련도 약자의 집단이기 때문에 자기 힘을 보태고 싶어서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동인련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가출한 애를 찾으려고 우리 나라의 사건 사고를 다 뒤졌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몇년 전부터, 참 신기한게 20살 넘으면서 좀 나아졌어요. 저는 동성애가 뭐가 어때서 7년 동안 나를 이렇게 힘들게 했는지 그게 궁금한거지, 단지 다른 모습이라고 해서 틀린 건 아니잖아요. 


루스키: 따님에 대해서 친척분이나 주위 분에게 이야기하신 적은 있으세요? “남자친구가 왜 없니?” 같은 질문도 들어오곤 하잖아요.


은재 엄마: 우리 집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존중. 딱 한번 저희 언니가 은재가 집을 나가서 연락이 안되던 시절에 “걔가 똑똑한 애니까 잘 해나갈 거다.” 한마디 하고 말았어요. 


루스키: 친척분 아니어도 다른 분들은 어때요? 따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은재 엄마: 보호해야죠. 근데 별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적은 없어요. 왜냐면 얘가 늦둥이에요. 정말 애가 저한테 그렇게 기쁨일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저희 친정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저는 얘한테 미쳤대요. 가끔 친정 엄마가 은재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하고 딱 자르거든요.

 은재는 중졸이에요. 중졸을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걱정이에요. 학교를 다니진 않아도 공부는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게, 제가 살아가는데 공부가 필요하더라구요. 전 육십이 코 앞인데 지금도 공부해요. 근데 얘가 지금 자기가 안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웃음) 저는 나를 방어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게 공부라고 생각해요. 지식으로 무장을 하고 있으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백가지 천가지가 될 수 있고, 내가 방어할 수 있는 진지 구축을 하는데 공부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은재를 보니까 타투가 돈이 좀 되겠더라구요. (웃음) 근데 지식이 그 돈이 되는 시간을 길게 만들어줘요. 인생을 사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근데 본인이 굳이 안하겠다고 하면 어쩌겠어요. (웃음) 엄마의 기대 속에는 아직도.. ‘얘가 이걸 정말 잘했는데’, ‘좀 더 잘했는데’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핑계 대지 말고, ‘이 세상이 나를 어떻게 봐, 나는 이래’하는 생각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은재는 선생님들이 기대를 엄청 많이 하는 아이였는데 어느날 학교를 뛰쳐나갔어요. 얘한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본인이 행복해야한다고.

 얘 아버지 얘기를 할까요. 아빠가 외국에 계세요. 아빠는 진짜 공부 밖에 몰라요. 아버지가 딸한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못 묻는 거예요. 저한테 전화를 해도 절대로 중요한 부분은 안 물어봐요. 일상만 묻고. 왜냐면 나머진 애를 믿는 거에요. 너무 자랑했나. (웃음)


현진: 성소수자 청소년은 학교에서 많이 힘들어하잖아요. 은재님은 어땠어요?


은재: 열 일곱살 때 자퇴를 하고 열 아홉살 때 다시 학교에 가야겠다 해서 학교에 다시 입학을 했는데 모히칸 머리를 하고 갔어요.


은재 엄마: 입학식에 갔는데 ‘우리 학교는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어쩌구 저쩌구 그랬대요. 애가 그 소리를 듣고 모히칸을 했대요. 너무 속상해서 그 미용실을 1년 가까이 안 다녔어요. 굳이 그렇게 눈에 띄게까지 해야 했나. 학교에 불려갔죠.


은재: 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이 “장애인과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써서 차별적이라고 했고, 제가 동성애자라고 했더니 수업 못 듣게 하고 계속 불려갔어요. 


은재 엄마: 애가 인권단체 다닌다고 하니까 고발하면 큰일 나잖아요. 그래서 어쩌지도 못하고 나를 부른 거에요. 제가 그랬어요. 얘는 나를 닮아서 자기 하고 싶은 소리는 하는 애다. 애가 잘못을 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하라고. 애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구요. 학교 그만 둘 때도 아빠가 자퇴서에 자발적인 자퇴라고 썼다가 애가 노발 대발을 하면서 다 다시 고쳐 썼어요. 학교가 이러저러한 문제를 갖고 있어서 도저히 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고.


은재: 수업을 못 듣게 하니까. ‘너가 레즈비언이라고 밝히는 건 문젠데, 처벌 받아야 하는 일인데,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거에요.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 거에요.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불려가기만 하고. 혼내긴 해야겠는데 이유를 모르는 거에요. 


은재 엄마: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다 질문을 한 거에요.


은재: 도덕, 가정 이런 과목 선생님들한테 가족구성권 관련 책을 드렸어요. ‘이거 한 번 읽어보시라.’ 


