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6월입니다. 퀴어문화축제기간이 다가오면서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차별선동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성애 혐오의 기치 아래 보수기독교가 결집하고 종교와 정치가 다시금 규합하고 있습니다.
혐오의 외침은 이제 차별을 선동하며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권리를 총체적으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리 위의 큰 행사 뿐 아니라 성소수자 개개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상 속 시도들까지 가리지 않고 공세를 이어갑니다. ‘혐오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선동은 다시금 동성애를 희생양 삼아 저들의 거짓된 소명을 높입니다. 보수기독교 언론매체들은 날이 멀다하고 성소수자들을 모욕하는 논평과 기사를 투고합니다.
혐오의 활개는 반동성애세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을 방관하며 차별선동을 동성애 찬반의 문제로 바꿔치기해온 공권력도 분명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는 퀴어퍼레이드 신고 일주일 전 신고방침을 바꿔 통보한 남대문경찰서를 목도했습니다. 신고방침을 교회에 귀띔해줬다는 이야기가 돌고, 경찰과 보수기독교의 관계가 의혹으로 떠올랐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또한 충돌가능성을 이유로 행진불허를 통보했습니다. 경찰 뿐일까요?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동성애 혐오발언을 일삼고 차별에 앞장서온 일개 목사가 비상임위원으로 이미 몸담고 있습니다. 타 지역에도 혐오가 드세게 몰아칩니다. 대구퀴어퍼레이드 역시 대구 중구청에 이어 대구지방경찰청의 장소사용불허로 고전하는 상황입니다.
벌써부터 퍼레이드는 전장을 예고합니다.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이들은 급기야 최근 부상한 ‘메르스’를 들고 나와 퀴어퍼레이드에 감염우려를 표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방역과 검사, 예방에 무심했던 공공의료의 무능력을 사회적 소수자의 행동을 막기 위한 무기로 돌려막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남대문경찰서의 기만이 밝혀진 직후, 수백 명의 커뮤니티 사람들이 저항의 의미로 경찰서 앞에서 일주일이 넘는 줄서기를 하며 구호를 외쳤습니다. 6월 2일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금지 통고한 경찰을 규탄하고 평화로운 행진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 기자회견에는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을 비롯, 백여 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연명했습니다. 기자회견을 갖고 난 직후에는 ‘퀴어’가 검색어순위에 오르기도 했지요. 지금도 국내외언론들은 퀴어퍼레이드의 상황을 앞다퉈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행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귀 기울이게 할 수 있음을, 우리의 외침이 여론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목소리 내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할 항목이 아닙니다. 행진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우리의 존엄을 집단적으로 외치는 행동입니다. 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저들의 외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정당성을 갖습니다. 차별선동논리에 판단력이 흐려진 경찰은 지금이라도 혐오와 인권을 저울질하는 태도를 멈추고 혐오로부터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들의 평화로운 행진을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지켜줘야 합니다.
성소수자들은 거리 위의 행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들의 사적인 몸과 관계를 공공영역으로 이끌어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퀴어퍼레이드가 예정된 6월 28일은 46년 전 스톤월항쟁이 일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스톤월항쟁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공권력의 압제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행동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유예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부정되거나 치유될 존재가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시기상조라는 말은 더더욱 틀린 논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의 존재입니다. 침묵은 죽음입니다. 차별을 선동하는 혐오의 목소리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맙시다. 거리 위의 정당한 외침을 금지하고 불허하는 공권력의 무게에 위축되지 맙시다. 어떤 방해와 간섭, 협박과 위해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행진할 것입니다. 우리의 행진에는 성소수자 뿐 아니라 장애인, 여성, 홈리스,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외치는 사회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노조가 함께할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모두가 참여할 것입니다.
머리를 맞대고 혐오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거리 위의 소수자들을 무시하는 공권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자리에서 존재를 저울질하는 이들의 위협과 폭압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립으로부터 연대를 길어내고 행동의 보폭을 넓힙시다.
2015년 6월 5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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