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015년 4월 4일
누구(사는 곳): 재경(서울) 모리(서울) 코멧(대전) 레놀(대전)
어디: 대전 대흥동 느린나무


재경: 안녕하세요! 수다회를 시작할게요. 코멧님은 서울에 사시다가 대전으로 내려오신 거죠?

코멧: 네. 대전에서 살기 시작한지는 정확히 딱 1년이 되었어요.

재경: 무슨 일 하세요?

코멧: 사무직인데요, 일반 사무직이라고 할 순 없고 문화 기획 일을 하고 있어요. 대전 작가나 문화 예술 기획자와 같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다기 보단 회사에서 필요하니까 하고 있어요.

재경: 언제 퀴어들을 만났고, 정체성을 깨달았나요?

코멧: 그게 5년 전인데 연애 시작하면서예요. 그 전에는 딱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거부감도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영희와 철수는 짝으로 나오는데 영희와 순이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고백을 받았을 때도 아무 거부감이 없었어요. 그저 아름다운 것이었죠.

레놀: 저는 대전에 산지 15년 정도 됐어요.

재경: 터줏대감이네요! 지방 토호? (웃음)

레놀: 지금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처음 성정체성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 학원 다니던 남자애가 저를 되게 좋아했는데 그게 싫지 않았어요. 심지어 걔가 생긴 것에 대해 관심이 가고, 걔가 왠지 예뻐보이고, 눈앞에서 걔에 대한 성적인 상상도 했었어요. 근데 막상 친구가 친구가 "쟤가 너 좋아하는것 같다"고 했을 때 저에겐 동성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에이, 그런 게 어딨어~"라고 하면서 넘겼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첫사랑을 하면서 5학년 때 그 애가 생각났어요.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하게되었죠.

재경: 저는 광주에 있을 때는 이성애자의 삶을 살다가, 서울에 와서 처음 여자를 사귀었어요. 그때 너무 기뻐서 사람들한테 막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코멧님 같은 경우엔 서울에서 대전으로 왔잖아요. 일 때문에 오신 거죠? 와서 살아보니까 어땠어요? 대전이 본인과 맞아요?

코멧: 완전히 일 때문에 온 건데, 저랑 잘 맞는 부분도 있어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서울보다 덜 북적거리고, 여유도 있고. 제일 좋은 게 대전이 계획 도시여서 산책하기 좋은 길이 많아요. 그런 게 제 생활 패턴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서울이 생활이 편리한 도시라면 대전은 생활하기 좋은 곳.

재경: (레놀에게) 동의하세요?

레놀: 엄청. 백퍼 동의합니다.

모리: ‘생활하기 편리한 도시’와 ‘생활하기 좋은 도시’의 차이가?

코멧: 편리하다는 건, 예를 들어 서울은 밤에도 필요한 게 생기면 30분 안에 사러 나갈 수 있잖아요.

레놀: 맞아요. 막차 끊기는 시간도 서울이랑 달라요.

코멧: 서울은 막차끊기는 것도 두시, 세시 이때까지 차 다 다니고. 그런 편리의 부분에 있어선 서울보다 대전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삶의 질은 훨씬 나아요. 대전은 일단 주말에 다같이 쉬어요. (웃음) 주말에 시끄러운 정도가 덜하고, 저녁때 번화가에 상점이 문을 닫는 시간도 서울보다 훨씬 빨라요. 밤이 되면 밤 같다는 생각.

재경: 조용하네, 되게 가정적인 도시네!

코멧: 밤이 조용. 회식하는 시간도 현저히 짧아요. 서울에선 이차 삼차가면 두시 세시인데 대전에서는 다녀봐도 아홉시면 ‘아 너무 늦었어’ 다들 이런 분위기인 거예요. (웃음)

재경: 우린 9시면 이제 시작인데.

레놀: 막차가 10시 반인데 집에 가야지.

재경: 막차가 10시 반이에요?

코멧: 네. 그래서 10시 반이 넘도록 거리에 있는 사람은 거의 10대 후반 20대 초반?