현진: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보면 ‘생애주기’에 ‘이성과의 결혼’ 이런거 나오잖아요. 저도 수업 시간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말을 했었거든요. 


은재 엄마: 학교에서는 굉장히 보편적인 것만 가르치잖아요. 단지 얘를 통해서 느낀 건 이거에요. 보편적이지 않은 부분도 사회에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 봉사를 했는데 장애인 본인은 얼굴이 밝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 부모님들은 어두운 분들이 많아요. 뭔가 보편적이지 않은 걸 받아들이기에는 부모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게 보편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지 인정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집단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일단 내가 행복하고 나랑 같은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런 연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루스키: 그럼 따님이 커밍아웃할 때 어머니 입장으로서 힘들었던 게 어떤 거에요?


은재 엄마: 성 정체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게 힘들었던 게 아니고, 자기의 모든 걸 거기에 걸까 봐 그게 힘들었던 거에요. 요즘 독신주의자도 얼마나 많은데 그게 뭐 대수라고. 


(라라님 도착)


모리: 라라님이 오셨습니다. 짧게 자기소개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부탁드려요.


라라: 저는 라라구요. 부모모임에 온 지는 4개월차 됐어요. 저희 아이는 MTF 트랜스젠더. 21살이에요. 지금 본인하고 저하고 이야기를 해서 성전환 수술 준비를 하고 있고 호르몬 두 번 정도 맞았고. 저번 모임을 빠져서 두 달만인데요, 제가 인천에서 일도 하고 강의도 가야 해서 애한테 제 일을 알바로 줬어요. 제가 여기 모임에 7월달에 처음 왔을 때는 아이 정체성을 몰랐어요. 그냥 좀 여성스러운 애인지, 게이인지. 애가 저한테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아서 그 날 “너는 게이야, 아니면 트랜스젠더야?”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자기는 트랜스젠더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럼 수술을 할 거냐고 물어봤는데 힘들거라고 남자친구가 싫어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저한테 이야기를 하고 난 그 다음 주에 10만원 주고 알바를 또 시켰어요. 근데 그 전까진 예쁘게 옷은 입어도 여자 옷은 안 입었는데 그날은 완전히, 여자같이 하고 온 거에요. (웃음) 이제 엄마가 알았으니,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할 때처럼 하고 온 거에요. 직장에서는 다 자기가 여자인 줄 안대요. 핫팬츠 입고 토끼 리본 머리띠 하고 온 거예요. 마음을 열고 자기 표현을 하게 된 거라 좋아요. 엄청 밝아지고 말도 많고 그렇더라구요. ‘아, 이제 소통이 시작됐구나.’ 싶었어요. “엄마, 호르몬 주사를 맞았더니 가슴이 아파.” 그런 이야기까지 하게 됐으니. (웃음) 목젖이랑 다리 수술 먼저 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건 얼마 안되니까 돈 벌어서 해라.”그랬어요. (웃음) 미용 일이 힘들어서 수술 완료할 때까진 알바만 하겠대요. 피씨방에서 밤에 일을 해요.


달꿈: 저는 라라님을 처음 봬서 부모모임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라라: 주변에 이걸 터 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고, 경험하신 분들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받고 싶었던 거죠. 검색을 했어요. 원래 대전에 사는데 서울 중심으로 이런 모임이 많잖아요. 근데 마침 4월부터 인천에 있게 되어서, 한번 해봐야겠다 생각했죠. 


은재 엄마: 전 우리 딸이 여기 오자고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현진: 보기 좋은 것 같아요.


라라: 저는 딸한테 같이 오자고 했더니 걔는 외모에만 관심이 있지 이런 덴 관심이 없대요. 아직 어리기도 하고. 학창시절도 굉장히 힘들게 다녔어요. 중학교 다닐 때부터 홈스쿨링을 했어요. 혼자 서울 생활 4년 차에요. 그거 보면 엄청 독종이에요. 내려와 살라고 그래도 절대 대전엔 안 온대요. 


은재 엄마: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따로 살아요. 그럴 땐 아직도 얘한테 편하게 못해준 게 있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라라: 저도 같이 안 사니까 더 편해요. 


은재 엄마: 저는 불편하고 그런 거 전혀 없는데, 형제들끼리 부딪히고 그런 게 좀 있더라구요. 지금은 다 예민할 수 있어서.. 저는 나중에 얘랑 같이 살고 싶어요. 왜냐면 얘가 마음이 조금 넓어요. (웃음) 


달꿈: 자녀분이 커밍아웃하기 이전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그런 건 없으셨어요?


