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각국 면적을 핵탄두 보유량에 비례하게 그린 세계 지도(출처: http://www.worldmapper.org/)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지구가 뜨겁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도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선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된 뒤 22년 만에 한미 양국이 전투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한미연합사단을 창설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도 주변국들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구 상에서 총성이 멈춘 적이 있었겠냐만은, 최근 재점화되고 있는 핵 강대국(아니면 핵 독점국?)들의 폭력적인 갈등은 전 인류를 또다시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1950~1953년 한국에서의 전쟁이 그랬듯, 2014년 올해 제국주의 세력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시작했다. 물론 우리는 ‘내전’이라고 쓰고 있지만 말이다. 우크라이나 정치 투쟁의 역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민족, 언어, 지역감정, 그리고 각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재벌들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우크라이나 권력 투쟁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국내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이 국제 관계다. 서쪽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라는 서방 제국이, 동쪽에는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지도(출처: http://www.ktoo.org/2014/03/03/after-entering-crimea-where-will-russia-stop/)
우크라이나에서는 2004년 말 부정 선거 논란으로 ‘오렌지 혁명’이 발발, 재선거가 실시되어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신 친미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국민들은 부패 척결과 유럽 통합을 기대했지만, 친서방 세력 내부의 분열로 인한 정치 불안, 러시아와의 갈등, 2008년 경제 위기 등으로 국민들은 이내 정부에 등을 돌렸다. 2010년 초에 치러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한 유셴코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 5%를 겨우 조금 넘겼고, 2004년에 유셴코에 패배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1차 투표에서 약 35%, 2차 투표에서 약 49%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빅토르 유셴코(좌)와 빅토르 야누코비치(우)(출처: http://www.rferl.org/content/Unloved_But_Unbowed_Ukraines_Viktor_Yushchenko_Leaves_Office/1967436.html)
그런데 야누코비치 정부가 작년 2013년 말 유럽연합과의 협력 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친서방 정책과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정부가 시위자들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자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수많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도 개혁과 변화를 바라며 거리로 나갔다. 현지 LGBT 단체들은 “우리는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유권자로서, 그리고 지성인으로서 키예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의 마이단(광장)에 나간다. 우리의 안녕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 반정부 시위 장면(출처: http://zn.ua/UKRAINE/absolyutnoe-bolshinstvo-uchastnikov-maydana-gotovy-stoyat-do-pobedy-135880_.html)
2014년 2월 많은 사람들이 소치 동계 올림픽에 열광하고 있을 때 우크라이나에서는 시위와 탄압이 격해져 사상자가 증가했다. 유혈 사태가 심각해지자 우크라이나 선수 일부는 조기 귀국하기도 했다. 소치 올림픽에 남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자국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취지로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출전하려 했으나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금지한다며 이를 막아섰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 제정 이후 소치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해 온 LGBT들, 화려한 패럴림픽 뒤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장애인들, 올림픽 경기장 건설에 동원됐으나 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고 착취당한 노동자들, 그리고 국가 폭력으로 인한 자국민들의 죽음을 전해 듣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눈물은 자본과 권력의 중심 IOC에게 금지된 것이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패럴림픽 폐막식에 ‘평화’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등장한 우크라이나 선수 류드밀라 파블렌코. 그녀는 셔츠에 적힌 문구 때문에 폐막식에 나가지 못할 뻔했다고 한다.(출처: http://censor.net.ua/photo_news/276179/znamenostsa_ukrainskoyi_sbornoyi_za_nadpis_mir_pytalis_ne_dopustit_na_tseremoniyu_zakrytiya_paralimpiady)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가운데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수도 키예프를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월 23일 의회는 대통령을 축출하고 조기 대선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약 1주 후인 3월 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상원에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력 사용 승인을 신청하여 즉각 승인을 받아냈고, 3월 16일에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공화국이 주민 투표를 통해 러시아로 귀속됐다. 4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 지역이 독립을 선언했다.