재경: 되게 건전한 도시네?

모리: 제가 작년에 대전에 일주일 간 연수 받으러 왔었는데, 그냥 걸어만 다녔는데도 평화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아요. 자전거도 많이 타고 다니고. 서울이나 부산은  산이 많아서 자전거를 못 타고 다니는데. 거리도, 보도가 넓어서 좋더라구요.

코멧: 그리고 가로수도 되게 잘 심었어요.

재경: 레놀씨는 15년 되었다고 했죠? 그럼 거의 대전사람이라고 봐야겠네. 대전이 어떠세요? 코멧님 말에 동의하세요?

레놀: 전적으로 동의하고, 추가로 더 말씀드리면... 공기가 서울보다 훨씬 좋고,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길거리에 있어요.

재경: 서울도 있어요!

레놀: 서울에도 있다지만 대전이 자전거 길 폭이라던가 그런게 훨씬 잘 되어 있고, 갑천이라고 천이 있어요. 그 천변으로 자전거 타는 넓은 코스도 있고. 그래서 친구들이 대전에 오면 저는 그 쪽으로 데려 가요.

대전의 자전거 대여 서비스


재경: 진짜 대전이 살기 좋은 거 같아요.

모리: 그런 생각했었어요 저도. 대전에 내려왔던 그 즈음에 서울이 되게 싫었거든요. 지금도 물론 싫지만. 근데 여긴 삶이 너무 평화로운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만약에, 서울에서 살지 않게 된다면 대전에 내려와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레놀: 교통도 좋아서 전국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고, 중간이니까.

재경: 전국은 갈 수 있는데 대중교통은 헬(hell, 지옥)이라면서요?

코멧: 대전이 전국단위의 철도나 버스는 되게 잘 되어 있는데. 시내교통은 안 좋아요. 시내 안에서 움직이는 건 자기 차가 없으면 힘들어요. 왜냐하면 광역시이고 지금 인구가 이렇게 늘어났는데 지하철 노선이 하나 밖에 없으니.

지하철 노선은 한 개.


재경: 연애 이야기로 넘어가서, 레놀님은 여기서 15년 살았으면 연애도 여기서 했어요?

레놀: 첫 연애는 대전에서 안 했어요.

재경: 어디에서 했어요?

레놀: 그 땐 다른 지역에서 자취하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만난 사람이랑 원거리 연애를 했어요.

재경: 어떻게 만난 거예요?

레놀: SNS로 만난 사람들과 주로 많이 만났어요.

재경: 퀴어 계정인 거죠?

레놀: 네.

재경: 거기서 이야기하다 만나고 이야기하다 만나고?

레놀: 네.

코멧: 신기해. 네이트온으로 대화하다 만나서 결혼한 친구도 있어 (웃음) 되게 신기해.

재경: 그럼 얼굴 모르고 만나는 거네요.

레놀: 얼굴 알고 만나죠. 얼굴이 좋으니까 만나보고 사귀었을 거 아니에요.

재경: 코멧님은 서울에서는 연애하셨고 현재는 썸이나 아무 것도?

코멧: 아무것도 없어요.

재경: 이쪽으로 보이는 언니는 많이 있던가요?

코멧: 그냥 지나가다 몇 명?

재경: 서울과 비해서 얼마나 적어요?

코멧: 비교할 수 없는 게, 대전에서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요. 회사 집 회사 집 해서.

재경: 아… 아무 의미 없다 (웃음) 제가 아까 둘러보니까 우리 같은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의 줄임말)가 없는 것 같아요.

레놀: 진짜 보기 힘들어요. 있긴 있는데.

재경: 전에도 지방 내려갔을 때 이렇게 하고 다니면 그냥 다 남자라고만 생각하더라구요. 서울에는 이러고 다니는 여자가 많으니까 나한테 남자냐고 물어보는 빈도수가 현저히 낮거든요. 근데 다른 지방에 내려가면 나는 그냥 100% 남자인 거야.