은재 엄마: 부정적인 건 없었고 참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홍석천 때도 ‘어머, 남 개인사에 뭐 저렇게 관심이 많나’ 했어요. 저는 종교가 기독교는 아니지만, ‘누가 사마리아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하는 말이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하리수 얼마나 예뻐요. 그 분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의지가 대단했겠어요. 왜냐면 자기가 어떤 걸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모리: 라라님 자녀 분은 트랜스젠더인데, 어릴 때 하리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라라: 하리수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하리수가 처음 데뷔할 때 가수로 데뷔했어요. 춤도 섹시하게 하고 긴 노란 머리하고. 티비 앞에 가서 너무 예쁘다고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여섯 살 일곱 살 정도였는데. 그 이후에도 걸그룹 뮤직비디오 보면서 춤추는 걸 좋아하더라구요. 


모리: 은재님은 부모님께 커밍아웃은 어떻게 했어요?


은재: 중학교 때 혼자서 엄청 끙끙대다가 죽으려고 약을 모아서 먹었어요. 아무 약이나 모아서 먹었는데 배만 엄청 아픈 거에요. 근데 엄마가 엄청 울면서 무슨 힘든 일 있냐고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거든요. 엄마 얘기를 전 어떻게 들었냐면 “나중에 되면 괜찮아진다”, 하고 들은  거예요. 저희 집은 굉장히 가족이 끈끈한 집인데 처음으로 가족으로부터 부정을 당했다고 생각한 거에요. 


은재 엄마: 그 사건으로 인해서 얘랑 몇 년 동안을.. 별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5년 가까이 얘기를 안 했어요. 투명인간 취급을 하더라구요. 지금도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거 만회하느라고 공을 엄청 들였어요.


은재: 굿도 했어요.


은재 엄마: 집에 안 들어와서.. 다리 다쳤을 때였는데 계룡산에 목발 짚고 가서 굿도 했어요.


라라:  아이가 사춘기이면서 본인 정체성도 있고, 여러가지로 힘든 과정이었을텐데, 저는 그냥 학교 적응을 못하고 성격이 특이하구나, 저도 직장 다니고 너무 바쁘고.. 그냥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사실 대화를 잘 못했거든요.


은재 엄마: 저도 대화를 많이 못했는데, 얘는 뭐든 잘했거든요. 뭘 시켜도 잘하더라구요. 중학교 3학년 때도 학교 대표를 했고. 애가 성격이 담대하고 말수가 적어서 든든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본질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게 아쉬워요.


라라: 근데 빨리 알 수 있는 힌트 같은게 정말 없어요. 그래서 그냥 적응을 잘 못하는 성격인가 보다, 애가 여성적인 건 애기 아빠도 별로 남성적이지 않아서 그냥 유전적으로 아빠를 닮았나 보다 했는데, 그게 다 이런 원인이었던 거죠. 저희 애도 집을 나간 적이 있어요. 이유가 너무 웃겨요. 머리 안 깎으려고. 추석이라서 할머니 집에 가야하니까 제가 머리 깎으라고 그랬거든요. 할머니가 “쟤 머리 안 깎이냐?” 하는 말 하는게 싫어서, 내가 편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학교 안 가려고 한 것도 교복이 너무 입기 싫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현진: 그저 교복을 입기 싫었던 게 아니라 남자 교복을 입기 싫었던 것 아닐까요?


라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혼란의 시간을 너무 길게 보낸 것 같아요.


은재 엄마: 엄마가 무식한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모리: 이제 시간이 늦어져서 오늘 모임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소감을 말씀해주시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분은 분들은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은재 엄마: 저는 오늘 멋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서 앞으로는 분위기 파악 하겠습니다. (웃음) 특별한 게 아니라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일원이고,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 더 관심이 있지 않겠어요? 앞으로도 더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루스키: 도움 많이 됐어요.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오해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좋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건데 부모님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커밍아웃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또 들어보니까 엄마 아빠가 너무 화를 내도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엄마들 일동: 맞아.


라라: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웃음)


피터: 원래 계속 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돼서 못 왔었어요. 힐링이 된 것 같아요. 저도 아직 부모님에게 말할 준비가 안 돼 있고, 막막한 느낌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해를 해주시는 부모님도 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좋은 것 같아요.


옥: 저는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남편 입장이 이해가 됐어요. 저는 무조건 들어주는 편이었어요. 아빠는 대립이 심했어요. 이유는 그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다르게 사는 게 걱정됐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분들도 부모님들 걱정이 사랑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너무 낙담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오늘 참 좋았습니다. 


