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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우리와 함께 역사의 편에서 같이 행진합시다 - 퀴어문화축제 개막식 축하 연설문(무지개행동)

by 행성인 2015. 6. 11.

 

나영정(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편집자 주: 본 연설문은 2015년 6월 9일,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개막식 무대에 올라 발언한 연설문 원본입니다. 무지개행동의 승낙을 받고 웹진에 게재합니다. 



무지개행동 활동가들 (사진 제공: Indie)



(1)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강명진 

전국 곳곳에서, 그리고 해외에서도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을 지켜보고 계시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퀴어들과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곳 서울광장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노력하고 싸웠는지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메르스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이 광장에 많은 분들과 함께 하 지 못하지만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고, 많은 힘을 모아왔고,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우리는 20년 이상 인권이라는 말로 우리가 당하는 차별과 폭력을 설명하고 우리의 존엄성과 정당한 권리를 요구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성정체성의 차이에 낙인을 찍는 사회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우리의 얼굴과 삶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2)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 장병권 

그 동안 우리가 겪어온 차별과 폭력은 사람들의 무지, 공포, 차별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구조 때문이며, 오늘날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고 선동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들은 부끄럽게도 종교인들이고 특히 한국사회 개신교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소수자들의 인권신장이 가져올 변화가 자신의 지위를 공격할거라는 불안을 가지고 있는 지배세력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주장을 추종하면 서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오히려 소수자들을 밟고 일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일구어온 인권과 민주주의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3)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상임활동가∥ 에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은, 이러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 공적기관들이 오히려 차별에 동조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적 기관이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원칙을 저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를 단지 다수결로 이해하거나 목소리가 큰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적 인 대표들도 있습니다. 인권도시를 천명한 지자체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한 정부가 벌이고 있는 행태들입니다. 유엔에 가서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규탄하는데 동참하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에 동조하는 위선적인 정부입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의 무능하고 안일한 대처와 유가족을 대하는 무책임한 자세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사태에서도 국민의 안전보다 사회질서 유지와 이해관계자들 보호에 더 우선하는 것이 드러났는데, 감히 안전을 위해서 퀴어문화축제 행진을 불허한다는 뻔뻔한 정부입니다.


(4)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장서연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합니다. 안전은 사회질서 유지가 아닙니다. 안전은 국민들이 부당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 것이며, 예기치 못한 위험에 처했을 때 구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회질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부당하게 자 신의 생명과 권리를 빼앗겼던 이들이 있습니다. 인권의 역사는 그러한 억압받는 이들이 잘못된 질서를 비판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투쟁했던 역사입니다. 퀴어문화축제가 제대로 개최되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하는 역할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의도적으로 안전을 위협 하려는 세력들을 비호하지 않고, 그들의 계획된 폭력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지자체, 경찰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퀴어문화축제의 행진을 불허하는 것 은 국가가 나서서 성소수자들이 구조적인 위험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소수자들을 동 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성소수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가로 막는 것은 국가에 의한 명백한 폭력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적법한 과정을 밟아서 배정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예산을 불용처리하고,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성소수자 혐오세력 때문에 폐기하고, 아무런 합당한 이유도 없이 성소수자 재단 설립을 불허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다수결이 아니라 정의로움에 대한 가치를 만드는 과정이며,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누적된 차별로 인해 제 몫을 갖지 못한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 리의 안전과 인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와 갈등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지켜내기 위해서 서울시의원회관과 서울시청에서 농성을 벌이기 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자회견을 열 것이고, 광장에 나서고 행진할 것입니다. 더 이상 민주주의와 인권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든 시민과 함께 나설 것입니다. 


(5)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이종걸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세력에게 경고합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비인간성이 인간성을 이긴 역사는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던 수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새롭지 않습니다. 관습과 규범의 이름으로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던 수많은 사례가 있었지만 변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 보수개신교계들은 국가조찬기도회를 만들어서 정치권에 세력을 과시하고, 자치구별로 교경협의회를 만들어서 공적인 의사결정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 사실상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헌법에 반한다는 사실을 알 고 있습니까? 여기 시청광장에서 몇 달 동안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소수의 행동파들뿐만 아니라 양복을 입고 입법, 행정, 사법기관을 부지런히 다니며 보수우익의 질서를 공적 질서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당신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극우세력이자 반인권세력, 차별을 선동하는 집단이라고 분명히 규정합니다. 다양성의 가치를 부정하고,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당신들은 분명히 진정한 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의 이름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멋대로 다른 사람을 심판 하는 불경스러운 행동을 중단하십시오. ‘탈동성애 인권’ 따위의 말로 인권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이름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내부의 비리와 폭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당신들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들의 권력의 민낯을 폭로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탄압하는 일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 진정한 종교인들과 함께 힘을 모아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6)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호림 

서울시민, 전국의 시민,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와 함께 역사의 편에서 같이 행진합시다. 누구도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각자가 가진 개성을 표현하고, 타인의 고통에 손을 내밀고, 부정의한 관행과 질서를 바꾸기 위한 행진을 함께 합시다. 

여러분들은 각자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까? 이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빛줄기 입니다. 만약 모두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고, 내 면의 응답에 귀 기울인다면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자라날 공간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공포와 혐오는 성소수자들에게만 억압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을 둘러싼 차별적, 억압 적 규범 및 문화를 바꾸는 것은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중요한 노력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타인의 인격과 삶의 양식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고, 심판하기를 그만두는 것은 부당한 차별과 폭력을 중단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과 나, 모두의 존엄 을 지키기 위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에 함께 해주십시오. 성소수자들이 본래부터 차별받는 존재로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성소수자를 고문하고 사형하는 나라도 있지만,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기 위해서 성과를 이루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불평등과 빈곤의 희생양이 되어온 이들은 세상에 불평등과 차별, 빈곤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억압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들이 불평등과 차별, 빈곤의 희생양이 되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그러한 일들이 유지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분명히 해낼 것입니다. 


(7)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활동가 ∥ 조환희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전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가꾸어야 하는 때입니다. 외모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지지하기 위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자존감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손을 맞잡기 위해서 가꿉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언어를 가꿉시다.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행진에 초대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주변을 돌봅시다. 우리와 함께 하는 주변의 많은 이들을 둘러보십시오.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인사를 나누는 가족들과 친구와 이웃들, 우리와 모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시민들과 인권활동가들, 노동자들, 종교인들, 교육자와 학자들, 예술가들,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만나고 싶다면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더 걸어나오는 것도 방법입니다. 


(8)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팀장∥나영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반동적인 움직임도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하거나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실패한다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변화의 확신을 가지고, 부정의를 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시도할 때 우리가 몸으로 깨닫는 진실들은 분명히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겁니다. 그 역사를 차별받았던 유색인종이, 여성들이, 장애인들이, 이주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피땀으로 쓰여진 인권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9)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홀릭 

우리는 이미 역사적인 주체이고, 정치적인 주체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거리가 되었습니다. 때론 고단하고 때론 희열을 마주하겠지만, 우리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일상을 잘 살아갈 것입니다. 담담하게, 당당하게 지금을 살아갑시다. 사랑과 권리, 변화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만나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앞으로도 맨 앞에서 광장을 열겠습니다. 6월 28일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7월 4일 대구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