코멧: 서울에서 내려온지 1년 됐는데, 제일 많이 놀라게 되는 게, 서울에서는 한번도 내가 커트머리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왜?’라는 질문을 안 받아봤는데, 근데 대전에서는 거의 1년 내내 시달렸던 것 같아요. 회사 내에서 특히 막 팀장 이런 사람이면 몰라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왜 짧게 자르세요? 머리 기르면 더 예쁘실 것 같은데”라고.

재경: 그 이쁜 게 필요가 없거든! (모두 웃음) 멋있어야 한다고!

코멧: 심지어 회사에 무슨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직원들에게 정장을 입어야 나오라고 했는데, 80프로가 여자인데 그 중에 저만 정장 바지를 입은 거에요. 나머지는 다 치마입고 나오고. 충격이었어요. 진짜 이건 컬쳐쇼크였어요. 서울에선 한번도 이런적은 없었거든요. 일을 해야하니까 여직원들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면 바지를 입거나, 치마를 입어야 한다면 편한 걸로 길게 떨어지는 걸로 입는데, 여기는 그 행사가 오후에 하는 거라 그 전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직원=치마”. 그런게 되게 강하더라고요. 단순히 서울과 지방의 차이인지 대전 지역의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러지 않는데, 건물에서 일하는 분들이 청소 노동자들이 나를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깜짝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괜히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느꼈어요. 서울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고 그냥 좀 놀라고 미안하다고 하시는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뒤로 넘어질 정도로 놀라시니까.

재경: “여기 남자 화장실 아닌데!” 이러고, 뒤에서 남자가 제가 들어가는 거 보고 남자 화장실인 줄 아는 경우도 있고.

코멧: 저 같은 경우는 말을 하면 목소리 때문에  “아, 여자구나, 미안해요” 하고 가거나, 심지어는 어떤 어머니는 “머리를 왜 그렇게 하고 다녀 젊은 여자가!”.. 손 씻다가 그 소리 듣고 “네??!?”..

재경: 그게 좀 심하긴 해요. 약간 원인을 생각해 봤는데, 열에 아홉은 이렇게 살지 않잖아요. 여기는 이런 사람이 흔치 않으니까. 서울은 그나마 많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그러려니..’하는 것 같아요.

레놀: 많이 접해보고 겪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대전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처럼 보이는 사람이 길에서 보면 한 달에 몇 번 보이는 정도인데 서울에서는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10분 안에 보여요. 인구가 훨씬 많으니까. 그게 너무 신기해요.

재경: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을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출장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보면 나를 그냥 아예 남자로 보는 경우가 있거든요. 화장실 갈 때 빼면 솔직히 그게 편하긴 해요. 왜냐면 담배 피워도 뭐라고 안 하니까. “곱상하게 생긴 남자애네” 하고. 그러면 나한테 뭐라하러 안 오거든요. 모리씨는 어때요?

모리: 나? 나는 워낙 일틱해서.. (웃음) 근데 부산은 되게 끼스러운 동네라 길에서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부산은 패션에 민감하거든요. 남자애들이 게이처럼 입고 다니는 애들도 많아요. 실제로 게이/레즈비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제법 본 거 같아요.

재경: 부산 부치가 그렇게 잘 생겼대요. 다음엔 범일동 가지 말고 서면에 갑시다. (웃음)

재경: 대전에서는 이쪽 업소가, L바가 하나 있다고 들었어요. 게이바는 어때요?

레놀: 제가 아는 곳은 게이 바가 세 곳, 찜질방이 두 곳, 트랜스바 한 곳 정도예요.

재경: 사람들 많이 와요?

레놀: 저는 어떤 곳에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아니다, 술집 한 군데는 가 봤어요

재경: 왜안가요?

레놀: 갈 계기가 없었어요.

재경: 그럼 지역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요?

레놀: 어플로요

재경: 어플이 없을 때는 어떻게 했어요?

레놀: 어플이 생기기 전에는 안 만났어요.

재경: 정말요? 그럼 동네 이쪽 친구는 어떻게 만났어요?

