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권(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

 


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 옆지기와 대만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화끈하고 화려한 파티와 퍼레이드로 소문난 ‘대만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 (Taiwan LGBT Pride)’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몇몇의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 게이 친구들이 퍼레이드에 함께하고 SNS에 올리는 사진들과 무용담을 보고 들으며 꼭 한번 가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시먼 지역 홍루 극장 옆에 즐비한 게이 술집에 앉아 술한잔 마시며 ‘종삼 포차 런웨이’ 걷듯이 오가는 게이들이 보고 싶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대만을 여행하는 게이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저가항공이 생겨나 조금은 여유있게 찾을 수 있고 여러 클럽 파티들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며 ‘좋아요’ 몇 백 개씩 받는 벌크, 근육, 베어 게이인 페북 셀럽들도 있거니와 케이블 tvN ‘꽃보다 할배’로 소위 뜨는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갈 수 있는 곳, 게이들에게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이나 아시아 성소수자들에게 대만이 편하고 매력적인 곳이 된 것은 아니었다. 대만은 2002년 남성 동성애자 군복무와 관련한 대체복무제도가 논의되었고 2007년 대만 의회는 고용, 노동에 있어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더불어 2003년 교육에서의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2010년부터는 대만 교육부는 ‘차별의 근간을 밖으로’, ‘관용과 존중의 환경에서 학생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이란 슬로건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교과서에 대해 담으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이기도하고 사회적 인식 변화의 토대가 되었다. 2006년 대만여성협회연합(National Union of Taiwan Women's Association/Constitutional)가 6,400여명의 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5%가 동성애자의 결합(관계)에 대해 허용한다고 밝혔고 2013년 설문조사에 의하면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에 대해 53%가 수용하며 76%가 성소수자의 동등한 권리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대만 성소수자들은 동성결혼과 입양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2011년 약 80명의 레즈비언 커플과 친구, 가족들 1,000명이 함께하는 대만 역사상 가장 큰 동성결혼 파티가 열렸고 2012년에는 첫 번째 불교식 레즈비언 커플의 동성결혼이 행해지기도 했다. 현재 동성결혼법안은 대만 의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대만에서는 성소수자를 동지同志(Tóngzhì)로 부른다. 남한 땅에서는 운동권들만 쓰는 단어가 퍼레이드를 알리는 방송 내내 들리니 신기하기도 했다. 대만의 ‘동지’들은 언제부터 자긍심 행진을 시작했을까? 막상 정보가 별로 없어 위키를 찾아보니 ‘1990년대 중반부터 대만 성소수자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퍼레이드에서 함께했고 2002년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에 대항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11월 1일에 첫 번째 퍼레이드가 열렸다’고 나온다. 아마 여성 운동과 함께하며 거리에서 외치는 차별 반대의 목소리, 여러 다른 나라의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으로 지금의 퍼레이드가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은 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며 성장했고 마잉지우, 쳔슈이볜의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평등한 권리를 위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퍼레이드에 직접 참석해서 연설을 했다. 국가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발의해 놓고 동성애 혐오 조장 세력에 밀려 철회하는 한국의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아마 성소수자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대만 타이페이 시내 중심부에서 열린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의 사진을 살펴보자!

 



 

퍼레이드 집결지는 제주 4.3 항쟁의 아픔과 비슷한 대만 원주민(본성인)들의 항쟁을 추모하며 만든 2.28 평화 기념 공원 근처, 총통부 앞 대로였다. 서울처럼 퍼레이드 전 다양한 단체의 부스를 찾아보기는 힘들었고 오히려 다양한 코스프레를 한 성소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여러 단체의 깃발들이 펄럭였다. 학생모임, 레즈비언모임, 성소수자 의제를 로비하는 단체, 동성결혼과 입양권 활동 단체도 있었다. 베이징, 홍콩에서 온 성소수자들의 깃발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온 베어게이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도쿄 지역에서는 트럭까지 마련해서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6만 5천명이나 참여했고 하나의 코스로는 감당하기 벅차 행진 코스를 남/북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모인 사람들은 도로 한 복판의 무대를 바라보고 모였다. 중국어를 모르기에 이제 다 구경했으니 숙소로 향하며 그 무대 쪽으로 향해 걸었고 거의 다다를 무렵 무대에는 노란색 우산과 노란색 리본 그리고 퀼트로 엮은 무지개 깃발을 든 사람들이 올랐다. 무어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 오른 연사의 발언에 참가자들은 환호했다. ‘타이완 짜요~ 000 짜요~’하는 소리를 들으니 홍콩 우산 혁명 참가자인 듯 했다. 아무래도 중국의 정치적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홍콩과 대만이고 현재 벌어지는 민주화 투쟁에 큰 힘을 보내려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뭐 정치적 상황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줄 서 있는 발언자들을 보니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자녀와 부모로 보이는 성소수자들을 보니 발언을 기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이것이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의 정신이 아닐까.

 

저녁마다 시먼홍루극장 안쪽 게이 아케이드를 찾았는데 평생 볼 베어, 근육 게이들은 다 본 듯 했다. 가슴과 팔뚝에 근육이 없으면 공기 취급 받겠구나 싶었다. 모히칸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팔과 가슴에 빵빵한 근육을 담고 있는 베어 근육 게이들을 유독 많이 볼 수 있었다. 아시아권 게이들의 경향성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운이 좋게도 뉴욕 그리고 대만에서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 함께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동성애 혐오 세력에 맞서 동인련 ‘고고보이즈앤걸스’들과 춤추며 마이크를 잡고 트럭에 올랐다. 세 곳의 퍼레이드에 함께하며 내 맘대로 비교를 해보자면 흥과 기갈에 있어서는 서울을 따라 올 곳은 없다. 같은 언어 같은 감정 같은 상황이기에 그랬겠지만 흘러나오는 노래에 몸을 맡기며 트럭을 따라 참가자와 구경하는 이들을 나누지 않고 열린 행진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

 

뉴욕은 단체 참가자들만 행진에 함께하며, 너무 거대해지고 상업화되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계급, 인종에 따른 성소수자들의 요구들이 거리에서 외쳐지며 환영받는 모습은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퍼레이드를 이어오는 대만처럼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바람들을 피켓과 자신의 코스프레에 담아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 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알리는 행동이 서울의 ‘퀴어퍼레이드’에도 가득하길 바란다.


올해 동인련이 들고 나간 ‘세월호 참사 책임져라! 박근혜 퇴진!’ 피켓을 보고 ‘축제에 그런 피켓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창피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겐 1969년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이 생겨난 스톤월 항쟁처럼 평등한 세상은 거리에서의 싸움에서 시작된다는 정신을 ‘축제’를 통해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늘 그래왔듯이 동인련이 앞으로도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행진에 더욱 자신감 있게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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