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며 ‘경제 제재 전쟁’을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선 ‘내전’이 시작됐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고, 난민은 공식 집계로만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한국 시간으로 2014년 9월 5일 밤) 우크라이나 정부, 반군,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대표가 휴전 의정서에 서명하여 사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그러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아아.)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을(출처: http://job-sbu.org/pogibshie-mirnyie-zhiteli-i-razrushennyie-doma-posle-bombardirovki-donbassa-02-07-14-18-45425.html)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전쟁터에 끌려간 병사들의 어머니와 부인들은 거리로 나와 도로를 봉쇄하며 절규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무작정 떠났다. 도시에 남은 이들은 지하에 숨었다. 이런 처절한 조건 속에서 혐오와 적대감은 하늘을 찌른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종종 이중의 폭력과 고통을 겪게 된다. LGBT, 즉 성소수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LGBT는 교전 중인 양측의 선전에 의해 엄청난 혐오를 조장당하고 있다. 정치적 적수를 ‘게이’라고 부른다거나, 적군에게 ‘호모’라고 하거나, “쟤네들이 이기면 우리나라는 게이 퍼레이드만 하다가 망할 것이다”라는 도발들은 이제 일상사가 됐다. 성소수자를 직접 겨냥한 혐오 범죄 소식도 종종 보도되고 있다. (물론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무가 쓰러지면 온 동네가 난리났지만, 이젠 누가 죽고 어떤 마을이 폭격을 받았다 해도 무감각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수도 키예프에 사는 청년이 고백한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에서 탈출해 무작정 수도 키예프로 온 한 게이 청년의 이야기는 더 비참하다. 밤새 폭격이 이어져 지하에 숨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는 무작정 도망쳤다. 물론 도주는 위험했다. 무장 세력에게 발견되면 곧바로 참호를 파러 동원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수도 키예프에 도착한 그는 이제 10~12명과 함께 산다. 감자와 마카로니로 끼니를 때운다. 일자리는 없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급여는 줄고, 월세는 거꾸로 올랐다. 교육과 경제적 기회의 도시는 굶주림과 방황의 도시가 됐다. 목숨을 걸고 이 도시에 이른 게이 청년은 무기에 의해 파괴된 고향과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시의 경계에 놓이게 됐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작년 말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에는 좌에서 우까지, 아니 극좌에서 극우까지,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이 참가했다. 변화,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을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혁명의 현장에 국가 폭력과 자본, 즉 술과 마약과 무기가 침투하여 혼란이 가중됐다. 새 정권에는 노골적인 폭력을 드러낸 ‘우파 진영’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참여했다. 자신의 영향권을 침범당했다고 간주한 러시아 제국주의와 세력 확장을 통해 헤게모니 상실을 어떻게든 미루어 보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싸움이 일어났다. 새로운 정권하에서 인권을 약속받았던 LGBT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올해 성소수자 자긍심 집회는 사실상 금지됐다. 외국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전쟁터에 끌려가거나 도시에 남은 노동자, 병사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블랙워터 같은 용병 업체나 무기 판매자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개인 무기 밀매상이 번창한다고 해도 세계 최대의 무기 공급자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이다. 이들은 세계 평화를 담보한다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사실상의 핵 독점국이기도 하다.)
2014년 7월 성소수자 집회인 평등권 행진이 취소(사실상 금지)된 뒤 기자 회견을 개최한 LGBT 활동가들(출처: http://podrobnosti.ua/society/2014/07/04/983400.html)
정부의 탄압을 받는 ‘가엾은’ 러시아 LGBT에 연대한다며 갖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게이 포르노 회사 사장 마이클 루카스는 이번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지지한다고 공언하며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레바논 침공 때도 같은 행보를 보인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인권과 연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라이드’를 선전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말하는 자긍심은 대체 무엇을 뜻할까? 전쟁과 폭력을 부추기는 자들이 말하는 ‘인권’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 공포, 불안감, 적대감의 틈새에서 사람들의 피눈물로 먹고 사는 자들에 맞서 연대해야 한다. 전쟁과 점령과 학살에 맞서는 것, 그것이 LGBT를 포함한 모두의 인권을 위한 길이다. ‘인권’을 내세운 ‘폭격’, ‘평화’라는 이름의 ‘학살’, ‘애국’을 위한 ‘차별’과 ‘혐오’. 너무 지긋지긋하다.
2014년 9월 4~5일 웨일스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PS. 9월 12일(금) 저녁 7시부터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가자 지구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집회(촛불문화제)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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