레놀: 정말 친한 친구가 알고 보니 게이였어요. 가장 친한 친구 셋 중에 둘이 게이였고, 여자애들 셋이 성소수자.

재경: 아, 이런 미라클한 패턴이 어디 있어. 신기하다. 코멧님은?

코멧: 저는 연애를 하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이쪽 사람들을 알게 됐어요.

재경: 저도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구 동성애자인권연대) 나오면서 처음 이쪽 사람들을 알게 되었어요.

코멧: 저는 내가 확실히 레즈비언이라곤 말을 못하겠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왔다 갔다 하는 걸 확실히 느끼기 때문에. 하지만 재밌었어요. 흥미로웠어요. 그 사람 만나는 내내.

재경: 저는 처음엔 바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인해서 남자들이, 저 새끼들이 내 애인을 뺏어가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다 싫어졌어요. 게이들 빼고.

코멧: 특히 이성애자 남자들 중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예 자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얘긴라고 해도 나한텐 너무 폭력적인 이야기가 되잖아요.

재경: 저는 그런 경우에 그러면 안된다고 이야기 해요. 차별적이라고. 호모포비아라고. 자기들은 왜 그게 잘못된 줄 몰라요. 그냥 까칠하다는 말만 들어요.

재경: 대전에선 주말엔 뭐하세요? 코멧님은 일을 하실 거고, 레놀님은?

레놀: 딱히 주말이라고 해서 뭐가 있진 않았어요.

재경: 무엇을 해야 하겠어요?

모리: 팩을 한다.

재경: 술을 마셔야죠! 퀴어바에 가거나, 이쪽 사람들을 만나고. 저는 한껏 차려입고 즐겁게 놀다 와요. 레놀은 가족이랑 같이 살죠?

레놀: 네 부모님이랑 남동생이랑.

재경: 처음에 이쪽 사람들을 만난 게... 아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그런 경우였으니까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레놀: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처음에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민이 덜 했어요. 첫사랑에 빠졌을 때, 내 고민을 상담해 줄 친구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진짜 좋았죠.

재경: 커밍아웃은 동시에 했어요?

레놀: 친구들에게 순차적으로 커밍아웃 했어요. 원래 끼리끼리 놀잖아요. 코드가 맞으니까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재경: 모리는 안 그랬잖아?

모리: 난 원래 친구가 없었어.

레놀: 저는 일단 여자인 친구한테 먼저 얘기를 했고, 여자애들이 더 잘 받아주니까. 대학 가서 남자애들한테도 커밍아웃 했는데 걔도 게이였고.

재경: 아 그랬구나. 그럼 같이 어디 놀러가고 그러긴 편하겠다.

레놀: 잘 놀진 않지만 만나면 다 남자 얘기 하거든요. 동네 친구들과 그러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좋은 거 같아요.

재경: 저도 동네 남자 친구들이랑 맨날 여자 이야기하고 그래요. (웃음) 대신 저한테 자기 여자친구를 보여주는건 싫어하죠. 너한텐 안 보여준다고. (웃음) 그럼 여기 동네에서 주기적으로 만나서 노는 이쪽 친구는 있어요?

레놀: 동네친구가 아닌 게이친구 중에서 대전에서 잘 지내는 친군 있죠.

코멧: 저는 오늘 못 오신 J님. 행성인에서 만나서 대전에 와서도 다시 만나서 연락하고 있죠. 술 마시고 책 읽고 영화보고 이야기하고. J님은 대전에서 만나는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근데 내가 그 커뮤니티를 소개 시켜 달라고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고..

재경: 왜 안했어요?

코멧: 그냥… 지금 너무 바빠요 일 때문에.

재경: 쓸모 없어. 패널을 잘못 선택했어.

모리: 사람을 도구적으로 대하면 안 돼요.

레놀: 제 케이스가 파격적이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재경: 그렇지만 할 얘기가 없어. (웃음)

재경: 근데 역시 퀴어 데이팅 어플이 생겼잖아요. 그런게 생기면서 사람 만나는 게 쉬워지긴 했어요. 정말 편해진 것 같아요.