라라: 일찍 못 오고 매번 시간을 어기게 돼서 죄송하구요. 너무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소에 저도 일을 하고, 학교에 작은 학부모 모임들 뭐 이런 만남을 가지면서 생활을 하잖아요. 근데 만나도 어떤 누구도 우리 큰 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은 이야기를 좀 하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 아이를 좀 불쌍해하면서 이야기해요. 난 아닌데. 여기 오면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해요. 그래서 계속 와요.


달꿈: 저는 라라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듣고 싶었는데요, 사실 성소수자들도 자기 정체성 고민할 때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스스로에게도 여지를 주거든요. ‘아닐거야…’, ‘내가 여고에 있어서 그럴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정을 하려고 하고. 저는 ‘아, 내가 그게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엄청 울고. 어머니들도 그런 갈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오신 분들은 너무 잘 받아들이신 것 같아서 되게 놀랐어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구나. 놀라우면서도 지지 받는 느낌도 있어서 묘한 감동이 있었어요. 힘도 받았고. 


라라: 말씀하시는거 들어보면서 생각이 드는 게, 성소수자가 더 많이 오픈이 되면 좋겠어요. 저는 20대 때 레즈비언 커플 친구가 있었어요. 친구가 홍대에서 L파티(레즈비언 파티)를 한다는 거에요. 레즈비언 바에서 했는데 거기 가서 재밌게 술 마시고 놀고 그런 기억도 있었어요.


모리: 그게 몇년도에요?


라라: 2005년? 2006년? 그 쯤이에요.


은재 엄마: 저 같은 경우는 직장 생활할 때 남녀를 구분하는 것에 굉장히 예민했어요. 90년대 초에 직장을 그만뒀는데, 저는 여자라서 차별 받았다는 생각을 안하는 게, 저는 투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애가 학교에서 그럴 때도 완전히 이해가 갔어요. 여자라서 억울한 일이 우리 어릴 때는 정말 많았거든요. 저는 얘도 그렇게 키웠던 것 같아요. 


은재: 물론 제가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고, 장기간 동안 서로 상처를 받았어요. 하지만 엄마도 계속 노력을 하셨고, 학생인권조례 투쟁할 때 시청 점거 농성장에 오셔서 발언도 하고 그러셨거든요. 거기 어떻게 오셨냐면 그날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화를 냈어요. 난 이런 대우 받고 있는데 엄마는 뭐 하고 있냐고. 그때 엄마가 와서 발언을 해주셨어요. 


은재 엄마: 잠깐! 저는 그날 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저는 대구에 여행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애한테 전화가 와서 막 퍼붓는 거에요. 근데 전화 너머로 그 학부모들이 함부로 말하는 게 다 들리더라구요. 전화를 끊었는데 안 끊어져서 그 소리를 대구에 내려가는 내내 들었어요. 그래서 큰딸한테 전화해서 얘 어디 있는지 조사하라고 해서 바로 달려갔어요. 그때 뭐라고 발언했냐면 ‘나는 여기서 뭘 외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자기 소신에 따라 말하는 것이라면 그걸 지지한다’고 했어요. 그때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학부모 연대고 지랄이고 애들한테 그렇게 퍼붓는 게 말이 돼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때 애가 저에 대한 마음을 좀 연 게 아닌가 싶어요. 


은재: 엄마가 많이 노력을 한 것도 알았고, 저를 위해서 혼자 힘들게 살아온 시간들이 있잖아요. 마치 내가 여기서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들을 만났던 것처럼, 엄마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좀 아쉬운 건, 괜찮다고만 말씀하시는데 분명히 힘들었을 거란 말이에요. 힘드셨던 것들 이야기를 좀더 솔직하게 많이 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셨던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제가 오늘 같이 오지 않으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거든요. 힘을 내려면 자기 감정을 버릴 수밖에 없잖아요. 이 모임을 통해서 한 템포 쉬실 수 있으시면 좋겠어요. 


은재 엄마: 저는 요즘 얘가 타투 한다고 자기 몸에 그림 그리는 게 더 마음 아파요. 얼마나 아플까 생각을 하면.. 제가 대신 해주고 싶어요.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걸 핑계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 이래서 이거 못해’, ‘나 이거 안해’. 그러면 스스로가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진: 전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고, 많은 분들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소수자 자녀를 지지해주시는 부모님이 많았던 게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모리: 저도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 달 모임은 11월 21일 금요일(매월 세 번째 금요일)입니다. 다음 모임 때 뵈어요!


성소수자 부모모임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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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30 21:26 신고 [Edit/Del] [Reply]
    은재 어머님 이야기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저런 어머니를 갖고싶다는 생각 참 좋은 어머니를 두어서 부럽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른 분들 이야기도 각각 많이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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