오전 11시 30분 대전 대흥동에서 찍은 게이 데이팅 어플. 확실히 서울보단 적다.


모리: 그렇긴 한데, 뭔가.. 과도기적인 벽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재경: 뭐가요?

모리: 데이팅 어플만 하는 거죠. 물론 데이팅 어플을 쓰는 것 자체가 한발짝 나온 거긴 한데 거기서 새로이 안주하는 거죠. 조금 더 커지기만 한 벽장.

재경: 근데 벽장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나도 벽장이라 생각하거든요. 상대적으로는. 홍석천이나 김조광수처럼 대국민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라면. 각자의 벽장이 있는 거죠. 나도 그런데 뭘.

모리: 그러네요. 근데 그런 시각은 없어요? ‘저 사람은 서울에 와서 그러겠거니’ 하는.

코멧: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은데 큰 것 같진 않아요. 한번은 대전에 사는 지인에게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내 머리 길이에 불만이 많은 거야?’ 했더니 그나마 대전 사람이 아니고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 그 정도인 거라고 하더라고요. 고마워해야 한다고. J님 만나서도 그런 얘길 했어요. 퀴어가 분명히 있고, 적지 않은 숫자가 있는데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자기를 노출하는 게 적은 것 같다고. 근데 잘 모르겠어요. 제가 커뮤니티가 있는 게 아니라.

재경: 레놀님 생각은 어떠세요?

레놀: 느껴보지 못한 부분인데… 다른 지역이랑 비교는 못하겠지만 서울에 비하면 확실히 그래요.

코멧: 서울에 비하면 확실히 되게 좁아요.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니까.

모리: 대전은 서울이랑 가깝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가 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재경: 서울은 자주 오세요?

레놀: 네. 한 달에 네 번. 한 주에 두 번 갈 때도 있고.

모리: 대전에서 계속 살 생각이에요?

레놀: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게이는 서울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울은 사람도 많고 게이 공간도 있으니까. 대전은 활동하면 할 수는 있는데 한정적이고 좁고 그러니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뀐 게, 진짜 같이 있을 사람만 있으면 서울이 아니라 어디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재경: 연애를 하고 싶은 거구만.

레놀: 저는 결혼이 하고 싶어요.

재경: 조신하네.

레놀: 빨래하고 밥하고 잘 할 수 있는데. “어 자기 왔어? 오늘은 김치찌개야.”

재경: 나는 그러겠지, “(부치답게)야 밥먹어.” 갈비찜 잘해요. 코멧님은 어떠세요?

코멧: 저는 뭐. 그쵸. 특별히 이사 갈 일이 없다면. 근데 저는 직장 따라 다녀야 해서.. 일하는 곳에 따라 다른 도시로 가야 하니까. 제 분야가 한 지역에 오래 있으면 정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보통 3, 4년에 한 번씩 옮겨요. 근데 사실 대전이라는 도시와 내 생활 패턴이 잘 맞아요.

재경: 좋은 것 같아요 대전. 서울 느낌도 나는데 광주 느낌도 나거든요.

코멧: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해서 대전을 보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잖아요. 관공서가 마구 들어오고. 근데 이 사람들이 주말이나 여가를 대전에서 보내질 않아요. 월화수목금 대전에서 일하고 주말엔 서울에서 지내다가 다시 내려오고. 그래서 대전에서 계속 살아왔던 사람과 일 때문에 내려온 사람들 간의 커뮤니티가 나눠지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돈은 대전에서 벌고 쓰는 건 서울에서 쓰는 거예요. 대전시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어요. 근데 그 문제가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서울이 가까우니까.

재경: 역시 너무 가까우면 안돼. 저도 지난주에 퀴어를 한 명 만났는데, 천안 사람인데 서울에 매주 올라오더라고요.

코멧: 진짜 어느정도냐면, 대덕 특구의 사기업은 주말에 버스를 대절해서 서울로 운행하더라고요. 그렇게하면 차비 안 들이고 가는 거죠. 금요일 저녁, 토요일 오전, 오후에 버스가 한대씩 있어요. 서울로 싹 실어 보내서 여가는 서울에서 가족이랑 친구랑 보내고, 다시 일요일 오후나 저녁에 대전에 내려올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하니까 직장 생활만 대전에서 하고 집은 서울에 있는 사람도 많아요.

모리: 그럼 대전 토박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샌프란시스코하고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요. 거긴 IT 기업들 때문에 땅값이 엄청 올랐는데 실제 토박이들은 올라간 땅값을 못 내서 커뮤니티가 다 와해되고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코멧: 대전도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대전 개인 평균 소득이 어마어마하게 뛰었어요. 대덕연구단지, 사기업연구소가 평균 연봉을 확 올려놓으니까. 게다가 그 사람들을 서울에서 데려와야 하니까 더 돈을 많이 줄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대전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대전시에서도 시 차원에서 서울에 있는 것들을 갖고 내려오고 유치하려는 게 있다보니 대전을 터전으로 잡고 살아오셨던 분들은 저항감이 생기는 것 같더라구요.

재경: 나뉘는구나...

코멧: 그게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아팠던게, 저희 엄마가 청소년기를 대전에서 보내셨는데, 제가 회사를 들어오니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예전에는 선화동이나 은행동이 대전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데가 어떻게 변했냐면 완전히 다 원룸촌이 됐어요. 주거의 느낌으로 사는 사람들이 다 없어진거예요. 왜냐면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발령 받을 수 있단 생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거든요. 뜨내기들이라고 하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아파트를 사거나 그러기 보단 괜찮은 원룸,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적당히 일년 이년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는 거예요. 그 수요를 파악하고 자기 주택을 갖고 있었던 집주인들이 거기에 원룸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선화동이나 그런 곳에는 정말 다 신축 원룸밖에 없어요.

재경: 그래요?

코멧: 거기는 그렇게 촌이 형성이 되어버렸어요. 저도 1년 전에 처음 내려올 때 딱 선화동에서 원룸을 구했으니까. 집주인들은 그 동네, ‘구도심’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지 않아요. 다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서울 사람들 상대로 원룸장사를 하는 거죠. 근데 그런 돈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건물을 올릴 돈이 없는 경우에 계속 같은 곳에서 구멍가게를 하거나 세탁소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저 같은 사람들을 대하는 걸 보면 ‘언젠간 나갈 사람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아요. 이게 대전의 공동체로 완전히 흡수가 안 되는 거죠.
 근데 단지 지역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 게,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들어왔다가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만나기가 부담스럽고 여기에 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에너지를 쏟아서 커뮤니티를 만들지 않는 것 같아요. 차라리 서울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 J님을 만나는 것도 서울 올라가서 알게 되어서 여기서 만나는 거니까. 그런 패턴이 계속 생기는 거죠.

재경, 레놀: 완벽한 설명이에요!

모리: 퀴어 커뮤니티 말고 다른 취미 동호회 같은 쪽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예요?

코멧: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 예술 분야 쪽에서는 유독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도 자기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에서 온 작가들끼리 모이는 게 있고, 대전 작가끼리 모이는게 있는데, 서로 섞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더라구요. 다른 분야도 그랬어요. 저는 책 좋아하니까 책이나 독서 모임을 찾아 봤는데, 그냥 우연찮게 간 곳인데 얘기 하다보니까 다 서울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인 거예요. ‘이게 아닌데, 나는 지역 사람 만나보고 싶어서 나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놀: 저는 15년 살았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살았던 거고, 제가 사는 곳이 대전 시내와 많이 떨어진 곳이어서 내가 대전 시민이라는 생각을 거의 못해요. 지금 말씀하신 ‘원도심’에 나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려요. 굉장히 멀거든요.

코멧: 그런 느낌도 받아요. 서울에서는 내가 아무리 구석에 살아도 별로 제한이 없는데, 여기는 평생 대전에서 살았는데도 어떤 동네에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갈 일도 없고, 나오기도 불편하고.

재경: 교통이 불편하구나.

코멧: 설령 차가 있어도 그 차를 끌고 나가서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그 한 시간을 걸려서 가느니 서울을 가는 거죠. 자기 차를 끌고 가건 유성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건. 그게 신기했어요. 갑천을 중심으로 이북과 이남이 나뉘어요. 저는 일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사람들이 갑천을 넘지 않아요. 제가 만난 두 사람 다 평생 대전에 살고, 직장 구하고 사는데, 한 번도 넘어가 본 적이 없대요.  처음에 둘이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

레놀: 내가 사는 곳과 시내만 가고. 넘어갈 필요도 없고.

모리: 광주는 어때요?

재경: 저도 안 가는 곳이 있긴 하죠. 멀기도 하고. 시내, 중심가, 학교만 가면 끝이긴 한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광주에 놀 게 별로 없어요. 갈 이유가 없으니까. ‘어디에 뭐가 맛있다니 한번 가보자’ 이런 게 있잖아요. 명동에는 백화점도 있고 사람도 많으니까 가고, 홍대나 이태원에는 퀴어들이 많으니까 가잖아요. 다 가는 이유가 있는데 광주엔 그런 게 없어요. 광주도 10시 11시 되면 차가 다 끊겨요. 똑같아요. 근데 삶의 속도는 제가 느끼기에는 대전보다 빨랐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공부만 해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모리: 부산은 관광도시인가? 지금 말한 것과 달리 볼 게 많았어요. 여기저기에.

레놀: 부산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외지 사람들이 부산엔 놀러 가도 대전엔 놀러 가지 않잖아요.

모리: 저 같은 경우엔 친척들이 부산 여기저기에 다 살아서 이곳저곳 가 볼 기회가 됐던 것 같기도 해요.

재경: 난 친척들이 여기저기 살아도 다 교외, 광주가 아닌 곳이었어요.

모리: 교통 체증은 어때요?

레놀: 아~! 정말 중요한 질문. 전 연구 단지 쪽에 살거든요. 단방향 교통체증이 굉장히 심해요. 출근시간엔 연구소쪽으로, 퇴근시간엔 시내쪽으로.

코멧: 어마어마해요. 출근시간에 연구단지 쪽으로 가는 차선은 그냥 주차장이에요.

레놀: 반대방향은 한산하고.

코멧: 그리고 서대전 쪽으로 내려오면 양쪽방향 다 이방향 저방향 가릴 것 없이 막혀요. 이게 불과 몇년 내에 심해졌다고 하더라구요.

모리: 다 서울에서 내려오고 그래서?

코멧: 네. 유입 인구가 많아서. 다른 지역에서 오는 것보다 유독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많잖아요.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는 곳에 살다가 여기를 오니 그 답답함이 있어서 더 차를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아예 다른 지방에서 왔으면 약간 불편한 것도 익숙하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같은 번호 버스가 5분 뒤에 오잖아요.

레놀: 대전은 제일 빠른 배차간격이 6분 간격이고, 그게 많지 않아요. 큰길다니는 버스는 자주 오는 편인데, 수요를 보면 인구가 서울만하지 않아서 증차를 할 순 없는 것도 현실인것 같긴 해요.

코멧: 저는 출근 시간에 버스를 제 시간에 타야 하는데 놓치면 20분, 15분을 기다려야 하고, 조금만 늦은 버스를 타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의 짓눌려서 타야 해요. 여기서 어차피 몇년 살아야 하면 경차라도 하나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특히 출장 다니고 그럴 때 대전 안에서도 1시간 걸리니까.

모리: 출장은 어떻게 다녀요?

코멧: 택시를 타거나 렌트를 해요. 소카가 대전에 작년 8월부터 시작되어서.

모리: 서울에서 내려오면 집값이 싸지니까 그 대신 차를 사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재경: 어느덧 시간이 다 되었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끝 -






* 이 글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모임 전국퀴어모여라 블로그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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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11 20:18 신고 [Edit/Del] [Reply]
    대전 동구쪽에서 태어나서 30년넘게 쭉 살고 있지만 저도 갑천은 딱 두번가본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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